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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화목한 제삿날 2020년02월호

화목한 제삿날

글. 김경원

나는 시부모님 제사를 40여 년, 남편의 제사를 20여 년, 해마다 정성껏 제사상을 차려 친지 및 가족들과 함께 지내왔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힘이 들었다. 문득 남편이 생전에 당부했던 말들이 생각났다. “한집안에 종교가 둘이면 집안이 시끄러워진다. 생전에 가족들 모두 원불교에 입교시키고 떠나야 한다.”면서, 남편은 병환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교당에 나가 감각감상을 발표했고 가족 모두를 원불교에 입교시켰다. 그리고 가족들이 원불교의 끈을 놓지 않고 연결되는 방법은 당신의 기일에 집에서 번거롭게 제사음식을 차리는 게 아니라 교당에서 기념제사를 지내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가족들이 교당과 인연이 될 수 있는 기회라고 신신당부했는데….
하지만 난 조상을 잘 섬기는 것이 내 후손들에게 복을 지어준다고 생각하여 그동안 힘들게 제삿상을 차려왔다. 그러다 더 늦기 전에 남편의 뜻을 따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년부터 가족들과 의논하여 시부모님 제사는 교당에서 모시고 남편의 제사는 집에서 독경으로 지내기로 했다.
처음으로 남편의 제사를 음식이 아닌 꽃과 향으로 마련해놓고 가족 모두 둘러앉았다. 독경집을 보면서 좌종 10타 후 입정으로 시작하여 식순에 따라 진행했다. 자녀들이 부모전에 올리는 고사도 낭독했다. 서툴지만, 마음만은 지극 정성으로 남편의 기일을 지냈다. 그렇게 지냈던 작년 기일. 그동안 지냈던 제삿날보다 아버지를 더 깊이 추모하는 마음이 들었다며 아이들이 모두 좋아했다.
모든 제사를 원불교식으로 모시면서, 입교만 했던 가족들이 4축 2재 때라도 교당에 나올 수 있게 됐다. 또한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종교가 둘이 아닌 하나로, 적을 원불교에 두고 잘 살아가는 아이들을 본다. 이젠 모든 근심걱정은 다 내려놓고 남은 생은 편안한 마음으로 마음공부 하면서 살아야겠다.

한울안의 소소한 일상

글. 홍수연

한울안중학교의 시작은 사감쌤의 기상 알림으로 시작된다.
“빨리 준비해야지. 일어나라.” 아침 전쟁이 시작된다. 그럼 비몽사몽으로 화장실에 가서 눈에 붙은 눈곱과 잠을 자며 열심히 흘린 입 주변 침을 흐르는 물로 자국을 남기지 않고 지운다. 그리고 중력을 이기고 일어선 머리카락도 정리한 후 학교 옆 용흥지로 아침 산책을 간다.
요즘은 겨울이 되어 못 옆으로 부는 바람이 장난 아닌 추위다. 산책 후 책을 읽으면서 아침밥을 기다린다. 우리 학교는 밥이 맛있어서 그런지, 아침을 안 먹던 친구들도 아침을 먹으러 온다. 아침은 배를 두둑하게 채우기보다는 간단하게 채운다.
등교는 보일러가 따끈따끈하게 잘 틀어진 도서관으로 한다. 웬만해선 친구가 도서관에 먼저 자리 잡고 누워있다. 그럼 옆에 가서 점퍼를 벗어 이불로 쓴다. 잔적은 한 번도 없지만 피로가 달아난다.
오전 수업은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허벅지를 꼬집으며 잠과의 전쟁으로 보낸다. 곧 반가운 종이 울린다. 급식메뉴가 궁금해 친구에게 물어본다. 신기하게도 급식표를 다 외우고 다니는지 맛있는 음식 이름들이 입에서 줄줄 나온다.
점심을 엄청 푸짐하게 먹은 다음 롱패딩 지퍼를 끝까지 올리고 만반의 준비를 한 후 동물농장으로 간다. 토끼와 닭들이 혀를 날름거리며 문 앞에 서서 나를 반긴다. 메뉴는 양배추, 당근, 버섯…. 특식으로 싱싱한 지렁이를 잡아서 줄 때도 있다. 동네 어른들의 도움으로 학교 근처 어디에 지렁이가 많은지 쫙~ 꿰고 있다. 겨울방학이 다가올수록 동물들이 걱정된다. 무사히 새 학기 때까지 살아서 만나야 할 텐데….
오후 수업을 마치면 다음 주에 있을 한마음 축제 준비로 바쁘다. 나는 밴드부에서 드럼을 치고 친구는 기타를 친다. 같이 맞춰보기도 하지만 중간쯤 가면 다 따로 치고 있다. 다행히 밴드쌤이 오시면 같이 박자를 맞출 수 있다. 우리 밴드부는 여학생 3명에 남학생 1명인데 남학생은 보컬을 맡고 있다. 가끔씩 그 애를 놀려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번 한마음 축제는 학년을 마무리하고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한 해 동안 성장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시간이라 성공적으로 해야 하는데, 실수는 안하겠지?’라는 부담감이 생긴다. 열심히 축제를 준비하는 중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기숙사 침대에 누우면 피곤하면서도 친구들과의 수다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1학년은 자유학년제라 재미있게 놀고 체험했는데 2학년은 시험이 있어서 조금 걱정되기는 한다. 하지만 또 재미있게 놀 생각을 하고 있다.
뭐, 공부도 조금 해야 될 것 같다. 그러나 아직 먼 훗날의 얘기이니 너무 고민은 안 한다. 2020년에도 열심히 놀자. 한울안 홧팅!!!

