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의 비전 : 정신적 지도국

글. 이동하 솔로몬경영개발원 소장

“시력(Sight)이 없는 사람보다 비전(Vision)이 없는 사람이 더 불행하다.”고 헬렌 켈러가 말했다. 과거의 성공은 자만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미래의 희망은 가슴을 뛰게 한다. 어두운 터널도 끝까지 가다보면 밝은 빛을 맞이하고, 엄동설한 한겨울도 계절의 변화 속에서 봄이 오면 물러난다. 소태산께서도 깨침의 희망을 생명처럼 간직하시었기에 구사고행(求師苦行) 끝에 강변입정(江邊入定) 대몰입 경지에서 후천개벽 소식을 전했다.

천지개벽은 천개지벽(天開地闢), 새 하늘과 새 땅이 동시에 열림이다. 이는 정신개벽과 물질개벽, 영육쌍전개벽을 이른다. 서양의 르네상스와 지리상의 발견 이전까지만 해도 도학과 과학 양면에서 동양이 앞서 나갔으나, 그 후 서양은 상공업 중시·과학기술의 혁신을 통해 한때 아메리카와 아시아를 식민지 경제의 종속 체제로 만들었다. 중국과 조선이 중화(中華)사상에 빠져있을 때 일본은 로마 교황청에 유학생을 파견했고, 영국식 산업혁명과 독일식 군사혁명을 통해 대동아 공영권 구축의 야망을 꿈꾸기까지 했다.

동양의 도학이 서양으로 전해져서 과학기술 혁신에 응용된 한 사례를 들어본다. 동양 철학의 원천은 주역(周易)이다. 중국에서 주역을 접한 어느 가톨릭 신부는 로마 교황청의 사직 허락을 받아 주역 연구와 보급에 평생을 바쳤다. 독일의 수학자 라이프니쯔는 주역의 음양 철학에 영감을 받아서 컴퓨터 원리가 되는 2진법을 개발하였다.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이나 닐스 보어, 심리학자 칼 융도 주역을 자신들의 연구 분야에 응용하였다고 한다. 오늘날 융의 ‘주역연구소’는 세계 제1의 주역연구기관이라고 한다. 과학을 무시하는 도학은 무용하다. 사농공상 신분차별 속에서는 과학기술과 상공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리 없다. 역사상 최고의 정복자인 징기스칸은 전쟁 포로로 잡힌 상인과 기술자를 존중했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러간 도공은 영주들의 보호와 존중을 받았기에 대를 이어 일본 도자기 문화의 꽃을 피웠다. 조선말 실학은 유교적 봉건질서를 타파하지 못하였고, 세계사의 변화를 등진 채 당파 싸움 끝에 조선은 일제에 병탄을 당했다. 내부로부터 쇠망(衰亡)의 길로 걸어갔음은 뼈아픈 교훈이다.  

한민족의 역사는 후천개벽의 주인이 되기 위한 고난과 시련, 극복의 과정이었다. 1860년 최수운 대신사(大神師)께서 동학을 창도(唱導)하신 후 동학농민전쟁을 통해 신분타파와 평등세상을 죽기로써 갈망하였고, 1901년 성도(成道)한 강증산 대신사(大天使)께서는 거병해원 인의상생(去病解寃 仁義相生) 음부공사를 통해 후천개벽 대공사 일꾼들이 올 기운을 조성하셨다. 인권·인존의 대중적 자각의 기운이 익어가던 3·1 운동 전후 소태산 대종사께서 새 회상을 펼치시어 물질개벽을 주도할 정신개벽의 관점과 방법에서부터 훈련법에까지 세세곡절 밝히시었다. 

소태산께서는 “아직도 미비한 점은 앞으로 더욱 발전을 보게 되려니와, 정신적 방면으로는 장차 여러 나라 가운데 제일가는 지도국이 될 것.”(<대종경> 전망품 23장)이라 확신하시며, “이 나라는 반드시 금강산으로 인하여 세계에 드러날 것이요, 금강산의 주인과 더불어 세계의 빛이 되리라.”(<대종경> 전망품 6장)고 밝히셨다. “성인의 말씀을 100% 믿으면 이를 다 받는다(全信全受).”고 한다. 우리들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한뜻으로 모아, 집단지성 집현전(集賢殿)을 이루면 못 이룰 일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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