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도
강물이 흐른다
황새여울에 서서
취재. 노태형 편집인

누구나, 설움 한 움큼씩 삼키고 살아갑니다.
토할 듯 토할 듯 억누르며 살아가는 인생길이죠. 아마 강물도 설움이 넘쳐 홍수가 되나 봅니다. 그 설움을 뗏목 삼아 먼 길을 떠나지만, 어느 길목 여울을 만나면 기어이 분노가 터져 나옵니다. 괜한 트집처럼 참았던 울음을 토해내는 것이죠. 그러시나요?

동강, 황새여울에도 그런 설움이 있습니다.
아우라지 강가에서 출발한 뗏목꾼들이 가장 무서워한다는 황새여울. 가뭄에 드러난 바위들이 홍수를 이용해 자기 몸을 숨기고는, 강을 타고 넘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이죠. 뗏목꾼들이야 하릴없이 무심히 강 위에 서지만, 어찌 그 강이 늘 잔잔하기만 할까요.
장마가 한바탕 지나가고 강물이 가득 불어 넘치면 이제 슬슬 뗏목꾼들의 마음은 설레기 시작합니다. 기지개를 켜듯 먼 길 구경 가겠다는 욕심도 그렇고, 오랜만에 돈 푼 쥐어 사랑고백에 가슴도 부풀어 오르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처자식 배불리 먹일 욕심에 검붉은 심줄은 칡넝쿨처럼 팔뚝을 감쌉니다.

그렇게 수억 년 세월의 강을 따라 굽이굽이 흘러 이 여울 저 여울 다 타고 넘어 황새여울에 닿으면 다시 잔뜩 긴장을 하게 되죠. 무슨 억겁의 설움인 양, 여울은 늘 사람을 제물 삼아 자기 한을 푸는 게 원망스럽기도 하고요. 자칫 방심하는 사이, 뗏목을 삼키고 사람을 삼키고 그 소박한 꿈마저 삼켜 버립니다. 그리곤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 ‘나도 슬펐다’고 넋두리를 쉼 없이 풀어냅니다. 사랑도 그리움도 기다림도 다 부질없다며, 자기 아픔을 토해내기에만 급급하죠. 어쩌면 내 마음 속 분노의 강처럼 말이죠.
그래서 정선 아리랑은 그 구슬픈 가락을 이 물살 센 여울에 풀어 설움을 토해내는가 봅니다.

‘우리 서방님은 떼를 타고 가셨는데
황새여울 된꼬까리 무사히 지나 가셨나
황새여울 된꼬까리 다 지났으니
만지산 적산옥이야 술상 차려 놓게.’

이곳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황새여울은 본래 황쇠여울이었다.’고도 하는 군요. 황소, 즉 여울의 바위들이 황소의 뿔 같다 해서 황쇠여울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어쩜, 많은 뗏목꾼들이 물길 속에 숨은 그 황소 뿔에 박혀 유명을 달리했다는 것인데, 늘 ‘조심조심’ 살 것을 여울물은 당부하는 듯합니다. 아니, ‘다 부질 없다. 다 떠나보내라. 그리고 잊어버려라.’고 속삭입니다. 그렇게 삶의 상처도 지우며 사는 거죠.

황새여울은 동강에서도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입니다.
사람들이야 무심히 여울물 소리 떠나보내며 더 깊은 산으로 향하지만, 이곳은 동강 12경에 속할 만큼 그 풍광이 아름답습니다. 특히 황새여울 강가 주위에는 무수한 자갈돌을 머금어 꽃무늬를 이룬 바위들이 자연정원을 이루어, 억겁의 세월을 더듬게 합니다. 강 건너 벼랑을 이룬 바윗돌 옆으로 핀 분홍빛 강 철쭉이 물길을 따라 흘러내릴 때면 새들의 울음소리는 더욱 청량해지고요.
그렇게 강가에 서면, 문득 한동안 메마른 마음속으로 여울물이 졸졸졸 흘러갑니다. 그리움일까요, 설움일까요. 그렇게 희미해진 세월이 가로질러 흘러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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