반백일 기도를 마치고

글. 송성은

반백일 기도 회향을 맞이해서, 50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기도를 참여한 저에게 느껴지는 감동이 있습니다.
상반기 반백일 기도를 마칠 때쯤 ‘반드시 하반기 반백일 기도에는 새벽에 정성껏 임하리라.’ 다짐했던 일을 실행에 옮기게 되어서 참으로 뿌듯하고, 소태산 대종사님 제자로서 스승님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마음에 행복하고 충만해짐을 느낍니다.
기도를 통해서 들어진 감상이 여럿 있습니다.
첫째는, 대산 종사님의 세 가지 힘에 대한 법문 말씀(제 몸을 이기는 힘과 아는 것을 실행하는 힘과, 마음을 뭉치는 힘)을 제대로 경험했습니다. 저는 기도를 통해 제 몸을 이기는 힘이 생기면 아는 것을 실행하는 힘이 생기게 되고, 아는 것을 실행하는 힘이 생기면 마음을 뭉치는 힘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세 가지 힘이 바탕이 되면 어떠한 경계를 당할지라도 결단코 여래와 바꾸지 않으리라는 자신감과 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둘째는, 사은님께 무조건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온통 다 맡겨 버리면 된다는 강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어떠한 경계를 당할지라도 진실로 참회하고, 그 참회를 바탕으로 간절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하면서 심력을 쌓고 원력을 뭉쳐 소태산 대종사님 교법대로만 실천해 나간다면 모든 경계는 저절로 해결되는 이치가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기도를 통해 깨달은 가장 큰 소득, 바로 나를 다시 찾은 감동입니다. 새벽에 교당 대문을 열고 잠시 잔디밭에서 하늘을 올려다 본 적이 있습니다. 새벽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문득 ‘아! 나도 저 별처럼 빛나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경계 속에 살아오면서 잠시 가려지고 어두워지고 흐려졌을 뿐이지 아직도 여전히, 내가 가장 행복했다고 기억되는 시절에도, 내가 가장 힘들다고 느껴졌던 시절에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나의 안에 계시는 자성불이라는 별은 그 어느 순간에도 빛나고 있었고 빛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빛날 것이라는 깨달음이었습니다.
끝으로, 고요한 새벽 소법당에서 촛불을 밝히면서 한결같이 들었던 생각이 있습니다. ‘이 시간 고향에 계신 엄마도 청수를 갈고 불 밝히시겠지. 이 시간 총부에 계신 종법사님께서도 새벽 좌선을 위해 대각전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계시겠지. 이 시간 모든 간절함을 담고 있는 사람들이 저 법신불일원상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일원의 위력을 얻도록까지 서원하고 일원의 체성에 합하도록까지 서원하고 계시겠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원기 105년에 모든 교도님들이 그 어느 순간에도 반짝반짝 빛나는 별이 되시길 염원합니다.

