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과 꼰대 사이

글. 노태형 편집인

어느 때부턴가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는 말이 회자된 지 꽤 오래됐다.
과거 시대에는 나이만 쌓여도 어른 대접을 받았고, 여기에 학식과 재력만 조금 갖추면 감히 범접 못할 호통으로 어른의 권위를 누릴 수 있었다. 한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그랬고, 한 마을에서는 영감님이 그랬으며, 지역사회에서는 선생님들이 그랬다. 그런 사람들 앞에서 아이들은 잔뜩 주눅 들어 입을 삐죽 내밀고도 감히 항변할 수 없어 속앓이를 하던 시절. 지금 사람들은 이들을 일컬어 꼰대라고 한다.

‘고집 센 늙은이’라는 뜻의 꼰대는 늘 과거 지향적이며 자기중심적이기 일쑤다.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해, “어디서 감히~.”로 흥분하고, 누천년 간 회자되듯 “요즘 것들은~.”으로 헛기침을 삼킨다. 특히 요즘 꼰대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 권리에는 유난스럽게 목소리를 높이지만, 책임의 자리에서는 떠넘기기와 회피로 자기변명을 늘어놓기에 눈총을 받는다.

특히나 요즘은 ‘어른 노릇’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문명의 발달이 급속해졌고 사회현상이 복잡다단해졌으며 사람마다의 개성이 유난스러워져 그 질서를 잡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 자본을 바탕으로 성장한 현 사회는 이해득실이 복잡하게 얽혀 자칫 순간의 판단착오가 함정이 되어 나락으로 떨어지게도 한다.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어른행세는커녕 꼰대의 오점만 남길 뿐이다.
과거, 어른은 지혜의 상징이었다. 또 사회의 질서를 잡아주는 조정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옛날이나 지금이나 흔히 어른을 구할 때, 종교계를 기웃거리며 지혜의 말씀을 청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는 그런 양심과 지혜를 갖추고 사는지, 아니면 어른이 아닌 꼰대의 모습으로 허풍만 떨고 있지는 않은지 자꾸 돌아봐진다.

꼰대의 특징을 정리한 ‘꼰대의 육하원칙’이 회자되기에 인용한다.
‘내가 누군지 알아?(Who)/ 내가 너만 할 땐 말이야!(When)/ 어디서 감히!(Where)/ 네가 뭘 안다고 그래?(What)/ 어떻게 나한테 이래?(How)/ 내가 그걸 왜 해?(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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