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색 방

방들은, 사람들은 오늘도 잘 사는가.

글. 윤보황

스무 살이 되던 1월 1일, 부산에서 서울의 한 고시원으로 상경했던 그날로부터 어느덧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나는 여섯 번의 이사를 했고, 여섯 번째 이사를 한 지 이제 일주일이 지났다. 이사는 고된 작업이지만, 이사를 할 때마다 느끼는 기분은 꽤 개운하다. 다 버리고 더 나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 같은 것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희망은 사실 가짜다. 진짜 버리거나 옮기고 싶은 것은 물건이나 집이 아니라 삶을 무겁게 누르고 나를 구질구질한 인간으로 만드는 어떤 순간이나 기억들이니까. 집은 물건을 버린 만큼 비워진다. 하지만 인생은 버려지거나 도무지 새것이 되지 못한다. 알면서도 매번 이사를 할 때마다, 물건이나 사람을 버릴 때마다 그 가짜 희망에 매료되는 이유는 왜일까.
단 한 평. 한 평짜리 고시원 방에서 독립을 시작했다. 나는 그 방과 방 바깥에서 혼자 자라는 법을 익혔다. 그 방은 햇빛이 강한 오후면 얼굴만한 크기의 창문을 통해 녹색 빛이 퍼져 들어왔다. 창문 전체를 덮은 고시원 이름을 새긴 녹색 스티커 간판의 빛이었다. 그리고 그 스티커의 청록빛은 방 전체를 비추며 식물처럼 나를 조금씩 키웠다. 조용한 사람으로. 조용하고 아픈 사람으로.
침대에 누워 빛을 받고 있으면 녹색 수술복을 입고 곧 위험한 수술을 받는 사람의 기분 같은 것이 되었다. 나는 거기서 의사도 되고 환자도 되고 간병인이 되었다. 매일 방 밖에서 8시간씩 서서 일을 했기 때문에, 꿈속에서는 동화 ‘빨간 구두’처럼 잘린 발이 계속 꿈속을 뛰어다녔다. 그래도 꿈속은 넓어서 뛰어다니기 좋았다. 그런 방들에서 사랑도 하고 예쁘기도 행복하기도 했다.
한 평에 한 평을 덧붙이며 방을 옮겨 다니면서 이제 반려 고양이 둘과 쌍둥이 언니와 함께 방 세 칸이 딸린 13평의 집에 도착했다. 여섯 번째 이사를 하기 전날 밤, 나는 고양이들을 먼저 집으로 옮기면서 지금까지 살아 온 시간을 생각했다. 긴 시간, 멀리까지 나를 비춰 온 녹색 빛을. 이제 그 빛은 반려 고양이 눈동자 속에 있다.
가끔 다른 사람 집에 가면 그 집이 그곳에 사는 주인과 아주 닮았음을 느낀다. 혹은 방이 그곳에 사는 사람의 얼굴을 베끼고 있음을 느낀다. 방들은, 사람들은 오늘도 잘 사는가.
그리고 이제 나는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쓴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단을 조금씩 이해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개츠비는 그 초록색 불빛을, 해마다 우리 눈앞에서 뒤쪽으로 물러가고 있는 극도의 희열을 간직한 미래를 믿었다. 그것은 우리를 피해 갔지만 문제 될 것은 없다. -내일 우리는 좀 더 빨리 달릴 것이고 좀 더 멀리 팔을 뻗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맑게 갠 날 아침에…….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자율이 있지만 규칙적으로

쉬는 날 집안일도 하고 부지런히 움직일 것을 규칙으로 두었더니
몸도 개운해지고 정신도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글. 이진환

