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각가 현종진

부처의 마음으로
조각하다

그가 조각칼을 잡자, 공방의 모든 소리가 가라앉는다.
나무 외에 다른 소리는 없다. ‘사각사각’ 그 소리에, 이내  부처의 얼굴이 드러난다. 불교 목조각의 전통 기술을 전수받아 불상조각과 부조, 서각, 장승 등을 만드는 현종진 목조각가. 날카로운 눈빛과 집중력으로 불상을 조각하던 그가 조각칼을 놓자, 그의 얼굴에 불상과 닮은 미소가 떠오른다.
“목조각이 저의 우주고, 이 세상의 전부인데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행복할 수밖에요.” 부처의 미소에 반해, 이불 보따리와 조각칼 300자루만 들고, 스승을 찾아 합천 해인사로 떠났던 게 20대. 30여 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때의 행복함은 여전하다고 말한다.
“해인사에서 목조각장 전기만 선생(중요무형문화재 제108호)을 만나 제자가 되었어요. 운이 좋았던 거지요.” 스승과 인연이 닿아 다시 막내가 된 그. 길들어 있던 습성을 다 버리는 것은 어려웠다. 스승은 전통 수공예 목공법을 고수하며 칼과 끌로만 작업했던 것이다. 스승은 ‘천천히 생각하며 조각하는 손은 실수가 없다.’고 말했다.
“제일 많이 들었던 말도 ‘빨리 하려 하지 말라.’였어요. 욕심내지 말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불상의 표현은 작품이 아니라 정신에서 나온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그에게는 하루빨리 완벽한 부처의 미소를 만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낮에는 배우고, 밤과 주말에는 혼자 나와 작업을 이어갔다. “지금은 알지요. 좋은 작품은, 완벽한 형태보다 마음을 넣는 게 더 중요하단 걸요.” 완벽한 미소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못생겨도 편안한 미소가 사람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 그러다 보니 그는 작품을 하나 완성하는 데 오랜 정성을 쏟는다. 통나무를 입체적인 작품으로 완성해야 하기 때문에, 한 번의 칼질도 허투루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무를 깎던 중에 옹이가 나와 다 만든 작품을 그냥 버린 적도 있단다.
“나무를 조각하기 전에, 종이에 그림으로 한번 그리고, 흙으로 한번, 또 석고로 만든 다음에 조각을 시작해요. 여러 번 해봄으로써 실수를 줄이는 거죠.” 마음을 다스리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칼끝을 움직이는 건 당연. 칼로 나무를 다듬으며, 칼로 모난 마음도 다듬어 나간다. 느리지만 그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방식이다. 400여 개의 도구도 일일이 만든 그다.
“작년에는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어요. ‘선으로 가는 길’이라는 부제로 참선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죽비를 묵묵히 깎아 보았지요.” 유창목, 소태나무, 느티나무, 구스나무, 비자목 등 다양한 나무에 매화와 목단, 옴마니반메훔, 연꽃, 용 등의 화려한 문양을 새겨 다양한 색과 소리의 죽비를 만들었다. 나무마다 소리가 다 다르고, 색이 다 다른데 한 가지 나무로만 죽비를 만드는 게 속상해서였단다. “아름답다. 새로운 시도를 해서 고맙다.”는 평이 쏟아졌다. 세밀하게 조각한 펜과 화려하게 조각된 찻상, 환경시계 등의 공예품도 한국종합예술대회 대상과 전국예술대회 목조각 대상 등을 수상했다.
“버릴 나무는 없어요. 몇백년 동안 큰 것이잖아요. 다 귀하게 써야하죠.” 작은 나무조각도 그 쓰임새를 찾아주는 그. 그 귀한 마음이 담겨서인지 그의 작품은 온화하고 안정감이 넘치는데…. “세월이 갈수록 어려워요. 오늘의 눈으로 어제의 작품을 보면 미흡한 부분이 보이죠. 하지만 그 부분이 보이는 만큼 발전된 것이라 생각해요.” 과거의 내가 스승이 된다며 웃어 보이는 그. ‘나의 모든 것을 다 받아 줄 것 같은’ 부처의 미소를 만들고 싶다는 그에게서, 그 미소를 미리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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