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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추억과 성장을 일깨우는, 문방구 2020년05월호


반가운 물건 가득한 어린 시절
보물창고~
추억과 성장을 일깨우는, 문방구

취재. 이현경 기자

벚나무가 분홍 꽃잎을 흩날리는 날. 북악산을 배경으로 서촌이 나지막하다.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에 자리한 옥인문구가 아침 문을 활짝 열었다. 조해순·채명석 부부가 번갈아 가게를 운영하는데, 오늘은 부인인 조 씨의 차례. 남편 채 씨가 인테리어 일을 겸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게 밖으로 훌라후프, 황금색·빨간색 돼지저금통, 고무공 묶음을 내걸면 영업 준비 완료. 이미 가게 건너편 통인시장 후문에는 여러 사람이 오가고 있다. 이에 질세라 조 씨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주위 여러 물건이 그와 함께한다. 가게 유리문에 걸린 스티커부터 아이들 눈높이에 자리한 각종 장난감, 벽 선반에 쌓인 하얀 실내화뿐 아니라 천장에는 제법 큰 공들이 띄워져 있다. 가짓수를 셀 수 없을 만큼 알록달록한 많은 물건은 마치 종알종알 여러 목소리를 내는 듯하다.

한편 가게 앞 인도에도 사람들의 모습과 목소리가 스쳐 가는데…. 아이들의 등교가 이뤄지지 않는 요즘 같은 오전엔 어른 손님이 대부분이다. “팩스 보내는 데 얼마예요?” “한 장에 800원이에요.” “복사되나요?” “그럼요~.” 혹시나 하는 물음에 조 씨의 대답은 역시나 “네~.”라며 긍정이다. 팩스가 전송되고 복사가 되는 사이, 손님들은 그 잠깐을 기다리며 새삼 물끄러미 작은 물건들을 바라본다.

여러 색의 볼펜, 반짝이는 핀, 카드…. 어떤 이가 ‘아, 이거 아직도 있구나~.’ 하는 감탄의 눈빛으로 물건을 만져보다가 볼일이 끝나자 떠날 채비를 한다. 곧 ‘땡그랑’ 하고 경쾌한 동전 소리가 들린다. 손님이 건네준 동전 몇 개가 조 씨의 육촌 언니로부터 물려받은 금고 안 동전 무더기에 쌓이는 기분 좋은 소리다.
조 씨의 육촌 언니가 10여 년 운영하던 가게를 당시, 인천에 살던 부부가 이어받은 지도 벌써 27년여. 북적북적하니 장사가 잘되던 가게에 놀러 온 조 씨가 ‘안 할 거면 나한테 말해줘~.’라고 한 것이 1년 후 현실이 되었다. 그 사이 옥인문구라고 불렸던 간판 없는 문방구는 간판도 달고, 본래 가게 자리가 도로화되면서 그 옆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부부와 동네 이웃들의 ‘옥인문구’를 향한 마음.

“서촌은 인심이 시골같이 푸근한 동네예요. 주위에 학교도 많죠. 어르신들도 많이 계시고요. 주위에 볼거리도 얼마나 많은데요~.” 누군가 서촌에 대해 물어볼라치면 그의 대답은 마치 봄바람처럼 솔솔 부드럽게 들려온다. 하기야 이곳에서 두 아들을 키우며 학교를 보낸 그 또한 서촌 주민이 아니던가. 버스 한 정거장 거리 안에 있는 서울청운초등학교, 서울매동초등학교, 배화여중·여고, 국립서울맹학교, 국립서울농학교 학생들이 이곳을 찾는다.

오후가 되자 아이들이 잠깐 나들이를 나왔다. “이거 500원으로 바꿔주세요.” 아이가 내민 손에는 500원짜리 1개, 100원짜리 4개, 50원짜리가 1개 놓여있다. 조 사장이 웃으면서 500원을 가리킨다. “이미 손에 500원이 있는걸? 이거는 450원이라 못 바꿔~.” 그러자 아이가 “네?”라고 당황하며 가게를 나간다.

뽑기를 하려면 500원짜리가 필요한 것. 아이가 가게 앞 뽑기 기계를 바라보고만 있자, 조 사장이 출동한다. “이거 돌리기가 쉽지 않지?” 그가 뽑기 기계 레버를 힘껏 돌려주자 아이는 작은 캡슐 하나를 들고 신나하며 사라진다.
이번에는 흰머리가 지긋한 어르신이 방문했다. “노트 얇은 거 있어요?” “조그만 거요, 큰 거요?” 조 씨가 얇은 공책을 여러 권 들어 보여준다. 손님이 공책을 살펴보다 두리번거리자 조 씨가 다시 움직인다. “스프링 달린 걸 드릴까요?” 손님이 공책 크기를 겹쳐 대어본다. 조 씨가 또 다른 공책을 꺼낸다. “이게 크기가 더 작아요.” 어느새 조 씨의 손에 여러 공책이 우수수 겹쳐져 있다. “맞아요. 그거예요.” 손님의 경쾌한 대답에 조 씨의 얼굴에도 살짝 미소가 스친다.

이처럼 ‘공책’이라는 이름 하나에도 그 종류는 여러 가지.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찾아주는 일이 수고로울 법도 하지만, 사실 부부는 이미 물건에 손님을 위한 배려를 담아두었다. 믿음직한 회사의 물건들만 까다롭게 들여온 것.
대용량과 값싼 가격을 내세운 여느 곳과 달리, 이곳은 손님의 필요에 맞게 한 개씩 물건을 건넨다. 누군가에겐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문방구의 편리함을 아는 이에겐 더없이 소중한 곳. 옥인문구는 매일 활짝 문을 연다. 사람들의 표정을 부드럽게 깨우고, 아이들 목소리가 드높던 봄날 새 학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