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행자

글. 정인신

입추를 지나니 바람결이 제법 시원해졌습니다. 하늘도 한결 높아 보이네요. 얼마 전 티베트 명상순례길에 가져온 설국차를 마시며 더위에 지친 심신을 조금 이완시켜 봅니다.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고산지대에서 피워낸 꽃이라서 그런지 맛과 향이 독특하네요. 그 차향에 젖어 있다가 순례길에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라 잠시 명상에 잠겨 봅니다.
우리가 숨을 쉴 때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몸 안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합니다. 그런데 티베트의 전통적 자비 수행법인 통렌명상은 이와 반대로 숨을 들이쉴 때는 세상의 모든 고통과 나쁜 것을 내가 다 들이마신다고 생각하고, 숨을 내쉴 때는 세상을 향해 이익이 되고 좋은 것을 다 내어준다고 생각합니다. 이 땅에 살아있는 생명의 고통, 괴로움, 두려움, 불안을 내 마음속에 받아들여 정화시켜서 기쁨과 행복으로 내어주는 수행법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영혼을 성숙하게 만들어 준다고 하는군요.

내 안의 생각을 바라보면 참 이기적일 때가 있습니다. 무엇이 자신을 끌고 다니는가 보면 ‘내’가 중심이 되어 흔들릴 때가 있지요. 고요한 본래 마음은 모양도 색깔도 없고 어디에도 걸리고 막힘이 없지만, 중생의 삶은 오만가지 분별이 왕래하는 곳이지요. 우리가 그 중생심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를 정화하는 명상이 필요합니다. 또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다면 나의 영혼도 더욱 성숙해질 수밖에 없겠죠. 이처럼 중요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수행자는 법위가 높아지면 저절로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이 되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보고 듣고 하여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성자의 삶이 되겠지요. 일체중생을 아끼고 사랑하는 일을 누구에게 미루기보단 작지만 나부터 시작할 때 세상은 평화로워집니다.
오래전, 인도 다람살라에 갔을 때 아주 소박한 왕궁에 초대받아 달라이라마 스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달라이라마는 1959년 중국의 식민통치에 항거하는 티베트인들의 반중봉기가 실패한 후 탄압을 피해 인도의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티베트인들의 주권 보호를 위해 비폭력 노선을 지키고 있는 분이죠. 그날 티베트인들이 찾아와 눈물로 하소연할 때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들의 등을 어루만져 주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살고 있는 티베트에 꼭 가보고 싶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올여름 휴가 겸 티베트 명상순례에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여행자가 되어 기쁘게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쉽지 않은 일정이었습니다.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신비의 땅으로 알려진 그곳은 인도와 네팔의 북쪽, 가장 높은 고원지대라서 평균 고도만 4,500미터인 곳이었죠. 티베트의 수도인 라싸에 도착하던 날, 가장 어려운 것이 어지럼증과 호흡이었습니다. 산소호흡을 하며 안정을 취했지만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우선은 물을 많이 마셔야 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의 여유를 찾는 일이었지요.
불교의 위빠사나 수행처럼 천천히 걸으며 느끼고 깨닫는 알아차림, 호흡을 바라보고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찾아 조율하는 그 자체가 명상이요, 수행이었습니다.
옛날 한 수행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스승님, 스승님과 제자들은 어떤 수행을 합니까?” “우리는 앉고, 걷고, 먹는다.” “하지만 스승님, 앉고 걷고 먹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 스승님이 말했습니다. “앉아 있을 때 앉아있다는 걸 알고, 걸을 때 걷고 있다는 걸 알고, 그리고 먹을 때 먹고 있다는 걸 안다.”

그 스승의 말처럼 우리는 지금 ‘여기, 이 일 이 일에 일심이 되어있는가.’를 돌아봐야겠지요.
달라이라마 스님이 머물렀던 포탈라궁에는 수많은 방문객이 몰려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루 2천 8백 명으로 제한하는데 매일 그렇게 순례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답니다. 오래된 사원들에도 간절한 발원이 담긴 기도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숨이 가빠오는 높고 험한 산지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오체투지를 하며 예불을 드리는 사람들…. 티베트의 불교란 먹고 말하고 숨 쉬는 행위 모두가 수행이며, 전생의 악업을 끓고 해탈에 이르기 위한 속죄의 고행이라니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다음 생의 준비를 위한 이생의 여행길인 거죠. 내 삶을 돌아보며 내면을 성찰하고 정화하여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삶의 길에서, 우리는 이 지구별에 찾아온 여행자입니다. 오늘도 그 여행은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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