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교무님! 저 중학교 졸업하는 모습은 꼭 보고 가세요. 아셨죠?”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글. 박성근

인사 기간에 유임을 신청하면서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벌써 돈암교당에 온 지도 3년이란 시간이 흘렀구나!’ 세월의 흐름을 되짚어 보니 어느새 아이들은 졸업과 입학을 반복하면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청년 중에는 결혼 후 의젓한 부모가 되어 일반법회로 간 경우도 있고, 군입대한 청년, 또 다른 누군가는 대학을 졸업해서 사회인이 되었다. 변하지 않은 듯한 일상 속에서 주변은 변화로 가득했다.

지난 3년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법회시간에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해보았다. 아이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법회, 그리고 담당교무인 나를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다. 출발이 순조롭지 않았지만, 간신히 분위기를 잡았다. 자신을 ‘선배’라고 강조하던 6학년 남자아이가 말문을 열었다. “저는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었어요.”라는 아주아주~ 건조한 대답이었다. 순간 마음속에서 ‘세상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해도 너는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니니!’ 하는 억울함 같은 것이 밀려왔다.

이번에는 다른 한 명이 이런저런 좋은 점을 이야기했다. 다시 마음이 평온해졌다. 간사한 마음이다. 하지만 이왕 시작한 거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바꿔 아쉬운 부분을 유도해 보았다. 그러자 침묵을 일관했던 아이가 막 말을 하려는 순간, 갑자기 인전(가명)이가 끼어들었다. “야! 너 절대 말하면 안 돼. 큰일 난다. 교무님, 마상 입는다고!”라고 말하면서 그 아이를 저지시켰다. 순간 나는 ‘마상? 마상이 무슨 단어지?’ 하는 의문이 들어 인전이에게 물어봤다. 인전이는 ‘마음의 상처’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몇 주 전에 있었던 담임선생님과의 일화를 전해주었다.

지금 상황처럼 인전이의 담임선생님도 그동안 지내면서 느낀 점을 솔직하게 얘기하라고 했고, 같은 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단다. “선생님은 남녀차별이 심한 것 같아요.” 이것으로 인해 결국 선생님이 한동안 삐져있었다는 것이었다. 마상을 ‘입은’ 선생님의 기억을 떠올려 마상을 ‘입을’ 교무를 예상한 것이다
부정하고 싶지만 좀 전의 일을 생각해보면 인전이의 예상은 맞았다. 인전이의 설득력 있는 발언으로 인해 결국 나에 대해 아쉬운 평가를 하려고 했던 아이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어린이법회는 허무하게 아이들로부터 몇 마디 듣지도 못하고 끝이 났다.

그날 오후, 학생법회에서 나는 역시나 같은 질문을 했다. 사뭇 진지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나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 학생이 말했다. “이거 말하기 좀 오글거리긴 한데요. 교무님! 저 중학교 졸업하는 모습은 꼭 보고 가세요. 아셨죠?”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힘이 난다. 지난 3년간의 아쉬운 부분들을 뒤로하고 새로운 한 해도 즐겁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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