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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설이환 목칠공예 명장 2020년01월호

자연을
닮은 가구

설이환 목칠공예 명장

공방 안과 밖이, 아름드리 재목들로 가득하다.
재목들이 뿜어내는 나무향이 진하다. 나무망치 소리 또한 금속의 날카로움이 아닌 둥근 소리다. 설이환 목칠공예 명장(목공예관 동은)의 작품은 이 풍경과 퍽 닮았다. 나무결을 그대로 드러내 자연스러우면서 부드럽고 단아한 멋이 말이다.
“우리 집 가구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죠. 화려함을 경계했던 옛 선비들의 철학을 반영하듯 검소하고 단아합니다.” 할아버지에서 시작해 아버지, 다시 삼형제로 내려온 설 씨 집안의 전통가구의 역사는 이제 한 세기를 넘었다. 특히 아버지 설석철 선생에 이어 부자(父子)가 같은 분야의 대한민국 명장이 된 것은 국내 최초다. 그가 국가지정무형문화재(인간문화재)였던 아버지를 이어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아버지 공방이 놀이터였어요. 썰매, 목총 등을 형들과 다 만들었죠. 썰매도 우리 것이 제일 멋졌어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목재의 특성과 기술을 몸으로 익혔던 그. 고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본격적으로 아버지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광주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에 입학해 가구디자인을 전공한 것도 아버지의 전통작업에 현대적 디자인을 접목시키기 위해서였다.

“집에서는 기술을 배우고 학교에서는 현대적 디자인을 배웠죠. 학교에서의 작업은 내가 배웠던 작업과 많이 달랐어요.” 쇠못과 기계를 일체 쓰지 않고 오직 짜 맞춤으로 가구를 만드는 전통가구와 컴퓨터와 레이저 등의 다양한 기계를 사용해 디자인 요소를 가미하는 현대적 가구는 만드는 방식부터 달랐을 터. 그는 교수 연구실에 있는 디자인 책과 도록, 작품집, 논문을 빠짐없이 읽는 것으로 그 간극을 줄였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 때 하회탈 부조 퍼즐로 공예품대전 국무총리상을 수상한 이후, 각 대회의 수상 소식이 이어졌다.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에는, 전통가구를 디자인적으로 변형시켜서 현대와 접목시키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건 전통도 아니고 현대도 아닌 게 되더라고요. 국적 없는 가구가 된 거죠. 아니까 더 어려웠어요.” 이제는 두 개가 별개가 아니라, 전통이 뒷받침 되어서 발전해 가면 현대가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는 그. 지금도 소재를 접목시키고, 컴퓨터 장비를 사용하지만 나무의 성질과 공예품의 기법이 맞을 때의 이야기다. 전통 짜 맞춤 가구는 여전히 전통방식을 고수한다.
“목공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와 재료의 적절한 배치예요. 전통가구는 조각이 많이 들어가는데, 한 나무에서 다 사용하면 예쁜 무늬와 색이 안 나와요. 여러 나무에서 비슷한 무늬와 색깔을 찾아야 해요. 그게 굉장히 어렵지요.” 그렇기에 전통가구는 버리는 작은 조각 하나 없이, 쓰임새가 있다는데…. 무엇보다 “자연에서 온 재료이기 때문에 하나라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는 그의 말이 돌아온다. 이는 아버지의 철학이기도 했다고. “지금 밖에 있는 목재들은 켜 놓은 지 10년 이상 된 것들이에요. 아버지 생전에 켜 놓은 것도 있지요. 그래야 뒤틀림이 덜하고, 천천히 건조가 되어 온도와 습도에 적응해요.” 이렇게 오랜 세월 지켜본 목재에, 좋은 기술이 더해져야 비로소 사람과 함께 살기 좋은 가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의 가구는 모양새 또한 그런 자연과 닮았다.

“남도의 소목은 무늬와 결이 좋아요. 그래서 광택이나 색채를 피해 동백기름을 먹여 나무 결을 그대로 드러나게 하죠.” 장석 하나도 품새에 맞게 쓰고, 경첩도 작게 넣는다. 그의 가구들이 하나같이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이유다.
“앞으로 기술을 전수해 줘야지요. 전북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명장이 되고 나서 책임감을 더 느끼고 있어요.” 나무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어딜 가도 나무만 보인다는 그. 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그가, 사람과 함께 숨 쉬는 가구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