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개벽포럼
‘나를, 교단을, 세상을 새롭게’
어떻게 할 것인가?

● 좌담 김도공 교무·원광대학교 교학대학 학장
 이성심 교무·둔산교당·봉도수위단원
 박인수 원불교청년회장·수원교당
● 사회 노태형 사장
● 정리 장지해 편집장
● 일시 및 장소 원기 103년 12월 13일 오후 4시 월간원광사 사무실

노태형 : ‘나를 새롭게·교단을 새롭게·세상을 새롭게’에 담긴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김도공 : 나, 교단, 세상 이런 식으로 확장되어 퍼져나가는 게 기본이다. 하지만 이 법문의 순서를 거꾸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세상은 이미 새로워졌으니 그에 맞게 교단을 새롭게 하고, 새롭게 된 환경 속에서 개인이 새로워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새롭게’라는 단어에 눈길이 갔다. 새로울 신(新)자의 부수는 도끼 근(斤)자다. 새로움을 위해서는 끊어내야 할 것은 끊어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원상의 진리를 품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과거와 단절시키는 도끼질이 개인에게도, 교단이라는 조직에도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했다.
박인수 : 이 법문을 ‘나→교단→세상’ 혹은 ‘세상→교단→나’처럼 단계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저는 나와 교단과 세상이 ‘같은 선상에 놓인 상태의 새롭게’로 받아들였다. 교단과 세상이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우리 젊은 세대들이 사회적으로 고민해야 할 건 무엇인가, 하는 숙제를 받은 느낌이었다.
이성심 : 전산 종법사께서는 새롭게라는 말씀으로 사오백 년 결복의 문을 열어가자는 데에 방점을 찍으신 것 같다. 우리가 ‘새롭게’ 한번 해보자, 세상에 우리의 교리와 정신을 마구 뿌려내자는 의지가 담겼다. 이건 정신개벽을 풀어서 쓴 단어라고도 생각한다.

노태형 : 전산 종법사가 나를 새롭게 하는 가장 기초로 ‘훈련’을 언급 했다. 우리 훈련법이 가지는 특징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자.

이성심 : 대산 종사께서는 ‘훈련은 인생을 거듭나게 하는 길이다.’라고 하셨다. 훈련은 하고 또 하고 반복해서 완전히 익혀서, 내가 챙기지 않아도 저절로 되도록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훈련’이 몸으로 익히는 것에 한정된다면, 우리가 말하는 ‘훈련’은 내적으로 들어와 마음을 바라볼 수 있게 해서 기질 변화는 물론 심성 변화까지 하게 만든다. 그만큼 세밀하게 나의 마음 작용을 보게 되어 업력에 끌려가는 나를 벗어나게 한다. 큰 은혜이다. 
김도공 : 사실 훈련은 <정전> 수행편 내에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훈련이 강조되면서 그 상위가치인 수행의 가치는 뒤로 밀린 듯한 느낌이 든다. 훈련이 살아나려면 수행이라는 상위가치를 살려내야 한다. 훈련법만 강조되면 불공법이나 심고하는 법 같은 종교적인 의미가 약화되기 쉽다. 물론 ‘훈련만 강조하겠다.’라는 게 아니라 ‘훈련을 통해 우리의 수행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겠지만, ‘훈련’만 너무 강조되면 거기에 매몰되는 사람도 생긴다.
박인수 : 재가들은 아무래도 출가보다는 세상에 더 나와 있고, 공부하는 수행인으로서의 삶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정기와 상시의 균형을 맞춰 공부를 해가야 한다.’는 생각이 더 있다. 상시에 일기를 쓰거나 자기 점검을 하고, 정기에 훈련을 나면서 내가 진정한 수행인으로 돌아가는 기분을 경험하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변할 수 있구나. 일상에서도 달라질 수 있구나.’ 하는 계기와 순간을 만날 수 있는 게 훈련이라고 생각한다.

