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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임형준 유엔세계식량 한국사무소장 2019년12월호

임형준 유엔세계식량계획(WFP) 한국사무소장

나를 바꾸려는 절박함이
세상을 바꾸다

취재. 장지해 편집장

어릴 때부터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가는 것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두근거림이 좋아 일부러 공항 근처를 찾아가기도 했다. 왜인지 몰랐던 두근거림은 임형준(법명 도준) 유엔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me, 이하 WFP로 약칭) 한국사무소장(국제 공무원)의 길을 예견하는 시그널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마음에 품고 있던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어떤 일을 하고 살 것인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방황도 많이 했다. 그러다 어떤 책에서 ‘높은 산을 오르면 낮은 산은 저절로 보인다.’는 구절을 읽은 후 ‘좁은 한국 땅에서 방황하지 말고 넓은 세계로 가야겠다.’는 꿈을 가졌다. 그렇게 20대에 배낭여행을 떠나 3년 반 동안 80개국의 땅을 밟았다.
20대 때 개인의 작은 고민에서 시작한 여행에서 그는 세계의 현실을 직접 목격했다. 누군가는 풍족하지만 누군가는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이 드는 엄청난 빈부 격차도 확인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도 쳐다보지 않는 곳이 있었고, 눈앞에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쟁 현장도 숱하게 만났다. 그 와중에 소지한 현금이 다 떨어져 말라위에서 탄 배에서 사탕수수를 씹으며 배고픔을 버텨야 했던 3일은, 임 소장에게 ‘배고픔’이라는 고통의 실체를 알게 했다.
그때의 여러 경험들은, 그로 하여금 ‘글로벌 제로헝거(Zero Hunger), 전 세계의 배고픔이 제로(0)가 되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게 했다.

● WFP를 소개해주세요.
“WFP는 세상의 기아를 없애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국제기구로, 긴급구호와 개발이라는 큰 두 가지 틀로 도움을 주고 있어요. 긴급구호는 말 그대로 자연재해나 다양한 긴급 상황에서 현장에 가장 먼저 투입되어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고, 개발은 여러 분야로 이뤄져요. 평생 건강의 기반이 만들어지는 중요 시기인 영유아, 임산부, 수유부에게 영양을 공급하거나, 학교에서 급식을 배분함으로써 아이들이 학교에 오게 하고, 마을이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농업개발, 취로사업 등의 인프라 사업을 하죠.”
작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때 케냐의 IOC 위원인 Paul Teragat 씨가 WFP한국사무소를 찾아와 ‘WFP 학교 급식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했다. 급식을 먹으려고 먼 학교까지 자주 뛰다 보니 달리기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어 마라토너로서 올림픽 메달까지 땄으며, IOC 위원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WFP의 역할이 단번에 이해되는 장면이다.

● WFP에서 일하겠다고 다짐한 계기가 있다고요.
“세계 일주 배낭여행에서 어떤 가난한 마을을 지나는데, 사람들이 너무나 행복하게 웃으면서 길게 줄을 서 있는 거예요. 줄을 쭉 따라가 보니 WFP가 식량을 나눠주고 있더라고요. 그때 WFP라는 기구를 처음 알았고, 매우 강렬한 울림을 받았어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 하는 화두를 가지고 그렇게 헤맸는데…. 유엔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저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한 거죠.”
그렇다고 단번에 꿈을 이룬 것은 아니다. 인턴 지원서를 우편으로 보내야 했던 시절, 100군데 가까이 서류를 보냈지만 합격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그 사이 그는 동유럽에서 장애인 주거시설을 만드는 자원봉사도 하고, 신문에 칼럼도 쓰고, 외교부에서 인턴도 하고, 학생회장도 하며 차곡차곡 스펙을 쌓았다. 노력의 결과는 유엔기구 다섯 곳의 제의로 돌아왔다.

● 한 번 세운 목표를 위해 계속 노력한 거네요.
“그때 생각에, ‘유엔에서 일 할 거면 심장부인 뉴욕이지.’ 싶어서 뉴욕을 선택하고 안보리에 배정을 받았는데 일이 재미없었어요. 그래서 개발 쪽으로 옮겼다가, 그것도 아닌 것 같아서 현장으로 보내 달라고 했죠.”
현장에 가자 그동안 페이퍼로만 보고 말로만 들었던 내용들이 생생하게 보이면서 재미가 생겼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현장을 가장 좋아한다.

● 도전할 때, 두려운 마음은 없었나요?
“20대 때 저의 담대한 여행계획을 친구들에게 말했더니 다들 비웃었어요. ‘말도 안 된다. 가당키나 하냐.’면서요. 실제로 여행을 하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죠. 그럴 때마다 그 말들을 떠올리면서 ‘결국은 해낼 것이다. 나는 결국 내가 정한 목표, 여행 루트를 다 통과할 것이다.’를 되뇌었어요. 어떤 일을 하다보면 막연하고 모르는 때도 많잖아요? 그럴 때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마음이 현실이 되니까요. 젊은 시절의 경험 덕분인지, ‘된다.’고 생각하고 한 일들은 결국 대부분 다 됐어요.”
그런 그는 사실 ‘유엔에 들어가서 한국에서 근무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실제로 다닌 곳들도 중남미 온두라스, 서아프리카 기니비사우, 아시아 라오스, 이탈리아 WFP본부까지 모두 해외였다. 그러다 한국의 역할이 점점 커지면서 현지 사무소가 필요하다는 본부의 판단으로 2011년 말에 한국사무소장으로 오게 된 것이다.