어머니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독립을 했을 때 너에게 간섭을 하지 않겠다.” 그리고 2019년 6월, 정치·사회·문화는 모르겠으나 나는 경제적으로는 독립을 하였다. 공무원 시험 최종합격 직후, 아산에 살고 있는 친한 친구의 “우리 집에 와서 같이 살자.”라는 초대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좋다고 말했다. 나는 바로 짐을 쌌고, 낯선 지역인 아산에서 현재 대기발령 상태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본가로부터의 독립 이후의 몇 가지 변화를 얘기하자면 요즘은 “진환아 밥 먹어라.”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아닌 싸이의 ‘I luv it’ 알람 소리에 일어난다. 그리고 아침을 늘 먹었지만, 독립 이후 아침은 잠을 조금이라도 더 자느라 가볍게 과일만 먹는다. 집안일을 하는 것에도 변화가 있다. 요리, 청소, 빨래, 집 정리 등에 있어서 순천집과는 다르게 당번이 정해져 있지 않다. 그리고 누가 나에게 시키지 않는다. 친구와 내가 자율적으로 한다. 전과 달라진 것에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자율적으로 규칙을 두어 생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큰 강제성은 없지만 몇 가지 규칙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매우 크다. 규칙이 나를 통제하는 마지막의 끈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또한 이 규칙이 나를 잘 살고 못살고 하게 가르는 기분도 든다. 쉬는 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핸드폰으로 유튜브와 웹툰만 보고 있으면 몸은 편하다. 하지만 저녁이 되었을 때까지 누워있다 보면 그날 하루는 무기력감에 빠진다. 그래서 쉬는 날 집안일도 하고 나가서 맛있는 것도 먹으며 부지런히 움직일 것을 규칙으로 두었다. 그랬더니 조금 더 마음이 편해지고 몸도 개운해지고 집도 깔끔해지니 정신도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집에서 나와 살다 보니 부모님 생각이 종종 난다. 내가 독립생활을 하다 보니, 부모님이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독립했을 때는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우리 4남매를 낳아 길러주신 게 새삼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어릴 때에는 자녀의 숫자가 남들보다 좀 많기 때문에 힘들었을 거라는 추상적인 생각에서, 자녀 하나하나 낳았을 때 짊어져야 하는 시간과 책임과 비용 등 여러 가지 구체적 생각을 하다 보니 감사의 마음과 존경의 마음이 한없이 커진다. (요즘 어떻게 갚아야 할지를 몰라 걱정이 크다.)
본가로부터 독립 이후의 삶에서 생각하는 것은 재미있는 삶이다. 나의 삶의 원동력은 재미이다. 일하는 것도 재미가 있어야 하고 쉴 때도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소소한 재미를 찾아가며 일을 하는 데에는 나름의 의미가 있다. 만족감을 느낄 수 있고, 어떤 것을 성취했을 때의 자존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쉬는 날에 밖에 나가 쉬는 날임을 환기하고 여가를 즐기면 그것 또한 행복하다. 아직 정식 발령 전이라 단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고는 있지만 내 삶의 방향이 정해지고 있는 것 같아 그것마저 재미가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상당히 재미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육아 전쟁의 포로

뛰어난 아이는 장미꽃 같은 아이지만 우리 아이는 풀꽃 같은 아이였다.

글. 최진아

아이를 키우다 보면 시기마다 마음가짐이 달라지게 된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다른 건 다 못해도 좋으니 건강하게 무사히만 태어나다오!”라고 생각하고, 아이가 무사히 건강하게 잘 태어나 막 걷기 시작하면 “다른 건 다 못해도 좋으니 큰 사고 없이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니 처음의 마음가짐은 다 잊어버리고, 육아전쟁이 시작되었다. ‘학교 입학 전에 읽기, 쓰기, 수학을 어느 정도 마스터해야 하는데….’부터 시작해, 주변 학부모들에게서 여러 가지 학습 정보와 학원정보를 듣고 오면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고학년 때는 예체능을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니 저학년 때 다 해놓아야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우리 아이도 태권도, 피아노, 미술은 기본으로 하고, 외국어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점점 아이와의 마찰도 늘어나며 ‘진정 이것이 육아 전쟁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어릴 적에는 자연스레 배웠던 줄넘기나 인라인 스케이트 같은 것도 돈을 내고 학원을 보내는 시대이다 보니, 아이도 나도 즐기면서 배워가야 할 것에서도 조바심을 내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내 아이만 뒤처지면 안 되는데…. 선생님은 아이를 어떻게 볼까, 친구들에게는 인기있는 아이가 될까, 혹시 따돌림을 당하거나 힘이 센 친구에게 맞지는 않을까.’ 이런 걱정들이 마음에 가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엄마로서의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지며 육아 전쟁의 포로가 되어있었다. 포로가 된 삶은 우울했고 힘들었고 화만 났다.
매일을 ‘왜 내 아이만 이렇게 느릴까. 왜 이걸 못하지. 왜 하기 싫다고 땡깡만 피울까.’라는 생각을 하며 아이 탓만 했다.
아이도 남편도 다 두고 혼자만 따로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던 어느 날이었다. 육아 서적을 보아도, 자녀교육강연회를 가도 달라지지 않던 나의 마음가짐이 시 한 구절로 달라졌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 나태주 시인의 ‘풀꽃’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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