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가을

나를 이토록 변화시킨 것은 무너지려고 할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들이다.

글. 김명아

올해 가을은 여느 해보다 길었다. 좋아하는 가을이 늘 짧게만 왔다가는 게 아쉬웠는데, 살면서 가장 많은 단풍과 높고 푸른 하늘을 보았고 그 속에서 행복함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계절이 길었던 게 아니라 내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인 것 같다.
그동안의 나는 늘 치열하게 살아왔다. ‘이제 고작 서른인 네가 뭐 그런 말을 하느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삶이 늘 힘들고 고단했다. 아홉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 댁에서 자라면서 눈치 보는 법부터 터득했다. ‘편부모 밑에서 자라 저렇게 컸지.’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항상 웃어야 했고, 내 부모나 나에 대해 무심코 던지는 날카로운 말들에도 예의 없이 행동해서는 안 됐다.
그렇다고 내 유년 시절이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하교 길에 먹는 간식이 맛있어서 행복했고, 깔깔대며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에 대해 얘기하거나 예쁜 볼펜을 사는 것에도 기쁨을 느끼며 살았다. 내가 왜 이런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고 큰 걱정 없이 유년시절을 보낼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내 아버지의 희생과 사랑 덕분이다.
내 기억 속 아버지는 추운 겨울날 잡아주었던 손이 참 따뜻했고, 유치원 소풍 때 늘 도시락을 싸주셨으며, 무심한 듯 했지만 내가 스치듯 지나가는 말로 먹고 싶다고 하는 것은 꼭 만들어 주시는 분이었다. 할머니 댁에서 2년을 산 후에는 아버지와 살았는데, 내가 대학을 다른 지역으로 가기 전까지 아버지는 늘 따뜻한 아침밥을 해주셨다. 대학교 졸업 후 첫 직장을 다니게 되면서 나는 집안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보냈다. 아버지와 나는 어떻게든 문제를 극복해보려고 했지만 스트레스로 인해 아버지에게 원인 모를 병이 와서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그러다 내가 26살이 되던 해에 직장에서 일하던 중, 아버지가 사망하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때 나는 세상이 무너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늘 나의 든든한 울타리였고 나의 하나뿐인 가족이었던 아버지….
세상에 이제 정말 나 혼자라는 사실은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었고, 또 한편으로는 나를 독하게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가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너는 세상에 죄가 없으니 늘 떳떳하게 살거라.” 그 말을 늘 가슴에 새겼다. 악에 받친다고 표현을 많이 하는데, 내 상황이 딱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 살아오던 나는 지금 계절이 주는 풍경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이토록 변화시킨 것은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나의 의지와, 내가 무너지려고 할 때마다 위로해주고 버팀목이 되어준 소중한 사람들 덕분이다. 두 번의 큰 아픔을 겪으며 내가 깨달은 것은 ‘세상에 나에게 당연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당연함에 익숙해져 소중함을 잊어버리면, 그때부터 관계에는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내 모습 또한 중요하다. 아직도 종종 외롭고 문득 이유 없는 두려움이 찾아와 힘들 지만, 그래도 늘 행복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너에게 보내는 다섯 단어

그래, 인생 뭐 있니? 많이 사랑하고, 많이 웃고,
많이 즐기다가 가면 되는 거 아닐까?

