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성사 백주년 : 교단사적 맥락

글. 이동하 솔로몬경영개발원 소장

비분강개하여 의롭게 목숨을 던지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은인자중(隱忍自重),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면서 때를 기다리며 동지들과 더불어 실력을 양성하고, 마침내 뜻을 이루기는 더더욱 어렵다. 혼자서 살신성인(殺身成仁)하기가 어려운가? 동지들과 더불어 활신성인(活身成仁)하기가 어려운가? 법인성사가 있었던 1919년 당시 국내·외 상황을 살펴보자.

국내는 3·1 독립만세운동(33인 중 기독교계 16명, 천도교계 15명, 불교계 2명. 천도교계가 중심, 기독교계가 힘을 실어줌.)에 이어 4월 11일 상해 프랑스 조계(租界)에서 ‘대한민국’을 국호로 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정부는 경제적 기반이 약하다 보니 여러 곳을 옮겨 다녔던 풍찬노숙(風餐露宿)의 과정이었다. 공자는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식(食)·병(兵)·신(信)’ 이 세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하면서 ‘신’을 최고로 중시하였다. 경제력이 튼튼해야 국방력을 키워서 내우외환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신성단결의 지도력이 없으면 적은 내부에서부터 생긴다. 만리장성도 내부로부터 문이 열렸던 역사적 교훈이 있다.

세계사적으로 보면, 제1차 세계대전 후 1919년 1월 파리 강화회의에서 미국 윌슨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하여 강대국 지배를 받던 약소민족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우리나라 3·1 운동과 중국의 5·4 운동에도 영향을 미쳐 반봉건·반제국 운동이 일어났다. 1919년 6월 4일 미국 상원은 여성 투표권을 보장하는 수정 헌법 제19조를 통과시켜 1920년 총선에서 우먼 파워가 행사되기 시작했다. 1919년 독일에서는 언론·집회·신앙·양심의 자유, 의무교육과 사회보장제, 노동권 보호는 물론 근대 헌법 사상 처음으로 ‘소유권의 사회성’과 ‘재산권 행사의 공공성’,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생존권 등을 담아 자유·민주·복지 국가의 초석을 담은 <바이마르 헌법>을 제정하였다. 바이마르 헌법은 현대 헌법의 전형이 되었다.

우리가 역사 공부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시대사적 코드를 풀 수 있는 ‘역사적 통찰(Historical Insight)’이 생기기 때문이다. 반봉건·반제국, 계급·남녀 차별 타파의 후천개벽 여명기였던 1919년 당시, 소태산 대종사께서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일까? 3·1 운동 참가, 무장항일투쟁 전개, 파리 평화회의 호소일까? 도가(종교)는 국가나 정치 상황에 관심을 둔다 하더라도 직접적 관여를 해서는 안 된다. 인존·중도·공생(人尊·中道·共生)의 후천개벽시대에 새로운 회상(會上)을 펼쳐가는 과정은 ‘영생을 보고 하는 대역사 작업’이다. 1919년 교단 상황은 후진을 기르고 실력을 양성하며, 물질적·정신적 기반을 다져야 하는 시기였다.

기업경영에 비유하자면, 소태산 대종사님의 대각은 혁신적 기업의 창업정신·경영이념이요, 법인성사는 창업 발기인과 더불어 법인설립 등기를 필(畢)하는 일이다. 교단도 조직이다. ‘조직의 관점’에서 보면 원백성업보다도 ‘법인성사 백주년’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지난 백년전에 음계로부터 인증을 받았다면, 향후 100년, 아니 30년 한 세대 안에는 양계 세상으로부터 세계종교로 인정받는 것이 소태산 대종사님과 선진 제위께 보은하는 길이라 본다. 이 시점에서 우리 교단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1)시대를 선도하는 교육/교화 콘텐츠 개발, 2)고령화/지역간 빈부 차를 고려한 교당 통폐합, 3)청소년/해외/미디어 교화 활성화를 위한 전문 인재 육성과 배치, 4)사업/경영 역량을 갖춘 출가교역자 육성, 5)산업기관 수익경영/교단 경제 안정화를 위한 출·재가 파트너십 강화.
법인성사의 교단사적 맥락을 생각하며 자신을 먼저 돌이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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