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랏빛 장밋길

모임 이름은 김보라, 장미선, 윤순길 우리 셋의 이름을 따서 ‘보랏빛 장밋길’로 정하였습니다.

글. 윤순길

20살. 가장 반짝이던 시기에 만난 두 친구가 있습니다. 김보라, 장미선. 소중한 제 친구들이죠.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내고 각자 다른 직장에서 지내면서 힘들 때면 만나 수다로 힘듦을 털어내기도 하고, 봄이면 원대수목원으로, 여름이면 휴양림으로 가깝든 멀든 셋이서 여행을 많이 다녔습니다.
그렇게 함께 여행 다니고 수다를 떠는 우리들의 시간에도 어느덧 변화의 시기가 찾아왔습니다. 30살에 미선이가 먼저 결혼해서 어여쁜 딸과 귀여운 아들의 엄마가 되고, 33살에는 제가 결혼해서 두 아들의 엄마가 된 거죠.
2016년. 미선이 아들은 1월, 제 아들은 4월, 보라는 조카를 5월생으로 두면서 아이들에게도 동갑내기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서로의 공통관심사가 계속 같아지다 보니 만나면 비슷한 이야기들로 몇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부담 없이 만날 수 있다는 게 우리가 계속 만날 수 있었던 이유가 된 것 같습니다.
미선이의 둘째 아이와 저의 첫째 아이는 같은 나이로, 올해 같은 정토어린이집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같은 교실에서 자주 만나 서로를 부르고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습니다. 또 아이들뿐만 아니라, 작년에는 남편 도무님이 근무처를 옮기면서 원래 효도마을에서 근무하던 미선이의 남편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만이 아닌, 가족들도 함께 친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친구들과의 우정이 아이와 남편까지 함께 이어지는 걸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참 좋은 인연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대종경> 교단품 3장에 “친해 갈수록 더욱 공경하여 모든 일에 예를 잃지 아니하면, 낮은 인연이 생기지 아니하고 길이 이 즐거움이 변하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신 법문이 생각나서, 온 가족을 다 내 가족처럼 챙기며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올 가을에 드디어 보라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하니 기쁘기도 하고 헛헛한 마음이 듭니다. 제 마음을 남편이 알았는지 모임을 제안했습니다. 보라의 예비신랑과 저희 가족, 미선이네 가족이 함께 모였더니 남편들과 아이들까지 온 집안이 북적북적해 명절 때보다 사람이 더 많고 즐겁네요. 아이들은 뛰어놀고 어른들은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아이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노는 걸 보니 흐뭇하고요. 그러던 중 남편이 모임 이름을 제안해 봅니다. 모임 이름은 김보라, 장미선, 윤순길 우리 셋의 이름을 따서 ‘보랏빛 장밋길’로 정하였습니다. 우리들의 찬란했던 20대의 우정이 앞으로도 쭈욱 이어지길 염원하는 마음도 함께 담았습니다. 혼자 가면 힘들 수도 있는 이 길에서 좋은 친구를 만나 정말 고마웠고, 더불어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보라의 결혼생활이 우리 모임 이름처럼 아름답게 빛나길 바라봅니다. 가시가 있어 조금 힘들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꽃길만 걷길 기원합니다. “보라야, 결혼 축하해.”


지구에 첫 번째 꽃이 피던 순간

지구에 최초로 핀 첫 꽃에 놀라 경외로움과 감사로 들끓었던 것처럼 인생에 품었던 꽃은 그저 기적이다.

글. 소란(유희정)

