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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교당 최고 저널리스트' 손정윤 원로교무 2019년07월호

의문표(?)+느낌표(!)=깨달음
‘교단 최고 저널리스트’ 손정윤 원로교무

그에게 ‘글’은 천직이다.
글이 안 써져 애먹은 적이 단 한 번도 없고, 주제를 붙들고 앉으면 그 자리에서 술술 써낸다. 원불교신문 기자였을 땐, 취재가 끝나기 무섭게 30분 만에 원고를 다 써오는 바람에 함께 근무하던 이들이 기죽어 하곤 했다는 일화도 있다.
교단의 전무후무한 최고 저널리스트로 일컬어지는 손정윤 원로교무. 그가 당시에 써냈던 글에 비친 비평의 칼날은 무섭기가 추상(秋霜)같았다. 아닌데 싶은 일에는 ‘아니다.’라며 정의·진리·합리를 매섭게 따졌던 것. 덕분에 종종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물러선 적은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 내가 아는 원불교의 본래 모습을 찾는다는 마음, 그거 하나였다.”는 것이다.
칼럼이면 칼럼, 용어해설이면 용어해설, 게다가 소태산 대종사 전기(傳記)를 비롯해 <대종경> 성리품, <정전> 의두요목 강설은 물론이고, 교단 미래 방향 제시 등의 연재까지…. 글쟁이들은 보통 자신이 주로 쓰는 분야가 있기 마련인데, 손 원로교무는 어느 특정 분야에 한정하지 않은 글을 써왔다. 이는 그의 넓고 많은 독서량과 학문적 깊이, 그리고 다재다능하고 천부적인 글쟁이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무려 893쪽 분량의 <원불교 사전>을 오로지 혼자 집필해 내기도 했다. 원대신문(당시 원광대학교 학보사)·월간원광사 재직, 원불교신문사 창간, 교화연구소 설립, 교정원 문화부 설립과 중앙문화원 설립에 적극 참여하는 등 원불교 언론·문화의 단단한 뿌리가 되어온 손 원로교무의 이야기를 쫓아가 본다.


● 근황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 무슨 책을 쓰느냐 하는 것과 요즘 어떻게 사느냐가 가장 궁금할 텐데…. 무슨 책을 쓰느냐에 대한 답은 ‘글은 죽을 때까지 써야 할 일이다.’이고, 어떻게 사느냐라는 질문에는 ‘원로원 무문관(無門關)에 산다.’가 될 것 같아요. 5년 전부터는 무문관 시간을 좀 더 철저히 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어요.”

하루 종일 아무도 다녀가는 사람이 없어도 매일 방청소를 두 번은 꼭 한다는 손 원로교무의 방문에는 ‘휴헐당(休歇堂)’이라는 문패가 붙어있다. 쉴 휴(休)자 쉴 헐(歇)자를 썼지만 단순히 몸이 쉬는 공간만의 의미가 아니다. 정신과 마음을 쉬는 곳이라는 뜻이 담긴 것. 아울러 그는 우리 교역자들 역시 자기 방에 나름의 문패 하나 정도는 달고 살면 좋겠다고 했다.

● 효산님이 말씀하시는 무문관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내 식 무문관에는 내 성리공부가 담겨있어요. 나는 성리를 ‘감기약 잘 먹는 것이 성리공부’라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내 현실, 내 생활 속에서 해야 진짜 내 것이죠. 예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수천 수만 가지 감기약 종류가 있는데, 내가 먹고 효과를 본 약이 다른 사람에게도 반드시 효과를 낼까요? 자기에게 맞는 감기약을 선택해야 효험을 제대로 보겠죠.

언어나 문자로 성리를 해석하는 건 함정이에요. 체험을 통해서 인간 세상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스스로 느껴야 이룰 수 있어요. 성품자리가 어떻고, 마음이 어떻고, 그렇게 찾는 건 ‘진짜 성리’를 모르는 거예요. 어떤 법문을 내가 내 말로 해석하면 <대종경>에 대한 해석도, 원불교나 모든 종교, 인생에 대한 해석이 다 달라져요.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되는 거죠.”

