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중흥사 동명 스님

행복해지기 위해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취재. 장지해 편집장

한때 그는, 저명한 시인이자 문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런 그에게 ‘책’은 늘 가까운 존재였다. 하지만 은근히 바쁜 출가 생활 속에서 종종 책을 놓치곤 했다. 혹 시간이 나더라도 책보다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들여다보는 날들이 많아졌다. 쉬는 시간임에도 제대로 된 쉼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불현듯 ‘종이책’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사찰에서 책과 함께 유유자적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책 읽는 템플스테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북한산 중흥사에서 ‘책 읽는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고 있는 동명 스님은 1989년에 계간 <문학과 사회>를 통해 등단한 문학인이다. 1994년에는 김수영문학상을 받았고, 이후 문학평론가이자 교수로도 활동했다. 40대 초반까지 20여년 가량 문학인으로 살다가 늦은 나이에 출가를 결심했다. 이유는 자연스러웠다. 문학을 하며 가졌던 ‘문학이 나 자신은 물론이고, 세상도 바꿀 수 있다.’는 열망이 여러 차례 인도 성지순례를 통해 자연스레 종교로 확장된 것이다.
“할 만큼 다 해보고 출가해서인지 출가 생활의 모든 순간이 ‘환희’였다.”고 말하는 동명 스님. 글을 쓰던 시절, 그를 잠자리에 들게 했던 새벽 시간은 이제 그를 깨우는 시간이 되었다.

● 중흥사 템플스테이 테마들이 신선합니다.
“중흥사에서 가장 처음 시작했던 건 ‘해설이 있는 템플스테이’에요. 계기는 사실, 궁여지책이었죠(웃음). 템플스테이를 하기로는 했는데 당시 숙소로 쓸 만한 건물이 갖춰지지 않아서 ‘오셔서 주무시고 가십시오.’라고 할 수가 없었거든요. 또 한 시간을 걸어 올라와야 하는 위치상의 어려움도 있었고요. 이러한 환경적 핸디캡을 어떻게 극복할까 고민하다가 북한산의 자연자원과 역사를 활용하면 어떨까 생각한 거죠. ‘해설이 있는 템플스테이’는 오전에는 해설을 들으며 산행을 하고, 중흥사에 도착해 발우공양과 명상을 하고, 저녁쯤 내려가는 당일 프로그램이에요.”

중흥사는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부터 한 시간, 사전 협의가 되어 차량을 가지고 최대치까지 올라가더라도 30분은 꼬박 걸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약점이 될 수도 있는 환경을 원망하지 않고 개척해낸 것이 북한산성 내 유일한 템플스테이 사찰이 된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해설이 있는 템플스테이’는 ‘템플스테이는 ○박○일.’이라는 기존의 상식을 깼고, 시작한 지 1년여 남짓 된 ‘책 읽는 템플스테이’의 인기는 만만치 않다.

● ‘책 읽는 템플스테이’에도 관심이 많이 가던데요.
 “책은 사실 저에게 가장 익숙한 물건이에요. 그런데 그런 저조차도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면 종이책을 읽는 시간에서 멀어지더라고요. ‘정신을 계속 쓰게 만드는 스마트폰, 컴퓨터 등을 놓고 책 읽는 시간을 통해 쉼을 얻게 해보자.’는 생각으로 작년 4월부터 시작했는데, 참여하신 분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아요. 30분 이상 걸어 올라와야 하는 것도 좋고, ‘다시 책을 읽어보니까 책 읽는 재미가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그동안은 ‘책을 멀리하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지 못하고 바쁘게만 살아왔던 거죠.”

작년 한 해 동안 8차례 진행된 책 읽는 템플스테이에는 매 회 20여 명이 참석한다. 2박 3일 동안 산사에서 충분한 여유 시간을 가지며 책을 읽고, 저자와 대화를 하고, 참선(명상)을 하는 등의 일정은 그야말로 ‘제대로 된 쉼’을 갖게 한다. 4월에는 정호승 작가와의 만남이 예정되어 있다.

● 제대로 된 쉼을 찾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다들 바쁘게 살지만, 정말로 시간이 없어서 바쁜 건 아닌 것 같아요. 사실은 쫓기는 마음이 많은 것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계획을 열심히 하며 살아요.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서 멈춰야 여유가 생겨요. 멈춘다는 건 멍하게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나를 옥죄는 생각을 놓는 거예요. 가장 쉬운 방법이 명상이고, 명상으로 생각을 멈추면 책도 저절로 읽게 돼요.”

여기에 더해, 아주 약간의 시간이라도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 IT기기와 멀리하는 연습을 권하는 동명 스님. 명상 역시 거창하게 생각하기보단, 누구에게나 늘 있는 ‘호흡’을 도구 삼아 장소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해보라고 말한다.

