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이 그리운 날

글. 정인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법당 가득합니다.
두 사람씩 짝지어 노래 부르면서 마을 길을 한 바퀴 돌아 법당에 들어왔는데, 소란스럽게 떠드는 그들의 질서를 레크리에이션 선생님은 단번에 잡습니다.
두 손을 내밀어 큰소리로 박수 한 번 짱, 박수 두 번 짜장, 박수 세 번 짜장면, 박수 네 번 짜장 짬뽕, 박수 다섯 번 짬뽕 짜장면… 박수 열 번. 숫자가 많아질수록 조금 어리바리하던 아이들도 연습을 통해 무난히 통과합니다.
법당 안이 금세 조용해지고 제가 검정치마에 흰 저고리를 입고 연단에 올라 아이들과 인사 나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4월, 북면 면민의 날 화합 한마당 축제에 학교를 비워주고 화해교당으로 봄나들이 왔거든요. 교당 가까이에 있는 북면 초등학교 120여 명의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만나는 설렘도 있었지만 20여 분 동안 아이들과 무슨 얘기를 나눌까 고민하다가 원불교에 왔으니 종교의 가르침에 대해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교회에 가면 누가 계시나요?” 하고 물으니 예수님이 계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가르침을 주셨을까요?”라고 물으니 대답을 못해 “원수를” 하고 선창하니, “사랑하라.”라고 대답합니다. 여러분들을 힘들게 하고 화나게 하는 친구가 옆에 있다면 사랑할 수 있느냐 물으니 고개를 흔들며 할 수 없다더군요. “절에 가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계시는데 어떤 가르침을 주셨을까요?” 잠시 생각에 잠기는 아이들에게 자비에 대한 설명을 쉽게 해주었습니다.
친구가 무슨 일을 나보다 더 잘할 때 내가 잘한 것처럼 기뻐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 함께 아파하며 따뜻하게 위로해 줄 수 있느냐고 물으니 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려운 일이라고 합니다. 아이들만 어려울까요? 어른들은 쉬울까요? 어쩌면 어른이 더 어려울지도 모르죠. 수많은 경계 속에서 마음의 때가 많이 끼어있다면 자기 주견도 강할 테니까요.

이곳은 원불교인데 무얼 배우는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궁금한 표정입니다. 그래서 네 가지 은혜를 알려주었습니다. 하늘과 땅, 물 그리고 불, 공기와 바람 등 여기에서 한 가지만 없어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가 물으니 없다더군요. 우리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가르쳐 주신 부모님 은혜, 모든 수용품을 공급해 주는 동포님 은혜, 우리가 마음 놓고 살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법률님 은혜를 가르쳐 주니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많은 은혜 속에 살아가니 늘 감사해야 하고, 부모님께 효도해야 하고, 서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 진리를 깨치신 성자들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고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종교의 문을 열었고, 그런 공부를 하기 위해 교회에 가고 절에 가고 또 원불교에 다닌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내가 교무님이 된 동기를 말하며, 여러분은 장차 대한민국을 이끌어 갈 훌륭한 사람이 되어보라고 응원해 주었어요. 그리고 예쁘게 만든 천연비누를 선물하며, 날마다 비누로 몸을 씻는데 마음의 때는 무엇으로 씻어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라고 숙제를 주었습니다.
게임을 하며 망설임 없이 뛰어다니는 아이들, 그 맑은 눈빛이 고와서 한없이 그들을 바라보며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구나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이 예뻐지는 이유는 나이가 들기 때문이라는 것, 사실 젊음이 아름다워 보이거든요.
내가 시골 초등학교에 다닐 때 “책 읽을 사람 손들어요.” 하면 손들지 못하고 왜 그렇게 망설였는지…. 글씨를 반듯하게 잘 쓴다고 선생님이 칭찬해 주어도 몹시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북면초등학교는 한 학년이 20여 명이니 집중도도 높고 공부하기 좋은 환경이겠네요. 지역에 따라 폐교가 생기고 어느 곳은 한 반에 두 명 내지 세 명이라니, 저출산 시대의 학생 부족 현상이 높아지고 있답니다. 정읍시 인구가 11만 명인데 외국인 등록 인구가 2천 3백여 명이니 이제 인류는 한 가족이 되어 교실의 빈자리를 이웃 나라와 함께 채워가야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명절이면 교당에 찾아와 이리저리 둘러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인지 얘기를 나눠보면 어릴 적에 교당이 놀이터였답니다. 탁구대 하나로 모이고, 배구공 하나로 게임도 하고…. 어린이회, 학생회, 청년회, 그렇게 이어졌던 가족들은 지금 다 어디로 갔을까요.
법당 가득 출렁이는 아이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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