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경고

취재. 노태형 편집인

따듯한 겨울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큰산은 동서남북의 정령들을 하얀 눈꽃으로 변장 시켜 불러 모았죠. 산 아래에는 까마귀들이 보초를 섰습니다.
“겨울이 왜 이렇게 뜨거운 거야? 세상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도시에서 날아온 정령이 인간들의 소식을 전합니다.
“요즘 인간 세상은 난리가 아니에요. 서로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아요. 거짓이 진실을 억누르고, 위선과 가식으로 치장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어요.”
또 다른 정령이 말을 잇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돈의 늪에서 허우적대요. 돈을 위해서라면 양심도 팔고, 돈을 향해 아귀처럼 달려들고 있어서 걱정이 태산이죠.”
아까부터 심각한 표정의 정령도 말을 거듭니다.
“인간들은 매사가 불만투성이에요. 서로 원망하고 삿대질하고 뺏고 속이기를 멈추지 않아요. 이러다간 아무래도 큰일이 날 것 같아요.”
숲에서 달려온 정령도 걱정을 늘어놓습니다.
“새들도 인간들에게 구걸하는 걸로 손쉽게 먹이를 구하려고 해요. 또 숲에 사는 동물들도 얼마나 거칠어졌는지…. 이 모든 게 인간들 때문이죠.”
멀리 바다를 건너온 정령은 한숨을 쉽니다.
“나무들도 단단히 화가 났나 봐요. 서로 몸을 부딪쳐 기어이 불길을 일으켜서 숲을 온통 태우고 있어요. 얼마나 많은 나무와 동물이 희생되었는지…. 쯧 쯧.”

성질 급한 정령들이 먼저 분노를 내뱉습니다. ‘이참에 인간들을 단죄해야 한다.’고요.
“높은 산에 있는 화산에게 시뻘건 용암을 폭발시켜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라고 하면 어떨까요?”
“아냐, 아냐. 그런 일은 바다에게 부탁해서 거대한 해일을 일으켜 세상을 쓸어버리는 게 더 나을 거야.”
“그래 봐야, 바닷가나 산속의 불쌍한 사람들만 희생되잖아. 그냥 대지에게 엄청난 지진을 일으켜 도시를 삼켜버리라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큰산은 화가 잔뜩 오른 정령들을 달래며, 곰곰이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젓죠.
“아냐, 아냐. 그래도 이건 아냐. 모두가 살아날 방법을 찾아야지. 다 죽는 길을 해법 삼으면 안 되지.”
조그만 정령이 묻습니다.
“그럼 큰산님은 어떻게 할 생각이세요?”
“인간들을 구하는 게 그리 쉽지는 않을 거야. 그리고 오랜 세월이 필요하겠지. 또 누군가의 희생이 따를 테고.”
다행히 만물을 지키는 정령들은 선하고 지혜롭습니다. 그들은 큰산의 뜻에 따라 생명들을 단죄하는 대신에 자신들의 몸을 녹여 세상을 뜨겁게 한 욕심과 욕망의 불꽃을 끄는 걸로 마음을 모으죠. 그래서 북풍이 거세게 몰아치는 어느 날, 일제히 떠날 채비를 합니다.

누구는 동쪽으로, 누구는 남쪽으로, 누구는 서쪽으로…. 또 누구는 어느 숲가에 내려 나무들을 달래는가 하면, 또 누구는 휘황찬란한 도심의 불빛을 뚫고 외로움에 지친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죠. 그리고 누구는 어느 대지의 벌판에 내려앉아 인간의 욕망으로 찢어진 대지의 가슴을 달래기도 합니다.
큰산이 말합니다.
“마음속으로 스며 들어야 해. 만물은 본래 상생으로 사는 거야. 그렇게 백년, 천년, 만년을 기다리는 거지.”

그렇죠. 살아 있는 것만큼 더 큰 행운은 없고, 하루하루 계단처럼 살아가는 게 가장 큰 행복인걸요. 그깟 욕심 그만 꺼버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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