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의 교육관 : 다차원 실전학습

글. 이동하 솔로몬경영개발원 소장

사람이 살면서 가장 보람 느끼는 일 중 하나는 재목감을 남먼저 알아보고 남다른 애정과 정성으로 청출어람(靑出於藍)·동량지재(棟梁之材) 인재를 기르는 사람농사이다. 그래서 맹자님도 천하의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일(득천하영재 이교육지: 得天下英材 而敎育之)을 인생의 세 가지 즐거움 중 하나라고 하셨다. 나폴레옹 역시 “교육은 국가 최대의 공공투자사업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교육의 시작은 가정에서부터, 특히 어머니로부터의 교육이 중요하다.

조기 교육은 모태 속에서부터 이루어진다. 신사임당(申師任堂)은 중국 문왕의 어머니 태임(太任)을 본받겠다(師)는 뜻이 담겨있다. 그래서 용꿈을 꾼 후 율곡 이이 선생을 낳으시고 지극정성으로 기르시어, 실용적 정책을 제언하고 임진왜란을 예고·대비를 시킨 실학자로 키우셨다.
“(중략)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들어가면 고등학교를 지나 우릴 포장센터로 넘겨 겉보기 좋은 널 만들기 위해 우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버리지 (중략)” 1990년대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 노래가사 중 하나다. 한때 ‘문화 대통령’이란 애칭으로 통하던 서태지는 오늘날 케이 팝(K-Pop)의 원조라고 본다.
 
<발해를 꿈꾸며>라는 노래가사에서 마치 고려 시대의 기상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제도권 교육, 사제 간의 깊은 정이 사라진 강단, 21세기에 살아갈 학생들에게 20세기 교육을 하는 현실, 그리고 일류 스펙을 위한 사설 학원에서의 사교육비, 그 많은 교육비 투자를 부모가 하여도 가장 고비용·저효율의 구조적 교육현장의 문제 등 오늘도 아직 그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교육 정책은 정권 변동시마다 달라지고 있다.

정산 종사께서는 “교육은 세계를 진화시키는 근원이요 인류를 문명케 하는 기초니, 개인·가정·사회·국가의 흥망과 성쇠를 좌우하는 것이 교육을 잘하고 잘못함에 있다할 것이니라.”(<정산종사법어> 세전 - 제2장 1. 교육에 대하여)라고 하시었다. 교육을 영어로 표현하면 ‘에듀케이션(education)’으로 그 동사형은 ‘이듀스(educe)’, 즉 “속으로부터 이끌어내다.”이다. 정해진 매뉴얼과 체크 리스트에 따라 체계적·반복적·지속적·순차적으로 기능과 기술을 몸에 익히게 하여 한 분야의 전문가로 키우는 훈련(트레이닝, training)과 교육은 다르다.
‘된 사람’이 있고 ‘난 사람’이 있다.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사람됨의 그릇이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뛰어난 지식·기술·기능을 습득하게 되면 단견, 이기심, 자기중심주의로 사회를 그르치거나 남의 종노릇만 하게 된다. 우리의 ‘삼학공부’는 속으로부터 우러나와 경계에 따라 취사선택 중도행(中道行)을 생활 속에서 익히도록 한다. 자기주도 학습을 바탕으로 하여 상호작용 학습(강연·회화, 지도·감정 등)을 하는 실전학습(액션 러닝, action learning)이다. 자력으로만 하는 공부는 자만심, 타력으로만 하는 공부는 의존심에 빠질 우려가 있다. 

원불교 실전학습의 요체는 무엇인가? 글로 된 경전 공부, 변화하는 세상을 보고 느끼며 새롭게 학습하는 ‘산경전’ 공부, 그리고 언어도단 심행처(心行處)가 없는, 누구나 다 지니고 있는 마음 속 무한경전 공부, 이 세 가지 차원의 공부를 끊임없이 하여 나가는 학습법이다. 우리는 다행히 소태산 대종사의 교법을 남 먼저 만난 홍복(洪福)을 입었으니 시대를 앞서가는 남다른 학습을 하여 그 실증적 결과로써 일원대도의 숨겨진 가치를 드러내 교화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법은(法恩)에 보은하는 길이다.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