● 칼럼, 용어해설, 전기, 강설 등 다양한 글을 고루 쓰셨는데요, 그 힘이 어디서 나왔나요? “그래서 전생이라는 걸 믿어보는 게, 몇 생전부터인지는 몰라도 그전부터 이어온 내 업(業)인 것 같아요. 나쁜 의미로서의 업이 아니라, 내 스스로 훈련해 온 내 노력이라는 의미지요. 그리고 나는 일 자체를 매우 재미있게 했기 때문에, 힘들었다는 느낌이 별로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볼 땐 분명 힘든 일이고, 힘들지 않냐는 이야기도 실제로 많이 들었는데 나에게는 그냥 재미있는 일이어서 하기가 쉬웠어요.”

아버지 덕분에 초등학교 2~3학년 때 열 번도 더 읽은 <회보> 속 ‘불법연구회 창건사(정산 종사 저술)’와 ‘육조대사 전기(구타원 종사 저술)’는 그의 글쟁이 인생에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다. 그가 원불교 교단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원불교를 이해하는 밑거름도 대부분 그때 형성됐다. 그러나 타고난 암기력과 문장력이 있었다고 해서,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생 시절에는 거의 매일 1~2권의 책을 열심히, 대학에 와서도 400~500페이지 정도의 대학서적을 하루에 거의 한 권씩 읽어냈다. 종교, 철학, 역사, 문화사, 인문학, 소설 등 그야말로 장르 불문이다.

● 원불교 제1의 비판론자, 또는 원불교 제1의 논객이라고도 불리시는데요.
“나는 어떤 이해관계 때문에 해야 할 소리를 하지 않거나 그러지 않았어요. 내가 생각하는 종교, 또 내가 아는 원불교, 그 본래 모습을 찾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죠. 1959년에 이어령 씨가 26세로 문학비평가 활동을 시작했는데, 째째널리즘(?)적이지 않고 아카데믹한 모습을 보면서 ‘이런 식의 칼럼니스트가 돼야겠다.’고 표준 삼은 영향도 있겠죠.”

한창땐 하루에 200자 원고지 80장 분량의 글을 쓰기도 했던 손 원로교무. 이는 컴퓨터에서 글자크기를 10으로 놓고 쓴 A4 열 장 이상의 분량이다. 모든 게 수기였던 시절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작업량인 것. 또 <원광>에도 연재됐고, 이후 단행본으로도 발간된 ‘소태산 대종사 전기’(<원광> 제81~86호) 원고지 1200장 분량은 단 15일 만에 완성한 것이었다. 40대 후반쯤에는 앉은 자리에서 용어 20~30개를 거뜬히 풀어내며 <원불교 사전>을 집필했고, 시대의 변화를 미리 준비하며 <원불교 전서> 가로편집을 추진하기도 했다. 알고 보면 ‘글’로 할 수 있는 업적을 여럿 남겼음에도 당시 교단적·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저 ‘날선 비평가’로만 알려진 점은, 후진으로서 생각할 때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 교단에 대한 걱정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교단이 헤쳐가야 할 문제가 여럿 있는데, 그 중 항마위·출가위 이상 법위사정의 진리성·정직성 회복과 출가교역자 용금 제도 양극화 현상의 평준화, 이 두 가지는 반드시 이뤄내야 해요. 나는 이 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단이 발전하지 못한다고 단정해요. 또 무아봉공, 사무여한, 전무출신, 오만년대운, 정남정녀, 주세불, 주세종교 등 좋은 뜻이어도 현실사회에 실현성이 미약하거나 지나치게 아전인수격인 말들은 과감히 없애기도 해야 합니다. <대종경>도 아낌없이 손댈 필요가 있는데, 수위단 회의에서 한번 결정한 건 고치지 못한다는 의식이 만연하잖아요. 소위 교단의 개혁, 개방을 막고 있는 것들을 터버려야 해요.”

교단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용기 있는 검토·연구·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손 원로교무.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차후 <원광>을 통해 손 원로교무가 직접 쓴 글로 전하기로 한다.

