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숨고
땅도 숨어
밤길만 흘러가더라
취재. 노태형 편집인

“찌르릉찌르릉…… 쩌르르르륵…… 찌럭찌럭찌럭.”
괜히 심술이 난 듯 한마디 툭 던집니다.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뭐라는 거야?”
“쩌쩌쩌쩍- 쯧.”

가을 밤길은 늘 이렇게 해독불가의 언어들로 난무하죠. 호기심일까요!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가만히 귀를 쫑긋 세웁니다. ‘뭐라고?… 뭐라고?’ 풀벌레라고 왜 할 말이 없겠습니까? 희미하게 들려주는 소리….
“너무 억지 부리며 살지 말라고….”
“내가 언제?”
“괜히 남 미워하고 화내고 앙탈도 부리잖아. 너 잘 살려고 감춰놓은 욕심을 모를 줄 알고.”
멋쩍은 듯 핑계를 댑니다.
“그래도 난 덜하거든.”
“작은 욕심이 더 무서운 거야. 그게 씨앗이 되어 점점 커지면 이 지구까지 꿀꺽 삼키려 할 걸. 가끔은 엄마 아버지도 잡아먹더라.”
“그럼 인간이 욕심 없이 어떻게 살아. 또 어떻게 내려놓을 건데?”
“그래서 밤이 오잖아. 낮 동안 그 치열했던 짐들 좀 내려놓고 푹 쉬라고. 무덤 같은 밤 속에 흉측한 욕심을 묻어버리라고.”
“밤에도 잠이 안 오면 어떻게 해?”
“요즘 도시는, 해가 지면 다시 새로운 낮이 시작되는 느낌이야. 제발 불 좀 끄고 쉬어, 쉬어야 살지.”
다시, 풀벌레 소리가 요란해집니다. 어차피 들어먹지도 않을 소리를 해봐야 금방 잊어버리고 욕심 채우기에 바쁠 텐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해서 한숨만 크게 내쉬는 거죠.

‘우린 한 철만 살아도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데, 인간들은 왜 그리 오랜 세월 동안 애타며 허덕이고만 사는 건지….’ 안타까움의 소리가 밤길에 가득 ‘쯧쯧쯧쯧’ 혀를 차듯 울려 퍼집니다.
어둠은 하늘과 땅을 다 숨겨버립니다.
그래서 밤길은 더 조심스러워집니다. 조심조심, 희미한 어둠을 이정표 삼다보면 내 내면이 비로소 밝아지는 걸 느끼죠. 밝은 것은 어두운 것이고 어두운 것은 밝은 것이 되는 역설을 깨치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또 다른 밝음이 어둠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죠.

어둠은 가끔 두려움으로 찾아옵니다. 얼마나 안하무인으로 살았으면, 얼마나 오만방자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욕심의 노예로 살았으면 그깟 어둠에 두려움을 느낄까요. 보이지 않으니 뺏은 것을 뺏길까 무섭고, 보이지 않으니 억겁의 업장이 뒤집힐까 두렵고, 보이지 않으니 내 내면의 거짓이 들킬까 창피한 거죠. 비로소 겸손해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낮 동안 걷지 못한 길에 밤을 등불 삼아 걷습니다. 모두가 희미해진 세상은 사람도, 나무도, 바위도, 바람도 다 형체로만 남습니다. 가끔은 나무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바람이 형체 없는 유령이 되는가 하면, 바위는 사자처럼 웅크리기도 하죠. 이 모든 게 알고 봤더니 내 마음의 형상이었습니다.
그런 밤을 천천히 걸어보세요. 지금이 밤길을 걷기 딱 좋은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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