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기도로부터

글. 전동춘

‘법신불 사은이시여!
오늘 하루도 대종사님 법 받들어 그 일 그 경계에 일심을 챙겨서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를 하게하여 주시고, 이소성대와 자리이타의 정신으로 보은행을 하는 공부인 되어 나를 새롭게 하고 세상을 새롭게 하는 기도인, 감사생활하는 봉공인으로 오늘 하루도 살아가기를 다짐하오니 거룩하신 위력 주시옵소서. 또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루속히 일원대도에 귀의하여 참다운 진리생활을 하게 하여 주시옵고 가정과 사회 국가 세계의 모든 어려움이 소멸되어 은혜로운 낙원세상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일심으로 비옵나이다.’
아침에 일어나 올리는 첫 기도문이다.
집에서의 첫 기도가 끝나면 교당에서의 새벽기도 준비에 바빠진다. 교단백주년 10년기도와 법인성사백주년 기도가 끝나고, 지금은 수능시험, 취업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을 위한 백일기도를 교무님을 보좌하며 교도님들과 함께 하고 있다. 기도가 끝난 후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할 때 감사로써 하루를 열어 간다는 것이 나에게 큰 은혜로 다가온다.
10여년 전 교무님과 교당 선진님들과 함께 오덕훈련원에서 경산 종법사님을 뵈었다. 그때 종법사님은 내 손을 잡아주시며 “기도는 지극정성으로 하면 이루어진다.”고 하셨다. 다른 교도님에게 “모든 일에 방심하지 마라.” 하신 말씀도 항상 마음에 담아놓고 살아가고 있다. 일을 할 때나 어떤 경계가 왔을 때 또 나태해져 갈 때면 그때 해주신 법문을 꺼내어 새기며 나를 챙긴다.
또 수도원에는 존경하는 벽타원 원로교무님이 계신다. 연로하신데도 새벽이면 성탑에 나가 기도를 해주시는 교무님. 나, 너를 떠나 만중생과 만생령까지도 소태산 대종사님 법대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정성으로 기도하여 주시는 교무님께 항상 감사하다. 그 은혜를 갚는 길은 교무님을 닮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노력하는 중이다.
나는 연초 서원기도에서 ‘그일 그일에 일심을 챙겨서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자.’는 조목을 유무념으로 삼고 상시 응용 주의 사항으로 내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 이 유무념을 완성하기 위해서 1분기도를 하기로 했다. 일을 시작할 때나 경계를 맞이했을 때 잠시 멈추고 묵상심고로써 ‘이 일 이 경계를 원만하게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기도로 챙긴다. 그리고 다음 일은 사은님께 맡기는데, 그렇게 하다보니 일에 자신감이 생겨 대체적으로 잘 마무리 된다. 그리고는 원만하게 처리됨에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나에게는 앞으로 이루어야 할 기도가 있다. 우리 가족이 모두 일원가족이 되긴했지만 아직 교당에 잘 나오지 않으니 걱정이다. 아직도 나의 기도가 모자람을 반성하며 우리 가족이 법회에도 참석하고 기도에도 잘 참석하는 진정한 일원 가정이 되기를 염원하는 쉼 없는 기도를 하기로 다짐한다. 내일 새벽도 내 발걸음은 교당으로 향할 것이다.


