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성’

글. 장진영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HK교수·교무

‘원래 마음’에서 경계를 따라 ‘일어난 마음’을 감각(느낌), 생각, 감정 등으로 부른다. 경계와 접촉(接觸)할 때, 일어난 마음들은 모두 ‘분별(分別)’이다. 분별은 모든 생명체의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에 해당한다. 모든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이로운 것(利)’과 ‘해로운 것(害)’ 등을 분별한다. 그렇게 모인 경험 정보는 각자의 심층 의식에 기억(저장)되며, 이렇게 저장된 기억 정보는 다음 찰나의 마음작용(심신작용), 즉 ‘일으킨 마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긍정적 측면에서 분별은 생존의 조건으로서 사리(事理)에 대한 바른 인식과 판단을 말한다. 반면 부정적 측면에서 분별은 언어적 작용으로 강화되고 확장되는 개념적 망상(희론)을 말한다. 희론(戱論)은 빨리어로 빠빤차(papaca), 산스크리트어로 쁘라빤차(prapaca)로 불리는데, 여기서는 개념의 확장, 개념의 증식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마음공부에서도 부정적 측면의 분별은 해체하고 제거함으로써 일심을 양성하고 궁극적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반면에 긍정적 측면에서는 다만 분별성(分別性)만 없애고 (긍정적) 분별은 분명히 드러냄으로써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는 양성하는 실행을 할 수 있다.

<구사론>에서는 ‘분별’을 자성(自性)분별, 수념(隨念)분별, 계탁(計度)분별의 셋으로 나눈다. ‘자성분별’은 경계를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다. 우리의 오근(안·이·비·설·신)이 오경(색·성·향·미·촉)을 만나면 오감(느낌)이 일어나는데, 이때 일어난 오식(오감)은 모두 자성분별뿐이다. 즉 대상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 ‘수념분별’은 과거의 기억(念)에 따라 일어나는 생각이다. 한 마디로 경계를 따라 (자동적으로) 일어난 생각이다. ‘계탁분별’은 경계를 통해 얻은 정보들에 대해 생각하고 사유하고 구별하고 추론하고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계탁 자체에 부정적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루의 혜(無漏慧)가 아닌 산란된 지혜(散慧)를 본질로 한다는 점에서 보통은 부정적으로 이해된다.

우리의 ‘일상의식’인 제6식은 위의 세 가지 분별을 모두 가지고 있다. 특히 계탁분별은 유식(唯識)에서 현장(玄)이 말한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과 통한다. 변계소집성은 언제나 그럴 것이라고 자신과 세상에 대해 집착(我執·法執)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를 진제(眞諦)는 ‘분별성(分別性)’이라고 명명하였다. 유식의 3성설에 따르면, 마음에서 이 분별성이 제거되면 진실성이 드러나게 된다.

한마디로 ‘분별성’이란 자신과 세상에 대해 집착을 일으키는 고정관념과 편견 등을 말한다. 예를 들어 새로 산 신발을 A가 밟고 지나갈 때, 그 접촉의 순간 동시에 여러 가지 반응들(느낌, 생각, 감정 등)이 일어난다. 그렇다고 모두가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다. 화를 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여러 가지 마음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선택의 여지가 있다. 여기에 마음공부의 묘미가 있다. 경계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에 대한 나의 해석(관념)에 따라 화가 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즉 A가 평소에 나를 무시했던 사람이라면, A가 또 나를 무시한다고 생각되어 화가 증폭될 수도 있다. 반대로 A가 평소에 친해지고 싶었던 사람이라면, 오히려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므로 마음공부에 있어서 경계에 대한 해석(관념)인 각자의 분별성을 알아차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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