어떤 연예인이 수상소감으로 “새해에는 꽃길만 걷길 바란다.”고 한 말을 듣고 내게 꽃길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마치 인생에 꽃길이란게 따로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꽃길만 따라 걷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 돌아보면 세상에는 꽃길 아닌 곳이 없다. 그것은 시각적인 꽃길일 수도 있고 마음의 꽃길일 수도 있겠다. 어떤 이는 비싸고 멋진 꽃만 핀 식물원이나 멋진 정원이 꽃길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들에 핀 냉이꽃, 개망초처럼 소박한 꽃이 핀 길이 꽃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인생의 꽃길을 꿈꾸지만 참으로 그 꽃길의 화려함이 달라서 삶은 꽃길이 되기가 싶지가 않다. 인생에서 잡초꽃의 아름다움에 감사했던 순간이 있었을 텐데, 어느 날부터 플로리스트가 만든 비싼 꽃다발이 인생에 도착하길 바라기 일쑤다.
과학자들은 최초의 식물은 약 3억 5000만~3억 1000만 년 전 발생했고, 최초의 속씨식물은 2억 5000만~1억 4000만 년 사이에 나타난 것으로 추정한다. 그전에는 공룡도 겉씨식물인 은행나무나, 소나무, 삼나무 같은 침엽수만 먹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지구에 속씨식물이 나타나고 더 큰 열매를 맺기 위해 최초의 꽃을 피웠다. 아마 모든 생명은 즉각 반응을 했을 것이다. 이 기쁨을 지구는 진화를 통해 증명했고 지금은 현존하는 식물의 90%가 속씨식물로서 꽃을 피운다. 속씨식물의 탄생으로 그동안 없었던 풀이 탄생하고 초원이 생겼다.
진화의 찰나였던 어느 날, 어떤 식물에서 꽃이 피었을 것이다. 그 순간 지구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최초의 꽃은 지구에 살던 곤충이나 공룡들, 포유류인 인류를 만들었다. 그 최초의 꽃이 피던 순간은 세상의 모든 생명에게는 최초의 꽃이 되었다.
나에게 피었던 최초의 꽃을 기억해보니 크고 화려한 장미가 아니라 이름 모를 들꽃이었다. 작고 여린 꽃이 하늘거리며 뿜어내던 자연의 생명력 같은 것이었다. 그 꽃의 소중함을 몰라 한때 인생에서 돈 많이 벌고 성공해서 명예를 갖는 것이 꽃길인 줄만 알았다. 내가 피운 꽃이 참 초라하고 불안해 보여 꽃이라고 생각도 못하던 때가 있었다. 꽃길이 어디 있나 떠나고 싶어 했고 무수한 시간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농사짓고 살림하고 자연을 돌보며 공동체로 사는 삶이라는 다른 꽃길을 만났다. 경쟁과 물질주의를 떠나 생태적인 삶을 살면서 삶이 참 달라졌다. 이제는 손에 흙을 묻히고 밭에 씨앗을 뿌리면서 땅을 굽어보다가 힘이 들면 허리를 펴며 보는 먼 산의 흐드러진 꽃무더기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꽃길이 되었다. 이 꽃이 지구의 최초 꽃인 듯 반갑고 놀랍다.
지구의 생명들이 지구에 최초로 핀 첫 꽃에 놀라 경외로움과 감사로 들끓었던 것처럼 인생에 품었던 꽃은 그저 기적이다. 삶의 방향이 될 나만의 꽃길은 내가 피웠던 꽃에 새겨있다. 가만히 내가 피웠던 꽃들을 생각해 본다. 그 꽃들이 퍼져 꽃길이 되었다. 그저 그 길을 찬찬히 걸으며 꽃이 피어 있음을 알아차리면 된다. 그 꽃이 핀 줄도 모를 때 꽃은 시든다. 우리는 모두 이미 꽃길을 걷고 있다.


시작을 축하하며

신부의 조카들이 뿌리는 꽃길을 따라 신랑 신부가 다시 걸어 나왔다.

글. 성재경

작년 말, 10년을 함께 동고동락하는 한 사람이 머쓱하게 봉투를 건넸다.
“나 결혼한다.” “갑자기? 축하해.” “갑자기이지만, 사고는 아니야.”라며 서로 웃으며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그와 소주 한 잔을 기울였다. “형이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는 생각 못 했어.”라며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말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것이 그날의 마무리였고, 마지막 한 마디였다. 그 말을 계기로 집에 들어가 곰곰이 지난 10년을 되돌아보았다.
‘언제 나는 이 형을 처음 만났지?’ ‘언제부터 이 형과 함께 지냈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청첩장을 다시 보았다. 나뭇가지에 눈이 내리고 그 자리에 새순이 자라 꽃망울을 머금고 있었다.
이제 그런 계절이 다가온다. 하얀 청첩장을 안주머니에 넣고 피아노 선율이 울리는 예식장을 들어간다. 하얀 종이보다 더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대기실에서 꽃다발을 안고 앉아있다. 긴장한 얼굴과 자세. 그리고 연신 허리를 굽혀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신랑의 모습. “와줘서 고마워.”라는 말을 듣고 자리에 앉으러 갔다.
막상 예식장에 도착하긴 했지만, 그곳에 있는 형의 모습도, 나의 모습도 새삼 새롭고 낯설었다. 이리저리 뭉쳐 있는 사람들은 단정한 옷차림이고, 그들은 오랜만에 만난 듯 “반갑다~.”라며 인사를 나눴다. 그제야 나는 일상과는 다른 일생일대의 단 한 번의 순간 속에 함께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형은 정말 인생의 전환점에 있구나.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치 넘치는 사회자가 나를 포함해 하객들을 웃기고 있었다. ‘사람 참 재밌다.’ 감탄하면서 지켜보다 이내 결혼식은 시작되었다. 어깨가 굳고, 손바닥이 뜨겁도록 박수와 환호를 보내 주었다. 예식장에서는 두 사람을 향한 박수가 멈추지 않았다. 신부의 조카들이 뿌리는 꽃길을 따라 신랑 신부가 다시 걸어 나왔다. 신랑 신부의 뜨거운 키스를 마지막으로 나는 밖을 나왔다.
덕분에 아직도 양팔이 당기고, 양손이 뜨겁다. 어느새 길거리에는 벚꽃과 개나리가 피어났고, 나뭇가지에는 새순이 올라오고 있다. 봄 향기 가득한 거리가 걸음을 여유롭게 한다. 서로가 그동안 내려쓴 역사를 ‘가족’이란 이름으로 새롭게 써 내려가야 하는 두 사람의 앞길이 봄처럼 따듯하고 꽃잎이 날리길 바란다. 축하해요!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