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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공적영지' 2020년01월호

 ‘공적영지’

글. 장진영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HK교수·교무

마음공부에서 알아차림은 매우 중요하다. 알아차림(마음챙김)의 대상은 몸(身), 느낌(受), 마음작용(心), 모든 현상(法)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생멸하고 변화하는 모든 존재가 그 대상이다. 현재 그것이 어떤 모습을 가지고 어떤 작용을 하든지, 그것은 임시적(일시적)으로 그러할 뿐이다. 무상(無常)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생활, 소속되어 있는 모든 사회적 관계, 우리를 둘러싼 환경적 조건, 그리고 우리 내면의 느낌, 생각, 감정 등도 또한 모두 변화한다.

모든 현상은 ‘알아차림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알아차리는 ‘그것’은 무엇인가? 유식에서는 보
는 것과 보이는 대상을 견분과 상분으로 나눈다. 다시 그 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을 자증분(자체분)이라고 하며, 자증분을 아는 것을 증자증분이라고 하여 인식의 과정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반면 선가(禪家)에서는 관점이 좀 다르다. 모든 분별이 사라진 원래 마음(본성, 자성)에 이미 갖추어져 스스로 반조하여 아는 앎(本知)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를 ‘공적영지(空寂靈知)’라고 부르기도 한다. 텅 비어 있는 가운데 신령스럽게 아는 것이다. 정산 종사도 “성품이 동하면 마음이 되고 마음이 정하면 성품이 된다.”고 하였다.

공적영지는 이미 온전히 우리에게 품부(稟賦)된 것이다. <수심결>에서는 이를 ‘성인에게 더하지 아니하고 범부에게 덜하지 아니하다’고 하였다. 지옥의 중생이나 대각을 이룬 부처나 차별 없이 평등하게 갖추고 있는 앎으로 본래 갖추어 있는 앎(本知)이다. 이는 주의를 기울여 알고자 하지 않아도 스스로 비추어 아는 앎이다.
공적영지는 분석을 통해 대상을 알아차리며 통찰을 얻는 것이 아니라, 직관으로 진리(본성) 자체를 비추어 알아차리며 ‘회광반조(廻光返照)’하는 것이다. 이는 생멸하는 현상을 대상으로 실체가 없음을 알아가는 현상적 알아차림과는 달리, 그 현상의 이면에 그러한 현상이 모두 연기적 존재임을 자성에 비추어 아는 본성적 알아차림이다. 실제 현상적 알아차림도 모두 공적영지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성품이 정하면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동하면 능히 선하고 능히 악하다.”(성리품 2장)고 했다. 성품의 자체에 있어서는 선하다 악하다 할 것은 없지만, 성품의 작용에 있어서는 선악이 차별이 엄연히 있다는 것이다. 분별은 경계를 따라 무위이화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진리의 작용이다. 다만 그 분별이 나타날 때, 선악과 범성의 차별이 생겨난다. 성품은 원래 분별과 주착이 없이 청정하지만, 성품에서 경계를 따라 한 분별이 나타날 때, 그 마음이 성품(공적영지의 자성)에 순하게 발하면 선(善), 지(智), 정(正)이 되고, 거슬려서 발하게 되면 악(惡), 우(愚), 사(邪)가 된다(원리편 10장).

알아차림은 기본적으로 현상에 주의를 기울여 개념적 망상을 해체하여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게 함과 동시에, 나아가 우리의 원래 마음(성품, 본성, 자성)이 작용할 때, 옮고 그름을 바르게 분별하여 취사선택을 잘할 수 있도록 실행의 기준을 제시해준다. 우리의 마음공부는 알아차림을 통한 마음공부이며, 이 알아차림을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경계(환경) 등 일체 현상들이 실체가 없음을 통찰하여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게 한다. 동시에 분별성과 주착심을 제거함으로써 본래 정신을 회복하여 그 본성을 떠나지 않고 살아가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