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북한으로 가고 싶었다

나이가 어린 나도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느끼고 힘듦을 느끼는데
어른들은 오죽할까 싶다.

글. 김상호(가명) 한겨레중고등학교

나는 탈북을 했다. 벌써 10년이 지났다. 지난 10년은 나에게 가슴에 비수가 박히는 시간이었다. 나는 초등학생 때 처음 알았다. 탈북민은 특별하다는 것을. 나는 ‘탈북민은 행복하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 삼촌, 이모, 누나 등등이 아직 북한에 있다.”고.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흘려들었다.
어느 날 새벽, 어머니의 쓸쓸한 뒷모습이 보였다. 어머니의 얼굴은 너무 지치고 힘들어 보였다. 나는 걱정이 돼서 어머니께 다가갔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한국에 오지 말걸….” 혼자 끙끙 아파하며 힘든 것을 참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행복하고 좋은데 왜 싫다고 말씀하실까?’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친구 한명이 나에게 말했다. “너 탈북자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어, 맞아.”라고 대답했다. 그날 이후로 친구들은 하나둘 나를 멀리하였다. 친구에게 왜 그러는지 이유를 물어보았지만 친구는 “너는 탈북자야. 우리의 적이라고.”라며 피했다. 나는 상처를 받았다. 상처를 받고 친구가 하나둘 사라지며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음악 시간이었다.

나는 노래에 재능이 없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북한사람은 원래 노래를 못해.”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내가 북한사람이라는 걸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다. 전학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탈북민으로 살아가며 느낀 세상은 너무 치욕스러웠다. 항상 생각했다. ‘나의 부모, 형제, 가족들은 지금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을까?’ 차라리 다시 북한으로 넘어가고 싶었다. 대통령에게 나를 다시 북한으로 보내 달라고 하고 싶었다. 그때부터 나는 ‘한국 사회는 정말 이기적’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이가 어린 나도 이렇게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느끼고 힘듦을 느끼는데 어른들은 오죽할까 싶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북한과 남한은 많은 대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라는 TV프로그램에서는 탈북과 북송 과정에서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북한 사회를 잘 모르는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을 알리는 측면이 있는 방송이지만, 탈북자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과장된 이야기도 있다. 이것이 오히려 오해를 불러오고 남한 사람들에게 이상한 해석을 하게 할 수 있다. 그 프로그램이 북한의 변화된 현실을 재조명한다면 많은 국민들의 생각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통일이 된다면 북한에 막혀서 섬나라처럼 존재하는 우리나라의 육로가 개방될 수 있다. 중국, 러시아, 인도, 런던 등이 육로로 이동 가능해진다면 거기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은 막대할 것이다. 그동안 엄청난 운송비 때문에 상품화하지 못했던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게 될 것이고, 상품의 생산량이 늘어나면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 실업률이 줄어들 수 있다.

그리고 석유나 가스 등의 자원을 러시아 또는 중국에서 송유관을 통해 공급받을 수 있다면 경쟁 국가와 가격 경쟁에서도 엄청난 이익이 발생할 것이다. 외교적인 측면에서도 국경 개방을 통한 외교 정책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친밀한 국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가족들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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