노태형 : 훈련은 결국 삶 속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새롭게 해가는 방법이다. 훈련법을 조금 더 단순하게 풀어내면 교도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신선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박인수 : 우리가 가진 ‘실천’의 매력, 특징, 장점이 분명 있다. 그런데 원불교 공부를 하면 일기도 써야 하고, 단회도 해야 하고, 교무님께 감정도 받아야 한다. 사실 재가교도로 생활을 하다보면 30대부터 50대까지가 매우 바쁘다. 그래서 수행인으로서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다는 어떤 박탈감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설교중심으로 진행되는 법회에만 익숙해져 있어서 상시훈련을 어렵고 귀찮은 것으로 여기기도 한다. 또 ‘당연하게 해야 하는 것이고, 굉장히 쉬운 방법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느 교도들은 공부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더 높은 궤도에 올라가지 못하기도 한다.
이성심 : 교도님들은 교무님이 경계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그럼 교도님 것도 가져와서 이야기 해주세요.’ 하면 ‘없어요.’라고 한다. 해야 한다는 건 알면서도 막상 직접 하려면 귀찮다고 한다. 그것을 꼬집어주기 위해 훈련을 재차 강조하신 것이라고 생각된다. 훈련으로 변화된 교도들의 사례를 많이 소개하면 좋겠다.
김도공 : 훈련이든 수행이든, 자발성이 최초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정해진 틀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자유분방함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데 지금까지 우리의 훈련은 일반적인 틀을 만들어서 ‘여기에 적응해라.’ 하는 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틀을 만들어서 집어넣으려고 하면 자발성은 더 뒤로 간다. 재가든 출가든, 왜 훈련과 수행을 해야 하는지 자기 자각이 생기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한다.

노태형 : 정기훈련과 상시훈련이 일상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확산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성심 : 내가 변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경계를 당해 조언을 구하는 사람이 의지를 갖고 ‘그렇게 해볼게요.’ 하면 변화가 되지만, ‘또 저 소리네.’ 하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의 의지가 강할 때 실천의 힘이 나오고, 그래야 일상 속에서 꾸준할 수 있다.
박인수 : 결국 가장 마지막에는 내가 마음을 내서 ‘딱’ 해야 하는 건데, 교화 지도자 입장에서 보면 개인에게 그런 자발성이 생기기까지 기다리기엔 참 힘든 것도 사실이다. 특히 세대가 내려갈수록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성장하다 보니, 본인의 선택지를 중시한다. 교도로서 훈련을 일상화하고자 하는 욕구는 있다고 본다. 자발성에 더해, 공부의 계기를 만날 수 있는 다양성만 잘 주어진다면 훈련도 일상화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된다.
김도공 : 정기훈련을 정기훈련답게, 상시훈련을 상시훈련답게 할 필요가 있다. 평소(상시)에 열심히 수행하며 살라고 하면서, 훈련(정기)가서도 수행이니까 열심히 하라고 한다. 계속 열심히 하라고만 하면 긴장상태의 연속이지, 쉴 틈이 없다. 상시훈련과 정기훈련을 명확히 구분해서, 상시훈련을 상시훈련답게 운영하고 정기훈련을 정기훈련답게 운영해 삶의 리듬을 찾아가게 해야 한다.

노태형 : 훈련의 현대화(시대화)도 필요할 것 같은데?

김도공 : 훈련원마다의 특징이 생겨야 한다. 병진을 해 가되 ‘어떤 훈련원에 가면 하루 종일 좌선만 할 수 있다. 어떤 훈련원에 가면 하루 종일 성리단련만 할 수 있다.’ 하는 포인트를 만들어가야 한다.
박인수 : 공감한다. 훈련원들의 위치에 따라 특성화가 잘 정착되고 전문화되면 좋겠다. 청년 세대들은 자신이 재미있는 것, 자신이 흥미 있는 것을 고르게 하면 함께하고 싶어 한다. 청년회에서 훈련을 할 때 절 수행을 하면 여러 개의 반을 만든다. 어떤 반은 절만 한 시간을 하기도 하고, 어떤 반은 절과 좌선을 섞어서 하기도 하고, 또 어떤 반은 절의 방법부터 배우기도 한다. 전문화되고 다양한 선택지가 마련되는 일이 아무래도 젊은 세대들에게 필요한 유형이라고 생각된다.

