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한 멋에
빠지다

홍연화 지승공예 명인

반질한 모양새가 가죽 같기도 하고, 탄탄한 견고함과 조형감이 나무 같기도 하다. 그의 전시장을 찾은 이들의 질문도 비슷하다.
“다 한지로 만든 거예요. 지승공예라고 하죠.” 한지를 손으로 단단히 비벼 꼬아서 끈을 만들고 그 끈을 다시 겹줄로 꼬아 홑줄과 엮는 지승공예. “덕분에 손에 지문이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그만큼 열심히 작품을 만든 결과라 생각한다.”며 그가 웃어 보인다. 이제 지승을 빼고는 인생을 설명할 수 없다는 홍연화 지승공예 명인이다.

“지승공예는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불러도 돼요. 매일 작업을 해도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6개월에서 길게는 1년이 걸리죠.” 종이를 손으로 비벼 꼬아 재료를 만들고, 옷감을 짜듯 엮어낸 후에도 작품 위에 옻칠을 해야 하다 보니, 오랜 집중력은 물론 정성이 필요한 것. 그 과정을 거쳐야, 물을 부어도 새지 않고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는 내구성과 깊은 멋을 지닌 작품이 완성된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그는 한지를 더 가늘게 잘라 꼬고, 엮으면서도 한 번 더 꼬는 작업을 거친다. 속도는 더디지만 그의 작품이 “선이 섬세하고 부드럽다.”고 평가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자들에게 하나를 만들어도 후세에 남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들라고 해요. 우리가 유물을 만드는 거라고요.” 시간이 더 들어도 정성껏, 완성도를 높이라는 철학은 그의 작품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는데…. 연달아 수상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2005년 청주국제공예 비엔날레 입상에 이어 한지공예 부문 경기 으뜸이에도 선정되었다. 2013년에는 한국예총 명인으로, 지난 2016년에는 ‘성남시 공예명장 1호’로 지정됐다. 전통 한지를 소재로 한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올리기>에서 나오는 한지작품은 모두 그가 작업한 것이다. 반평생 동안 한길만 걸어온 그가 세상에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목수이셨던 아버지는 ‘공예를 하면 고되게 산다.’며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이 일이 참 좋았죠.” 어깨가 굳고 손가락에 변형이 오고 나서야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는 그. 하지만 작품을 하면서도 ‘다음 작품은 어떤 디자인으로 해야겠다.’며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그는 천생 공예가이다. 작품만 잡으면 무념무상이 된다는 그가 “아마 아버지도 지금의 나를 보면 기뻐하셨을 것.”이라며 웃는다.

“가장 행복할 때는 작품을 만들 때죠. 특히 전통 유물 재현이 보람이 커요.” 재현을 하면서 이 해석이 맞는 건지, 내 생각을 많이 넣은 것은 아닌지, 그 시대로 돌아가 생각하고, 과거와 끊임없이 대화 한다고. 유물 재현을 위해 모은 자료만도 헤아릴 수가 없다. “전통기법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을 만드는 게 더 재미있지 않냐고 가끔 물으세요. 하지만 저는 그 시대의 유물을 처음 만드는 거잖아요. 기법이 무언지, 어떻게 만들었는지, 새롭죠. 늘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거예요.” 또한 이를 통해 현대적 디자인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는데…. 전시장 곳곳에, 전통적 기법에 현대적 조형미가 어우러진 고운 색상의 함과, 티 테이블, 소반 등이 지승의 멋을 뽐낸다.

“지승공예는 누군가가 계승해야 할 전통문화예요. 제자들에게 우리가 안 만들면 누가 하겠느냐고 말하죠.” 이를 위해 자신의 작품 기술도 아낌없이 공개한다. 제자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수록 지승공예가 발전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 그가 30여 년 동안 후진 양성으로 이름난 한지공예가를 여럿 배출한 이유이기도 하다.
“뒤돌아서면 늘 지승이 눈에 보여요. 밤에 홀로 지승을 만지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요.”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신이 끝까지 걸어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는 그. 천 년이 지나도 본래 모습을 잃지 않는 한지처럼, 지승의 옆에 그가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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