캄보디아를 다녀와서

글. 오대현

2019년이 시작되고 심적으로 너무 고통 받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던 시기에 친구의 제안은 반환점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인생 한번 사는데 해외나 한번 다녀와 보자. 봉사활동으로 가면 더 의미 있겠지.’ 시작은 그런 가벼운 마음이었다.
연애가 끝나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과 거기서 발생하는 감정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던 나는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공황장애와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 그래서 팀원들과의 어색함과 거리감을 떨쳐내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시간이 흘러 서먹했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렸고 어느 정도 팀원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열린 마음으로 변하게 되었던 시점은 1차 합숙을 진행하면서 부터였다. 준비해온 프로그램들을 시연하면서 웃고 장난을 치다보니 나도 모르게 마음을 열고 함께 어울릴 수 있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모두에게 웃음을 줄 거야. 나는 행복한 사람이야.’라는 다짐을 하고 또 했다. 그러자 얼른 캄보디아에 가서 아이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 차게 되었다.
캄보디아 바탐방교당에 도착해서는 바로 다가가지 못했다. 용기를 내기 위해 감상발표 시간에 내 다짐과 생각, 느낌을 다른 팀원들에게 표현하였고 좌선을 하면서도 어떻게든 용기를 내어보겠다는 다짐을 했다.
짝꿍과 시내를 나갔을 때 영어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어서 대화가 된다는 것에 감사하였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잠깐의 시간 동안 내가 더 많은 웃음과 행복을 나눠 받은 기분이었다.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도 행복함을 느꼈다. ‘우리는 저렇게 순수하게 좋아하면서 즐긴 적이 언제지?’라는 생각과 ‘지금부터라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다시 한국으로 가야한다는 것이 너무 아쉽고 슬펐다. 짧았지만 강렬한 만남이었고 그 누구보다 순수한 아이들과의 시간은 천만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자 배움의 시간이었다. 아이들에게는 내가 선생님이었지만, 나에게는 아이들이 선생님이었다. 캄보디아에서 아이들과 항상 지내는 경선 교무님에게도 너무나도 감사하였다. 교무님 곁의 아이들은 정말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국 직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그 순간 한 친구가 먼저 눈물을 흘렸고 경선 교무님도 결국 눈물을 보이셨다.
정말이지 모든 사람들에게 고맙고, 내가 많이 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전에는 많은 것이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많은 것이 긍정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즐기자

글. 여원일

여행은 만남이다. 낯선 풍토와의 만남, 내 내면의 변화무쌍한 마음 작용과의 만남이다.
내겐 위아래 동서가 둘 있다. 윗동서는 사업을 하고 아랫동서는 아내와 내가 중매해서 모셔 들인 교무님이다. 최근 처형의 온갖 주선으로 캄보디아·태국 6박 8일 여행이 성사되었다. 여행에서 얻은 감상을 발췌해서 기록한다.
1. 여행으로 의식주를 함께 하다 보면 각자의 행동, 생각, 습관의 특성이 부각된다. 나와 상대의 아킬레스건(약점)도 부각된다. (내 몸의 아킬레스건은 코·귀의 병이고 현재진행형이다. 내 마음의 아킬레스건은 적어도 과거에는 열등감이었다.) 특히 상대를 잘 본다. 이럴 때 가르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온통 받아들임이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 특성을 자각하고 내가 나를 조절하고 깨어있을 수 있는 마음의 힘이다. 서원이 또렷해진다. 일상이 여행자요, 수행자요, 순례자이길 서원한다.
2. 곧 만나볼 동남아 사업가 처남에게. ‘잠깐이라도 만나볼 수 있어 기쁘고 반갑구나. 너도 알다시피 내가 원불교에 입문해서 수행을 하고 있고, 일상의 마음공부 감상을 기록하고 있다는 것 알고 있지? 내 일상의 수행 기록이 궁금하지 않니? 다른 지인들에게는 수행일기를 모아 소박하게 자비로 책을 내서 나누고 있지만 네 기독교적 세계관을 배려해 네게만 건네지 않고 있을 뿐이란다. 네가 빠진 이번 형제들 여행, 나도 만감이 교차한단다. 다음에는 처남과의 시간을 꿈꿔본다. 이렇게 해외여행을 해도 좋고 네가 짬을 내서 내가 구축해가고 있는 안동 흙집(한둥근요가명상원, 일원‘一圓’을 풀어서 명명함)을 방문해줘도 좋겠구나. 나는 너를 처음 만난 30년 전 그때 가졌던 첫 마음에 변함이 없단다. 너의 일상이 보람, 건강, 행복으로 충만하길 늘 서원하고 있다.’
3. 결국 걱정하던 일이 생겼고 처남 사업과 여행에 동행한 동서와의 거래, 묵은 형제간의 관념이 얽혀 만남은 불발되었다. 사람이란 묘하다. 이 외국에서 상상 초월의 사건이 발생하면 바로 담담해지고, 현재와 미래에 집중하는 모양이다. 모두 일심으로 이후 문제를 해결하면서 행복한 여행 마무리에 몰입하고 있다. 감사하고 감사할 뿐!
4. 여행 마무리 일정의 아침이 밝았다. 한국의 내 흙집에서 깨는 그 시간에 늘 깨곤 했다. 오늘도 그렇다. 마음에 스치는 인연들 특성에 맞는 기도를 올렸다. 여행 첫 코스에서 만나려다 못 만난 처남이 떠오르고 대산 종사님 법문이 따라온다. ‘사사를 떼고 망념을 쉬어라.’ 이번 여행의 시작과 끝에 딱 맞는 법문이다. 처남과의 만남에는 묵고 묵은 사사(私私)가 끼어 있었는데, 처남은 스스로 사사가 되어 확 떨어져 나갔고 우리는 이후 폭발할 망념(妄念)을 확 쉬고 여행의 본질에 집중해 왔다. 물론 여행 이후 다시 후유증과 직면해야 한다. 그러나 사사를 떼고 망념을 내려놓는데 깨어 있다면 이후 일들은 순리로 합리로 자비로 풀려나갈 것이다.