7년만의 졸업

글. 맹민정

7년 전 나는 결혼 13년차의 학부모였다. 그 무렵 나는 영화 ‘82년생 김지영’과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직장을 다니니 육아가 문제였고, 퇴사하니 경제적인 어려움이 문제였다. 창업이 답일까 하는 생각에 학원도 다녀봤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 많이 우울해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우리아이가 나와 같은 회색빛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희망도 의욕도 없는 그 얼굴은 내 마음을 황망하게 만들었다. 내가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어 답답했다. 책을 찾아보고 부모교육을 찾아 듣고 나보다 먼저 엄마가 된 지인들에게 물어봤지만 아이의 회색빛 얼굴에는 변함이 없었다. 마음은 그런 방식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갈증들이 나를 방송통신대 청소년교육과에 입학하게 했다. 엄마로서 기본기를 다져야 아이에게 밝고 예뻤던 원래의 자기얼굴을 찾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공부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그러나 시험은 나를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의 길로 인도하여 소화제를 달고 살게 했다. 언젠가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약국에 가서 대용량 소화제를 달라고 했더니 약사는 누가, 왜 먹는 거냐고 물어봤다. 시험기간만 되면 소화가 안 돼서 그렇다고 하니 약사는 그럼 공부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육아에 대한 궁금증들이 하나씩 해결되어 마음은 오히려 편안했다. 그러나 다시 경제적 문제가 생기면서 휴학과 등록을 반복하며 겨우겨우 학점을 채워 오던 시간들이 쌓여 7년이 되었다. 한때는 졸업이 무슨 의미가 있나, 아이의 웃는 얼굴을 봤으니 졸업은 꼭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7년 만에 졸업을 앞둔 지금, 내가 배우며 얻은 것은 무엇일까를 돌아보았다. 내가 책상에 앉아 공부를 시작하니 아이가 책상에 앉기 시작했다. 나 역시 ‘나도 이렇게 공부하기 싫은데 아이는 더하지.’란 생각에 아이에게 공부하란 소리를 안 할 수 있었다. 나의 문제해결 방식과 생활양식을 아이가 그대로 본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니 행동에 신중함이 생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내가 나와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아주 많이 어리고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직장에서 인정받는 것이 성숙한 성인으로 인정받는 것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엄마가 되어 보니 나는 육체만 성장한 유치원생 수준이었다. 아이가 아이를 낳아 미성숙한 인격으로 대했으니 아이는 엄마를 의지할 존재로 인식하지 못했고, 불안했을 것이다. 그게 아이의 회색빛 얼굴을 만들었던 것이다.
7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한 감사한 시간이었다. 아이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하고 포기했을 것이다. “엄마”라는 이름은 나처럼 구멍이 많은 사람도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용기를 주는 위대한 이름이다. 다시 한번 나에게 “엄마”라는 이름을 준 아이에게 깊은 감사를 전한다.

호주의 좋은 점 몇 가지

글. 신영우

호주 사람들은 허세(虛勢)를 부리지 않는다.
“냉수 먹고 이 쑤신다.”는 우리말 속담이 있다. 그것은 유교적인 조선 왕조에서 유래된 허세이다. 한국 사람들은 돈이 없는데도 굳이 점심값을 자기가 내겠다고 우긴다. 중뿔난 자존심이다. “너 돈 없지?”라고 남에게 얕보이기 싫은 허세이다.
하지만 여기 호주 사람들은 돈이 없으면 없다고 솔직히 말하며 그것을 수치로 여기지 않는다. 그만큼 마음이 순백하며 오염되지 않은 것이다. 최근 들어 그런 순진한 호주인을 동양인들이 오염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호주인들은 대체로 자기를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가령 골코(GolCo)에서 남이 100만불 짜리 주택에서 살든 말든, 별로 존경하거나 우러러 보지 않는다. 그저 각자의 개인적인 삶일 뿐이다. 한국처럼 아파트 30평에 사는 사람과 50평에 사는 사람을 비교하지 않는다. 그래서 호주인들은 비교를 잘하는 한국인보다 상대적으로 덜 불행하다.
누가 청바지를 입든, 슬리퍼를 신든, 개의치 않는다. 나는 호주에서 꽤 오래 살았지만 청바지를 걸쳤다고 해서 내게 시비를 걸어온 호주 사람을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이 자유로운 나라에서 우리가 남의 눈치나 보며 구속될 바에야 무엇 때문에 이민 오는가? 나도 처음 이민 왔을 때 절망적일 만큼 호주를 이해하지 못했으며 아주 따분하고 재미없는(boring) 나라로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고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나라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관광객이 아닌, 인생의 중대 결정인 이민을 온 이상 좀 더 이 나라를 이해하고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꿩 먹고 알 먹는 식의 기회주의적인 이중국적이나 역이민(逆移民)을 나는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우리에겐 남아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한마디로 호주와 한국을 1:1로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한국이 한국의 논리가 있다면 호주는 호주의 논리가 있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니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충우돌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양하의 수필 ‘나무’처럼, 진달래는 진달래대로 족하고 소나무는 소나무대로 족하다. 우리는 그처럼 주어진 처지에 안분지족(安分知足)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한 가지 더, 호주는 한국보다 물과 공기가 맑아서 좋고 무엇보다 조용해서 좋다. 그것이야말로 소중한 건강의 필수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