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으로 시작된 희망캠프

비는 이때다 싶었는지 억수로 쏟아졌다.

글. 박성근

“얘들아, 미…미안한데 우리 다시 내려서 지하철 타야 될 것 같은데?”
아이들의 표정은 짜증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지하철 환승 대신 택시를 타자고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아침 출근 시간에 비까지 내려, 아이들이 캐리어(짐 가방)를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이 안쓰러워 내린 순간의 판단이었다.
지상으로 올라와 택시를 잡으려고 하니, 비는 이때다 싶었는지 억수로 쏟아졌다. 목을 늘어지게 빼고 온 사방을 봐도 빈 택시는 보이지 않았다. 서울교구에서 빌린 버스의 출발 시각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빗물에 옷과 신발이 젖을까 봐 소극적이었던 나는 더 이상 여유가 없었다. 신발에는 이미 물이 한가득했다.
마침 반대편에서 손님이 내리는 택시를 발견했다. 다행히 택시를 탔지만, 차량정체로 속도가 절망적이었다. 기사님은 연달아 “앞에 계신 분이 선생님인 거 같은데 이거 완전 판단 잘못했는데~. 아이고, 이거 버스 못 타. 완전 판단 잘못했는데~.” 하는 말을 반복했다. 타들어 가는 내 속도 모르고 계속 그러시니 ‘기사님 이제 그만 하시죠.’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꾹 참았다. 어렵게 택시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면서, 간신히 버스출발 시각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아이들은 이미 지쳤다면서 불평했다. 아이들이 너무나도 기다렸던 청소년 희망캠프 첫날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사실 한 달 전부터 희망캠프를 홍보했었다. “얘들아~ 이번 청소년 희망캠프는 정말 재미있을 거야. 컬러런 안 해봤지? 자료화면 봤는데 대박이다? 친구들에게도 소개해 줘. 이번에 초청 가수는 ‘오마이걸’이야!”
다행히 좋은 소식들이 이어졌다. “교무님~ 이번에 우리 아이 희망캠프 간다고 합니다. 제가 딸아이 친구 엄마에게도 말을 해놓았어요. 생각해 보겠다고 하네요.” “교무님 이번에 우리 아들도 보내려고 합니다. 프로그램이 너무 좋던데요?” 이렇게 해서 세 명의 아이들과 함께 희망캠프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하늘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첫날부터 날씨가 엉망이다. ‘제발 익산에는 비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염원에도 야속하게 비는 계속 내렸다. 과연 2박 3일의 캠프에서 아이들은 어떤 모습을 담아갈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나 또한 고2 때 아이들과 원광대학교 캠퍼스를 누비면서 희망캠프에 참석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벌써 20년이 넘은 추억이다. 함께 시간을 보냈던 인연들은 그날을 ‘7.25’라 불렀다.
지금은 숙소에 에어컨이 없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지만, 그때에는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잤었다. 얼마나 무더웠던지 낮에는 소방차가 와서 물을 뿌려주어야 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이번 희망캠프를 어떻게 기억할지……. 제발 말 그대로 ‘희망’캠프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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