소소하지만 따뜻한 추석

글. 김소현

추석이 지나고 나니 허리와 팔이 콕콕 쑤신다. 매년 같은 양의 음식을 하는데도 올해 추석이 작년보다 조금 더 힘든 느낌이다. 매년 추석은 언제나 새롭다.
추석 당일 그리고 그 전날까지 이틀 내내 차례상 준비에 친척들 상차림 준비까지. 더욱이 추석날 저녁은 시아버지 제사까지 있어서 이틀 내내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전 부치고 송편 빚고 식구들 식사 준비를 했다. 설거지만 10시간 내내 했더니 손마디가 부었다.
집으로 돌아와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하니 지난 이틀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네 다른 엄마들을 보면 제사를 안 지내고 추석에 점심이나 저녁 먹는 게 다여서 추석 당일 날 가뿐하게 시댁에 다녀온다는데…. 우리집은 시골이어서 동네사람들이 인사를 오다보니 나는 늘 명절증후군에 시달린다.
제사를 안 지내고 당일에 식사만 하고 오는 주위 사람들에게 입버릇 마냥 “부럽다. 부럽다.” 했었다. 이번에도 결혼 안한 친구에게 “너는 좋겠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가족이 다 모이는 때는 일년에 명절 딱 두 번 뿐인데, 이것마저 싫다고 찡그리고 못마땅해 하면 가족들에게 스트레스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막상 모여 그동안 지내온 이야기,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하면서 둘러앉아 송편이나 만두를 빚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정감 있고 따뜻하다. 올해도 형님, 동서와 둘러앉아 남편이야기, 시댁이야기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내 아이도 올해는 한 살 더 먹었다고 내 옆에 앉아 얌전히(?) 송편을 빚는다.
그 모습이 기특했던지 큰 형님이 칭찬하니 내 어깨도 으쓱한다. 형제가 없는 우리 아이가 사촌이나 큰 엄마들과의 유대관계가 잘 쌓여서 따뜻한 아이로 성장해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더해본다.
사람 따라 가지각색 모양으로 빚은 송편을 찜통에 넣어 찌고, 뜨끈뜨끈한 송편을 한입 베어 물었다. 듬뿍 넣은 깨가 씹힌다. 이건 우리 딸이 만든 것이구나. 웃음이 나왔다.
이번 추석은 내 몸이 힘들더라도 가족간의 따뜻한 정을 느낀 시간이었다. 또 설날이 돌아오면 투털거리겠지만 말이다. 오늘 점심은 형님이 가득 싸준 반찬으로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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