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꽃등에 불 밝히라

지리산국제훈련원②
글. 백시우 교무·지리산국제훈련원  

꾀꼬리봉 건너 앞산 허리께에 흰 안개가 걸쳐 가로로 길게 피어난다. 밝은 햇살, 푸른 하늘, 소나무 녹음. 이름 모를 하얀 큰 새 한 마리가 삼정산을 병풍 삼아 활공한다. 겹겹이 산 너머에 반야봉이 아른하다.
마당에 지어 둔 천막 아래 식탁을 줄 맞춰 늘어놓고 자리마다 의자를 놓는다. 곧이어 잘 마른 나무토막을 골라 수레에 실어 비 맞지 않도록 화덕에서 멀지 않은 처마 밑에 곱게 쌓는다. 방방이 이부자리 살피기를 잊지 않고 따습도록 불을 넣는다. 드문드문 자란 풀을 뽑으며 대각전으로 발길을 옮긴다. 방석을 깐 뒤 조심스레 불단에 올라 일원상 부처님에 묻은 먼지를 깨끗한 헝겊으로 훔친다. 맑은 물을 올리고 향불을 피우니 향내가 법당에 은은하게 배어든다.

정갈히 씻은 몸에 구김 없이 다려진 법복을 걸치고 선객들을 맞이한다. 객실에 짐을 부린 이들은 하얀 웃옷을 맞춰 입고 법신불전에 예를 올린 후 좌복에 앉아 서로 인사한다. 그 사이 훈련원장 김법은 교무님은 손수 화덕에 솥을 걸고 장작을 때 노각나무 조각을 끓인다. 노각차를 각자 텀블러에 담아 때때로 마시니 몸이 한결 따뜻하다.
육관응 교무님 지도 아래 평좌로 앉아 엄지와 검지를 붙이고 의식을 단전에 오롯이 주하니 길고 짧은 호흡이 자연히 골라지며 혀 줄기와 이 사이에 맑고 윤활한 침이 돈다. 달리 애쓰지 않아도 시든 꽃이 물을 받아들여 곧게 서듯 에너지가 모여 허리가 절로 펴진다. 가지가지 망상과 기이한 현상을 허공 꽃과 같이 여기고 쥐를 노리는 고양이처럼 오직 단전을 고눈다.

10분씩 집중 몰입하여 선하는 사이사이 간단한 요가로 굳은 몸을 풀거나 메리골드 꽃차를 우려 마신다. 지도인과 공부인들은 묻고 답하며 체험 나누기를 꺼리지 않는다. “그대 꽃등에 불 밝히라 ~♬” 마음 모아 부르는 노랫말이 아름답다.
때를 알리는 목탁이 울리면 삶은 감자, 고구마에 백김치, 동치미 그리고 풍성한 나물반찬을 곁들여 공양을 든다. 훈련원 밭에 자라는 고사리, 두릅, 곤드레, 취, 눈개승마, 명이, 부지깽이, 어수리, 전호, 참당귀는 몸을 살리는 먹거리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정진 또 정진. 해와 달을 잇는 수행인의 일과가 그러하다. 소리 없는 가운데 하나 둘 눈 맑은 납자로 거듭난다. 시나브로 어제와 다른 내가 된다.
약속된 두 번의 밤과 세 번의 낮이 흘렀다. 입선인들은 그 기간 누린 모든 것이 먼저 지나간 이들의 보시에서 왔다는 걸 알기에 늘 감사로 충만하다. 그들은 앞선 이들에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뒤에 올 분들을 위해 불전에 보시한다. 

주는 사람이 받는 사람이 되고 받는 사람이 다시 주는 사람이 되어 부처와 부처의 마음을 잇는다. 우리네 꽃등에 불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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