글. 김성덕

안녕 성덕!
거울 속 내 모습은 늘 보아왔지만 이렇게 내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하니 무척 어색하네. 아마 나 스스로가 내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른 적이 없어서일 거야. 그동안 숱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며 살았는데 왜 정작 내 이름은 부르질 못했을까? 그만큼 나보다 남들을 더 많이 바라보고 의식하며 살았던 건 아닐까? 내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뭘지 곰곰이 생각해 봤어. 몇 가지 단어가 떠오르더라.
그 첫 번째 단어는 ‘칭찬’이야. 우선 45년 동안 열심히 산 너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을래. 누구나 말 못 할 사연 한 개쯤은 가지고 있겠지만, 나 역시 어려웠던 고비를 잘 넘기고 살아준 걸 누구보다 칭찬하고 싶어. 앞으로 또 어떤 고비가 닥쳐도 포기는 하지 말자.
두 번째 단어는 ‘희망’이야. 아직 남은 인생이 너무 많아. 그러니 지금 여기서 안도하면 안 되겠지. 아직 이루지 못한 것들을 조금씩 이뤄가고 성취해가는 기쁨을 죽을 때까지 느끼며 살았으면 좋겠어. 큰 목표는 아니어도 좋아. 작은 성취감이 너를 행복하게 해 줄 테니까. 언제나 희망을 가슴에 품고 살자.
세 번째 단어는 ‘베풂’이야. 생각해보니 내가 그동안 받은 것들이 너무 많더라. 요즘은 부쩍 더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 가족, 친구, 이웃들이 나에게 준 사랑은 내 마음을 부자로 만들어 주었어. 그러니 이제는 너도 베풀며 살아야 하지 않겠니? 물론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말이야.
네 번째 단어는 ‘쉼’이야. 공부한다고, 일한다고, 애들 키운다고 늘 바빴어. 그런데 어쩌면 내 마음이 더 바빴는지 몰라. 바쁜 마음 때문에 내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앞만 보며 놓쳤던 것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지금이라도 잠시 쉬면서 주변을 돌아보자.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일지도 몰라. 어쩌면 그 안에서 새로운 발견을 할 수도 있겠지.
마지막 단어는 ‘죽음’이야. 죽음은 언제 어떻게 나에게 다가올지 모르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도 난 사실 죽음이 뭔지 잘 몰랐어. 지금도 마찬가지야. 어쩌면 그게 당연한 거고. 하지만 죽음을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은 드네. 이대로 당장 내일 죽는다면 얼마나 허무하겠어. 두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지 못했다고 후회할 것 같아. 왜 더 즐겁게 살지 못했는지 후회할 것도 같고.
그래, 인생 뭐 있니? 많이 사랑하고, 많이 웃고, 많이 즐기다가 가면 되는 거 아닐까? 내가 태어나서 행복해했던 사람들을 떠올리고 내가 죽었을 때 슬퍼할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그 사람들과 더불어 많이 사랑하고 즐기며 살자. 가끔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에 옷이 홀딱 젖더라도 지금처럼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겠니? 나는 너를 믿어. 그리고 사랑해.

고생했다! 앞으로도 파이팅

설레는 여행 계획만으로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게 참 좋아.

글. 최의환

최의환! 내가 내 이름을 부르려니 어색하다. 처음인 것 같기도 하고.
우선 서른 다섯 살까지 무탈하고 건강히 온 것을 축하한다!
‘인생은 사십부터’라고 하니 건강에 조금 더 신경을 쓰도록 해. 내년 6월 즈음이면 둘째도 태어날 예정이니 더욱더 건강에 신경을 써주길 바란다. 네가 사랑하고 지켜줘야 할 가족이 있으니 말이야. ​​​​​​​​
어느덧 삼십대 중반이 되어서 나를 돌아보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네.
종종거리며 바쁘게, 또는 물불 안 가리고 전투적으로 열심히 살진 않았지만 그래도 사부작사부작 일구어놓은 것이, 다행히 열매를 맺어 추수의 기쁨을 만끽하듯 품에 안은 일들도 몇 가지나 되었고. 그리 나쁜 인생은 아니었다고 자평하고 싶다.
무엇보다 서른 하나에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하여 첫째 준영이를 낳고 앞으로 태어날 둘째까지 네 가족 완전체를 만든 게 제일 잘한 일이 아닐까 싶다. 넌 정말 운이 좋은 녀석이야. 그리고 이렇게 한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어보니 새삼 아버지의 존재가 크게 느껴지고 가정의 소중함을 진정으로 깨닫게 된 것 같아.
아내와 지금 알뜰히 모으고 있는 여행자금으로 내년에는 우리 가족의 첫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지. 그 원동력으로 열심히 일하는 것 같아. 아내와 함께했던 신혼여행 이후 온 가족이 떠나는 여행이어서 그런지 벌써부터 마음이 들뜬다. 설레는 여행 계획만으로도 이렇게 즐거울 수 있다는 게 참 좋아. 앞으로 우리 네 가족 여기저기 여행하며 많은 추억을 쌓기를 바란다.
짧은 결혼 생활이지만 변함없이 엄마와 아내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고 견뎌내 준 아내 유진, 나의 가장 어린 친구인 내 아들 준영이, 존재 자체로 힘이 되어주는 아직은 이름 모를 배 속의 둘째, 좋은 날 같이 기뻐하고 슬픈 날 뜨거운 위로를 건네준 가족들, 그리고 친구들, 동료들 모두에게 감사하단 인사를 하고 싶다.
최의환! 지금까지 잘해 왔고, 앞으로도 잘할 거야. 천천히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걸어가자.
앞으로도 파이팅 하자! 나도 너를 많이 사랑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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