● 현대 사회에서 원불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후배들에게 종종 ‘원불교에서 어디 믿고 의지하려 말고, 오로지 네 자신만 믿고 다만 수행만 해라. 수행한 다음에 뭘 하겠다는 생각도 할 것 없다.’고 이야기해요. 화단을 따로 만들지 않아도 산속에 조그만 꽃 한 송이 핀 것을 본 사람은 아름다움을 느낄 것이고, 아름다움을 느끼면 아름다운 마음을 생각할 것이고, 그러면 자연히 자기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가요. 그것이 수행이고, 교화이고, 종교의 역할 아닐까요? 수행자의 자세만 제대로 보여주면 그저 날아가는 새도 나에게서 뭔가를 배워가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보다 잘 먹고 잘 살면 죄스러운 느낌이 들었다는 그. ‘출가수행자는 다른 사람보다 의식주 생활이 풍족하면 마음이 불안하고, 부족하면 마음이 편안하다.’는 당부를 덧붙인다. 또, 한국 사회의 여러 문제를 원불교 교리 정신과 접목시키는 것이 곧 원불교의 발전과 확장을 가져올 것이라고도 말하는데…. 단, 사회에 통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을 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한다.

● 평소 공부 표준을 전해 듣고 싶습니다.
“나는 마음이 쉴 때 항상 염불이나 내가 만든 주문을 외워요. 식사하러 식당에 가는 사이에도 잠깐,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에도 잠깐, 또 기차나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도 무료하게 있지 않고 챙기면 하루에도 몇 시간씩 염불·주문을 외울 수 있어요.”

이 세상에 종교만큼 함직한(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영생토록 수행교무의 길을 가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개발한 공부 방법이 바로 염불·주문 수행이다. 그가 말하는 염불·주문은 곧 ‘그때그때 얻은 깨침의 소리’인 것. 그는 후배들에게도 이 공부법을 권한다. 한 번 한 번 외우는 짧은 염불과 주문이 그 사람의 인생관과 인생론을 만들기 때문이라는데….

귀하게 얻은 주문 몇 가지를 소개하면 이렇다. ‘무병천국 무심해탈(無病天國 無心解脫: 병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것이 천국 생활이고, 마음이 텅 비어 바깥 경계에 끌려 다니지 않는 것이 해탈이다.)’, ‘삼독공허 삼세청정(三毒空虛 三世淸淨: 내 심신에 삼독심이 텅 비면 과거·현재·미래 삼세가 청정해진다.)’, ‘천리안 만리각(千里眼 萬里覺: 천리 안에 있는 것을 다 볼 수 있는 밝은 지혜의 눈과, 일만리 안에 있는 모든 사물의 이치를 다 깨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갖추자.)’

● 언어·문자가 큰 은혜라고 하셨는데요, 언어·문자를 다루는 저희들이 어떻게 하면 더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성리도 결국은 우주와 내가 하나 되는 길을 찾는 거고, 자기의 참 모습을 스스로 발견하는 일이에요. 내 자신의 참 모습은 결국 빌 공(空)자, 없을 무(無)자를 찾는 건데, 연마하다 보니 의문표(?, 정확한 표현은 물음표이지만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한다)와 느낌표(!) 두 개가 어느 날 떠올랐어요.

모든 것에 대해 의문표를 가져야 해요. 의문표가 없다는 건 우리 표현으로 까닭 없이 사는 거죠. 세상 모든 것에는 다 ‘왜?’가 있어요. 나무가 저렇게 생긴 것도, 꽃이 저기에 피어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죠. 일단 모든 사물과 현상을 볼 때 의문표를 붙일 수 있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해요. 문제의식이 있어야 목적의식도, 삶의 의식도, 가치 의식도 다 생겨요. 그다음에는 느낌표, 느낄 줄 알아야 해요. 뭔가를 보고도 느낌 없이 무감각하면 그건 목석이에요. 그 느낌이 곧 사랑이죠.

느낌표가 있어야 모든 현상이 진짜 내 것이 되고 나와 하나가 돼요. 의문표도 느낌표도, 직접 찾아야 해요. 그게 깨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