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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름다운 날에 떠나감을 추억하다 2019년11월호

아름다운 날에
떠나감을 추억하다

취재. 노태형 편집인

# 갑자기 날아든 슬픈 문자 한 통.
정신이 혼미해집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지인에게 전화를 겁니다. 그 역시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만 삼키고 있습니다. 갓 50을 넘긴 나이에 훌쩍 떠나버린 오랜 지인. 이틀 전까지만 해도 ‘이런 저런’ 농담을 주고받은 기억이 또렷한데…. 눈앞이 내내 흐려지고 끝없는 슬픔의 바다에 잠깁니다.
그와의 추억은 참 오래되었습니다. 30대 초·중반의 어려운 시절을 함께 나눴고, 다정다감했기에 부탁을 뿌리칠 줄 몰랐고, 호기심이 많아서 먼 길 동행도 쉬웠죠. 어쩌다 출장길에 그의 연구실에 들르면 시간 가는 줄 몰라, 차며 커피를 마시다가 기어이 저녁 식사까지 이어지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와, 형이랑 벌써 10시간째야. 근무시간을 넘겼네. 하하!”
지금은 기억조차 없는 무수한 이야기가 왜 그리 많았는지요. 그런 그가 올해 초 영영 떠났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가까운 지인들을 만나면 무심결에 그의 이름을 부르곤 부재를 떠올리죠. 아직도 내 삶에는 아름다운 시절을 함께 보낸 그 친구가 많이 남아있습니다.

# 또 하나의 이별.
더 이상 지친 몸을 유지하기 싫다며 일체의 음식을 끊은 지 꽤 오래된 스승님. 남이 알아주든 몰라주든 해야 할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그 분은 죽음마저도 스스로 결정하길 원했습니다. 곡기를 끊은 지 오래된 탓에 목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희미해졌지만 얼굴은 웃음기 가득 평화로웠습니다.
3~4분 남짓의 면회가 허용된 시점. 하지만 40여 분 내내, 혹 내가 떠날까 두려운 듯 손을 놓지 않고서는 당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공유했습니다. 마침 당신 삶을 책으로 엮었기에 공감은 척척이었죠. 하지만 희미해진 말소리를 해독하기 위해서는 귀를 입 가까이에 바짝 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참 이상한 걸 느꼈습니다. 내내 당신의 몸에서 향내가 났으니까요. 죽음의 냄새가 없었습니다. 일생을 ‘향기’롭게 사신 분이기에 아마 그랬나 봅니다.
지금도 가끔 그분의 환한 미소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게 있습니다. “그때는 참 멋졌어. 정말 멋졌지.” 남들이 감히 하기 어려운 일을 성취해 낸 순간들을 떠올리며 하시던 말씀들, 아직도 쟁쟁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이 사람아, 멋지게 살아~. 허허.”

# 아버지의 임종은 청천벽력이었습니다.
불과 5일 전에 88세 미수 기념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고, 잘 다니고 잘 드셨던 아버지이기에 더욱 그랬습니다. 헤어지는 순간, “아버지, 100세까지 사세요.” 농담같이 던지는 아들의 말에 무표정하게 돌아서던 기억.
집으로 돌아와서도 아버지는 바쁘셨습니다. 지인들을 불러 모아 음식 대접을 하고, 또 이웃들에게 한턱을 내시면서 이별 준비를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어느 따듯한 봄날, 집 앞 계단에 앉아 아들이 만든 책을 펼쳐 들고는 스르륵 꽃잎처럼 떠나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 슬퍼하는 자식이 별로 없었습니다. 슬픔보다는 따듯한 추억이 더 많이 쌓였기 때문이죠. 어린 아들들의 투정을 다 보듬어주고, 다 큰 아들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시던 분. 그렇게 평소 늘 땅 같고 공기 같았던 분이기에, 있어도 고마운 줄 모르고 당연시 여겼고, 안 계셔도 늘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아버지의 일생은 참 아름다웠다.’ 무덤 앞에 선 자식들의 하나같은 탄성입니다.

올해는 참 이별이 많았습니다.
50대 중반에 비로소 죽음을 사색하게 됩니다.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이별의 징검다리를 건너야 할까요. 그리고 나도 또 누군가에게 아름다운 이별의 징검다리로 추억될 수 있을까요.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