● 100여 년 만에 재건을 시작한 중흥사의 발전도 고민하고 계시죠?
“템플스테이는 계속 활성화해나갈 텐데, 한두 가지 프로그램을 특정하지 않고 다양하게 시도해보려고 해요. 그리고 향후에는 중흥사가 수행사찰로서, 마음공부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뭘까.’를 생각해봐요. 누군가에게 바라는 것(기도)도 필요하지만, 사실은 스스로의 마음을 닦는 게 굉장히 중요하죠. 기도는 내 안의 부처님, 내 안의 관세음보살을 깨우는 일이거든요. 자기를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각자에게 이미 있어요. 내가 가진 잠재능력을 통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나가는 방법이 수행과 명상이에요. 그런 역할을 중흥사가 하고 싶어요.”

중흥사는 고려 말기에 태고보우 국사가 깨달음을 얻은 직후 6년을 머물렀던 곳이다. 태고보우 국사는 중흥사 중창불사를 하며 머무르기 위해 지은 작은 움막을 태고암이라고 이름 짓고, 그곳에서 인생 역작이라 불리는 ‘태고암가’를 탄생시켰다. 간화선의 종풍을 잇는 태고보우 국사가 깨달음을 얻은 직후의 가장 빛나는 시기에 머물렀던 곳이라는 점에서도 중흥사는 선불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천년고찰이지만 1915년에 홍수로 모두 무너진 후 100여 년 가량 잠들어 있던 곳을, 다시 깨워내야 하는 사명이 동명 스님에게 주어진 것이다.

● ‘삶에 도움되는 종교’에 대해 많이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요.
“굉장히 중요한 문제죠. 문학을 할 때도 그런 걸 막연하게는 생각했어요. ‘문학이 그냥 문학 자체로 끝나지 않고, 인간의 근본적인 고통을 어루만져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요. 그런데 20년 정도 열심히 활동했음에도 문학으로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불교라는 종교를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저로서는, 문학의 길을 갔던 사람으로서, 당연한 길을 선택한 거죠.”

동명 스님은 ‘많은 사람들이 종교로부터 멀어지는 지금이, 오히려 종교가 더욱 필요한 시기’라고 말한다. 현대는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상대적 결핍을 가장 많이 느끼는 시대이고, 가장 편리한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은 가장 불편한 시대이고, 가장 살기 좋은 시대인데도 불구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시대라는 것. 그러기에 결국 종교들이 제 역할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 종교가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종교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 그 생각이 종교를 망치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 생각을 벗고 그저 자연스럽게 ‘함께 살아가는 것’으로 방법을 삼을 순 없을까요?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수행이나 명상은 특정 종교에 구애받지 않아도 가능해요. 종교들이 ‘너와 나는 달라.’ 또는 ‘내가 우뚝 솟아야 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면,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을 모두 행복하게 만들 수 있어요. 이런 성격의 사람들은 원불교에서 담당하고, 저런 성격의 사람들은 기독교에서 담당할 수도 있잖아요. 종교들이 서로를 파트너로 생각하면서 열려야 해요. 열려야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요. 그러면 서로의 단점도 보완될 거예요.”

● 종교 미래에 대한 걱정도 많은데요.
“그동안은 종교들이 교세확장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될 것 같고, 교세확장에 치중해도 쉽지 않을 거예요. 가만히 보면, 종교는 가난하고 힘없을 때보다 비대해졌을 때 많은 문제를 가져왔어요. 권력과 권리를 가졌을 때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 거기에 종교의 미래가 달려있죠. 종교가 사람들의 욕망에 편승하면 역기능을 가져올 수밖에 없어요. 종교가 생겨난 이유는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니까, ‘행복해지기 위해 어떤 길을 갈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내 종교의 교세를 확장시켜야겠다. 규모를 키워야겠다.’라는 욕심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래야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종교가 될 수 있어요.”

● 평소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는 말씀을 소개해주세요.
“<잡보장경>에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가지되 누운 풀처럼 겸손하라.’는 말씀을 좋아해요. 태산 같은 자부심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 제 경우에는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 불자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수많은 생명 가운데 인간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죠. 하지만 그러한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되, 늘 부족한 존재이기에 누운 풀처럼 겸손하려고 해요. 또, 우리 선불교 핵심 가르침 중 하나인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 평상심이 곧 도라는 뜻)’라는 말씀을 화두처럼 가지고 살아요. 깨달음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들이 밥 먹고 일상생활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있다는 말이라서 좋아합니다.”

● 어떻게 하면 은혜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생각해보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의 삶은 모두 각각 대단해요. 어떤 사람은 자신이 좋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고 부모가 잘난 사람이 아니라서 별 것 아닌 삶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고유의 가치가 있어요. 나만의 경험, 내가 겪은 느낌을 다른 사람은 절대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죠. 내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나와 똑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어요. 그렇게 보면 누구나 다 은혜를 받은 거죠. ‘자기 자신의 삶은 누구나 다 위대하다, 누구나 다 은혜롭다.’ 이 사실을 깨달으면 누구나 행복할 수 있어요. 부처님만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이 세상에서 귀한 존재예요. 그걸 알면 행복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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