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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신사요시대 2020년02월호

신(新) 사요시대

글. 노태형 편집인

일제강점기 제국주의의 핍박과 온갖 불합리가 옥죄고 가난이 덕지덕지 눌러 붙은 허기의 시대. 소태산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법으로 자력양성, 지자본위, 타자녀교육, 공도자숭배를 제시했다. 이는 곧 원불교가 세상과 소통해야 할, 아니 함께 사는 낙원세상을 만들어 가야할 나침반이 되었다. 하지만, 혹자는 100여 년 가까운 시간의 변화 속에서 사요를 완성형으로 진단하기도 했다.
흔히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던가!
다시 불합리의 시대가 도래했다. 정의의 기준은 자본에 의해 다 무너졌고, 기계문명에 의해 사람들의 삶은 조종당하며, 부가 부를 낳고 가난은 가난을 대물림하는 불공정의 시대이다. 또한 나라들마저도 지구의 미래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다시 사요정신을 되짚어 본다.

흔히 지금 시대를 1인 시대라고 한다. 혼밥혼술을 넘어 1인 제품, 1인 가정의 증가는 왜 우리가 자력을 양성해야 하는지, 어떻게 자력을 양성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더 자극하고 있다. 이는 또 현시대 은둔형 외톨이로 대표되는 인간 단절 현상 등에 종교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또한 지자본위 역시, 세상의 발달로 사회 현상이 세분화 되면서 전문성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구닥다리 신세를 면치 못하는 덕목이 되고 있다. 출가와 재가의 전문성이 교단에 적절히 활용되고, 출가 교무들 역시 오랜 경험과 지식의 축적을 통해 전문성을 쌓고, 그 전문성이 교단 각 분야에 발휘되어야 미래종교로 갈 수 있다.

한국사회의 신생아 출생률은 심각한 수준이다. 현 사회의 육아는 부모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그러기에 타자녀교육의 기본은 공동육아의 지침이 아닐까. 그리고 옛 시대에는 권세 가진 혜택자들이 공도자로 숭앙 받는 불합리가 많았다. 따져 보라. 이 세상이 누구로 유지되고 발전하고 있는지. 그러면 곧 이름 없이 사농공상을 떠받치며 가난하게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덕분임을 알게 된다. 이 모든 어른들이 곧 우리들의 공도자이고, 공도자로 숭배할 대상임을 알게 된다.
소태산의 눈은 1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참 밝고 감탄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