● 한국이 제로헝거의 희망이라고 하던데요.
“한국은 제로헝거(Zero Hunger)를 성취해 낸 나라로서, 전 세계에 ‘배고픔 제로(0)’가 가능하다는 영감을 주는 살아있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요. 실제로 1964년부터 1984년까지 20년간 WFP의 도움을 받았고, 맥아더 장군이 한국을 떠나면서 ‘이 나라는 100년이 지나도 회복이 불가능할 거다.’라고 했을 정도로 희망이 없던 나라이기도 했죠. 그런데 20년만에 WFP원조로부터 졸업하고, 한 세대 만에 주요 공여국이 되었어요. 2008년 50위권이던 한국의 WFP 도너 랭킹은 이제 10위권으로 들어왔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로 거듭난 사례가 희망이 되고 있어요.”

● 세계의 배고픔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뭘까요?
“의지가 가장 중요해요. 1950년대에 천연두에 걸린 인구가 10억 명이었는데 60년대 초반에 마마 퇴치 의결이 되고, 실제로 지금은 마마가 과거의 것이 되었잖아요? 백신이 생겼고, 그걸 실행했기 때문이죠. 기아도 마찬가지예요. 이전에는 식량이 정말 없었고, 있어도 옮길 수 있는 도로나 수단이 준비가 안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전 세계를 먹일 수 있는 충분한 양이 있고 운송 수단, 인프라, 과학기술도 다 갖춰졌거든요. ‘의지’만 있으면 기아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거죠. 손에 손을 잡고 협력한다면 우리가 ‘마마, 그런 게 있었나?’ 하듯, 더 젊은 세대들은 ‘기아, 그런 게 있었어요?’ 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우리나라에도 힘든 사람이 많은데, 꼭 다른 나라까지 도와야 하나?’라는 생각들도 종종 있는데요.
“벚꽃이 각각 여러 송이로 피어있지만, 가지와 줄기를 통해 다 연결되어 있어요. 한 몸인 거죠. 한쪽 나뭇가지가 부러졌을 뿐인데 온 몸이 아파요. 우리도 지구에 뿌리를 박고 함께 사는 한 몸이에요. 우리가 가난했을 때 도와준 많은 나라들이 있는데, 그때 그 나라 안에 배고픈 사람이 없었을까요? 완벽하게 건강한 사람은 없어요. 어딘가 찌뿌둥하고 아프지만, 내가 가진 에너지 안에서 남을 조금 돕는 건 할 수 있잖아요.”
그가 배에서 굶은 지 3일째 되던 날, 한 선원이 자신의 밥 한 끼를 선뜻 건넸다. 돈으로는 몇 백원에 불과한 그 식사의 가치가 수억 원보다 더 큰 의미임을 직접 경험한 그다.

● 개인이 생활 속에서 제로헝거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지구에서 생산되는 식량 총 40억 톤 가운데 3분의 1이 버려져요. 선진국에서는 식탁 위에서, 개도국에서는 생산·저장·수송 과정에서요. 20억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양인데, 전 세계 기아 인구인 8억2천1백만 명을 다 커버하고도 남을 정도죠. 또 아이러니하게도 한쪽은 먹지 못해 굶는데 한쪽은 너무 많이 먹어서 과체중·비만으로 고생하고 있어요. 개인의 제로헝거 실현은, 필요 이상으로 먹지 않고 먹을 만큼만 덜어 먹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WFP 한국사무소에서 추진하고 있는 ‘제로웨이스트(잔반) 제로헝거 프로젝트’는 많은 분들이 참여할수록 좋아요. 사람의 마음이 바뀌면 세상이 바뀌잖아요.”

● 도전을 앞둔 대학생, 청년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공부할 때 리더십 수업 첫 숙제가 ‘너의 엠비션(ambition, 야망·포부·야심·의욕)과 에스피레이션(aspiration, 열망·포부·염원)을 써라.’였어요. 엠비션이 개인의 욕망, 내가 얼마나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얼마나 많은 돈을 벌고 얼마나 잘 되는지와 같은 ‘나’를 위한 영역이라면, 에스피레이션은 우리가 어떻게 함께 잘 살고 어떻게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영역이죠. 엠비션만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에스피레이션을 품고 사는 게 대단히 중요해요. 젊은 친구들이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데, 에스피레이션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직업으로써 저는 유엔을 많이 추천해요. 배고픈 사람을 도우면서도 직업을 삼아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채 굶어 죽어가던 아이들이 WFP 도움으로 살이 붙고 웃으며 뛰어노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기쁘다는 임 소장.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은 그의 피를 끓게 하고 심장을 뛰게 하는 원동력이라는데…. “작년에 서울사무소에서 500만 명을 먹여 살렸어요. 우리가 받았던 도움을 여러 나라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게 특히 뿌듯해요.”라며 활짝 웃는다.

● 소장님만의 행복 비결이 있나요?
“제가 갖고 있고 믿는 신조는 ‘내 마음이 현실이 된다.’예요. 기쁜 마음을 가지면 기쁜 일들이 계속 생기기 때문에, 늘 긍정적이고 밝은 마음을 위해 노력하죠. 행복한 상태는 내가 선택할 수 있어요. 일을 할 때도 어떤 목표를 세우고 ‘이게 된다.’는 마음으로 꾸준하게 하면 정말 되더라고요.”
본래 ‘대단히 부정적이고 네거티브(negative, 비관적인·소극적인)했다.’는 그는, 세계여행을 하며 스스로를 깨려는 노력을 통해 마음을 변화시켰다. “‘나를 바꾸고 싶다.’는 절박함이 워낙 컸기 때문에 큰 세상에 도전했고, 거기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통해 ‘더 큰 나’의 삶을 찾아갈 수 있었다.”는 그의 말에, 우리가 목표하는 삶이 그대로 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