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과 나의 ‘관계’ 

그들을 내 마음속에 머물게 하는 것은 관계성을
얼마나 깊이 깨닫느냐이다.

글. 강명권

얼마 남지 않은 소태산기념관 봉불식에 맞춰 원불교봉공센터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업무를 마치고 서울역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그 뜨거웠던 날씨가 어느새 차가운 기운으로 바뀌어 서울역에 감돌고 있다. 여전히 거리의 사람들은 여름옷을 입은 채 박스 한 장을 깔고 잠을 자고 있다.
그동안 서울회관의 재건축으로 인하여 서울역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전에는 급식을 마치고 나면 노숙인들을 보지 않으니 노숙인에 대한 생각이 머리에서 쉽게 떠났었다. 하지만, 서울역에 살다 보니 그들에 대한 생각을 늘 하게 된다. 관계성이 만들어지면 노숙인이든 어려운 이웃이든, 외국인이든 그들을 위한 고민을 한번 더 하게 되는 것이다.
즉 그들을 내 마음속에 머물게 하는 것은 그런 관계성을 얼마나 깊이 깨닫느냐이다. 그에 따라, 인류를 내 가족, 내 형제로 받아들여 관심을 가지고 살피고 고민을 하게 될 때, 소태산 대종사께서 말씀하신 하나의 세계, 일원가족, 시방일가 사생일신이 되어질 것이다. 마음속에 세상의 사람들을 담아두지 않으면서 어떻게 ‘한 가족, 한 형제’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그것이야말로 공염불이고 공허한 교리를 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산 종사께서는 재위 시 어떤 나라에 재난이 났다는 총부 간부들의 보고를 듣자마자, 바로 그 자리에서 “다 함께 그 나라 사람들을 위하여 심고를 모시자.”고 하셨다. 대산 종사의 마음은 늘 시방일가를 품고 사생일신이 되어 있으셨다.
이론적 교리로 한 가족 한 형제가 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막상 내 앞에서 노숙인이 술에 취하여 비틀대고 그분이 앉아있던 자리에 술병이 가득한 모습을 볼 때 과연 손잡고 이야기하거나, 그들을 위해 진심으로 심고를 모실 수 있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 세상은 의지를 가지고 행동화 되었을 때 변화된다.
원불교가 말하는 은혜세상은 누가 만드는 것인가? 소태산 대종사께서 “우리 교단은 오만 년 대운을 가진 교단.”이라고 하였으니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옛 속담에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이 있다. 잘난 손가락이든 못난 손가락이든 다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기에 손에 조그만 상처가 나더라도 잘 치료하고 보살펴야 한다. 세상 사람을 넘어서 전우주의 생령들까지 자기 열손가락처럼 느껴지고 연결이 될 때 소태산 대종사님의 교리가 대평화 대낙원 세상을 만드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얼마 후면 다시 소태산기념관으로 사무실을 이전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다고 잊지 않고, 노숙인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과 생령의 애끊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함께 하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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