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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일몰은 위안, 일출은 장엄한 기운 상징 2020년01월호

일몰은 위안, 일출은 장엄한 기운 상징

연말연시 맞아 정리하며 위안받고, 새로운 각오 다지는 기운 받아보길
글. 박정원  월간<산>  편집장·전 조선일보 기자

연말을 맞아 취재를 겸해 일몰과 일출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신안을 찾았다. 신안은 한반도의 섬 3분의 1을 차지하는 다도해이기 때문에 섬에서 보는 일몰과 일출을 어느 지역보다 늦게, 그리고 어느 지역보다 빠르게 볼 수 있다. 물론 일출은 동해 인근에서 보는 게 제일 빠르다. 하지만 신안은 한반도 최남단과 그 아래 섬에서 일몰과 일출을 맞기 때문에 비교적 늦은 일몰과 이른 일출을 바라볼 수 있다.
신안에서 실제 일몰과 일출을 바라봤다. 주변 하늘과 바다를 주황색으로 물들이는 일몰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수평선으로 내려앉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바다 위에 조금 걸친 채 남은 태양이 수면 아래로 떨어지기는 순식간이었다. 마치 혓바닥을 내민 양, 수평선에 걸치자마자 불과 1분도 안 돼 수면 아래로 사라져버렸다. 여운도 오래 가지 않았다. 일몰의 화려함은 결코 길지 않았다.

반면 일출은 솟아나기 전부터 주변을 벌겋게 물들였다. 화려함보다는 장엄함이라고 할까. 솟아나기까지 바다와 하늘을 완전히 붉게 물들인 후 조금씩 조금씩 드러내는 태양의 그 장엄함에 정말 감탄 외 달리 표현할 말이 없었다.
사람들은 일몰과 일출을 곧잘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일출은 음양상승의 이치에 따라 양이고, 낮이며, 장엄함이고, 생명의 탄생이자 인생의 시작과 출발을 상징한다. 일몰은 음이고, 밤이며, 중장년의 화려한 인생을 거친 황혼이고, 생명의 휴식을 나타내는 끝을 상징한다고 흔히 말한다.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시작과 끝, 낮과 밤, 양과 음, 장엄함과 화려함, 이런 것들은 전부 우리네 굴곡진 인생과 관련된 개념들이다. 인생은 이와 같이 순환하고 또 순환하는 것이다. 그런데 새삼 그 의미와 가치를 조금 더 깊이 있게 깨닫고 느끼고 싶어진다. 이것도 나이가 들어서일 것이다. 일출과 일몰에 대한 동양적 가치나 의미에 대해 한 번 살펴보자.

한자로 동(東)을 파자하면 ‘날 일(日)’과 ‘나무 목(木)’의 합성어로 구성돼 있다. 나무에 태양이 걸려 있는 모습이라고도 하고, 나무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라고도 한다. 어쨌든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그래서 해가 솟는 동쪽은 생명이 잉태되고, 탄생하고, 만물이 생동하는 방향을 나타낸다. 하루 중 아침이고, 계절로는 봄이고, 일생에서는 성장기를 상징한다. 주역과 음양오행에서도 ‘동(東)’은 만물의 시초이며,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반면 노을을 뜻하는 ‘석(夕)’은 태양이 떠 있는 낮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밤도 아니다. 글자 모양, 즉 상형문자의 의미는 구름에 가려진 달을 형상화한 글자가 석(夕)인 것이다. 시간상으로 해질 무렵이다. 이 시각은 유(酉)에 해당한다. 닭을 나타내고 술을 담는 그릇을 상징한다. 즉 닭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고, 사람은 술을 마실 시간이라는 의미다. 속된 표현으로 술시다. 닭과 새들은 둥지를 찾아 돌아가는 시간이다. 닭은 새벽에도 울지만 닭장으로 다시 돌아갈 때도 꼬꼬댁거리며 운다. 스스로 일어날 때와 잘 때를 울음소리로 구분하는지 모른다.
몇 년 전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북한산 정상으로 향한 적이 있었다. 정상을 한참 앞둔 위문까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도저히 정상까지 올라갈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위문에서 일출을 보았다. 북한산뿐만 아니다. 한국의 유명 산 정상에는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지리산국립공원사무소 직원에게 직접 들은 얘기다. 너무 많은 등산객들이 신년 일출을 보기 위해 오기 때문에 특별히 그날만 새벽 4시에 천왕봉으로 향하는 중산리 등산로를 개방한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올라가는 등산객들이 너무 많아서 지리산사무소 전 직원들이 비상 근무를 한다고 했다. 그 새벽에 지리산 정상 1,915m까지 오르는 사람들이 몇천 명이나 된다고 했다.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전국의 산 정상에 올라가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족히 몇십 만 명은 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 사람들이 왜 이리 신년 일출에 목을 맬까? 과학적으로는 해석할 수 없다. 종교적, 혹은 전통적 가치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허무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산에 가면 이런 감정이 줄어든다고 한다. 산의 정기를 받으면 허무감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연 속에서 치유가 되고 위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에서 장엄한 일출을 보면서 산의 새로운 에너지 같은 정기를 받는 동시에 얻는 뿌듯한 자신감은 앞으로 닥쳐올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일출을 기다리면서 새로운 한 해의 계획도 세우고 각오도 다지는 시간도 된다. 나름 머리속에 정리된 계획과 각오는 일출을 보면서 더욱 확고하게 굳어진다. 다시 말해 일출을 통해 기운을 얻기도 하지만 사색과 철학, 기도의 순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이다.

일몰의 경건함과 일출의 장엄함을 보고 느끼면서 위안을 얻고 힐링을 느끼는 동시에 새로운 기운과 에너지를 얻는 연말연시다. 뭔가 허전한 시간에 그 허전함을 채워줄 어느 일몰 명소와 일출 명산에 가서 위안과 에너지를 받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