노태형 : ‘훈련’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부정적 이미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도공 : 훈련의 가르칠 훈(訓)자는 말씀 언(言)자에 내 천(川)자로 만들어진 글자다. 진리의 말씀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오는 것, 이것이 훈련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훈련이라는 군사적 용어를 당시 시대속에서 어쩔 수 없이 쓰게 되었다 하더라도, 해석할 땐 ‘진리의 말씀을 자연스럽게 내가 수행해가는 과정’이라고 상기하면 좋겠다.
이성심 : 훈련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단어가 뭐가 있을까 고민해보았다. 사람들이 이미 일상생활에서 ‘마음 바라보기’ 혹은 ‘마음 챙김 리스트’라는 표현으로 많이 풀어서 쓰고 있다. 이 말들이 결국 ‘훈련’의 또 다른 표현이라 생각한다. 각자의 정서에 맞는 용어로 훈련을 하며 자기 변화를 꾀하고 있다.
박인수 : 여자 아이돌그룹 노래 제목 중에 ‘너무너무너무’라는 곡이 있다. 신나서 기분이 좋다는 내용이다. 본래 ‘너무’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부사다. 그런데 요즘 긍정적인 의미로 쓰는 경우가 만연하다보니 최근 <표준국어대사전>에 부정의 의미가 빠진 뜻으로 다시 등록이 되었다고 하더라. 시대에 따라 변화된 의미가 반영된 것이다. 제가 성장할 때만 해도 ‘훈련 간다.’고 하면 ‘무슨 훈련?’이라고 되묻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 학생들은 ‘훈련’이라는 말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걱정을 하기 보단,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공용해서 쓰는 노력을 함께 병행하면 되리라 생각한다.
김도공 : 훈련보다 상위인 수행이 더 좋은 의미이고, 만약 수행이라는 말이 너무 불교적이라고 한다면 ‘명상’이라는 현대적 표현도 있다. 명상은 종교색을 완전히 벗어나는 일반화된 용어다. 탈종교시대에 원불교가 나아갈 방향은 우리의 수행법을 명상시대와 잘 접목시키는 일일 것이다.

노태형 : ‘나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김도공 : 출가자들 표현으로 하면 ‘자기 서원 확인’, 일반 개인에게 접목한다면 ‘내 존재의 의미 확인’ 과정이 필요하다. 전산 종법사께서 ‘아침에 일어나고 저녁에 잠자는 일상’을 이야기하셨다. 잠들 때 최후 일념, 일어날 때 최초 일념을 잘 챙기는 것에서부터 자기 훈련의 시작이다.
이성심 : 나를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 저의 경우 법문을 받들고 생각해보니 ‘나를 변화시키기 위한 수많은 시도들 중 가장 끝까지 못해 본 게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108배를 시작했다.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새롭게 다시 나를 리모델링할 수 있는 계기들을 각자 한 가지씩 찾아보면 좋겠다.
박인수 : 원불교청년회 임원들과 새해 계획을 이야기 하면서 작은 수행실천 한가지씩을 하기로 했다. 매번 하던 조석심고라도 내가 새롭게 마음먹는 순간 다시 새로운 것이 된다. 그런 게 서로에게 영향을 끼쳐서 함께 변화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노태형 : 교단을 새롭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에 관심을 갖고 무엇부터 바꾸어가야 할까?

이성심 : 소통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그냥 소통이 아니라 ‘친절한 소통’이 되어야 한다. 교정원 정책을 친절하게 설명하면 교단 구성원들은 이해한 만큼 실천해 낸다. 그런데 종종 쌍방 소통이 아닌 ‘일방적 지시’로 일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음을 느낀다. 이웃 종단의 브리핑룸이라는 제도도 도입해 봄직하다. 정책이해의 정도가 각각이다. 쉽고 친절하게 소통을 하면 이해도 훨씬 빠르고 실천의 강도도 커질 수 있다.
박인수 : 조심조심하면서 걱정하는 것을 내려놓고, 새롭게 나아가자는 개혁의지가 더 드러났으면 한다. 청소년과 청년 교화부분에 대해 계속 안 된다는 이야기만 한다. 그럴 때마다 묻고 싶다. ‘언제 했었나요? 어느 정도 했더니 안 되었나요?’ 우선 청소년·청년교화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해보면서,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보완해 다음 방향을 강화하면 좋겠다. 그렇게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개혁이 있었으면 한다.
김도공 : 교단이 새롭게 되기 위해서는 원불교라는 교단이 왜 이 세상에 필요하게 됐는지 애초에 출발했던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이소성대, 사무여한, 혈심혈성 등의 창립정신은 교단을 어떻게 만들어왔는지에 대한 방법이다. 그러한 고생을 감수하게끔 만든 최초 지점, 원불교가 왜 이 세상에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원인을 제대로 확인하는 데에 교단을 새롭게 하는 방법이 있다. 저는 원불교가 존재하는 이유를 우리의 교리 ‘사대강령(四大綱領)’이라고 생각한다. 정각정행(正覺正行)·지은보은(知恩報恩)·불법활용(佛法活用)·무아봉공(無我奉公)이야말로 원불교가 사회 속에서 추구해나갈 기본 방향이다. 지금 그 방향을 잃고 헤매면서 힘만 소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노태형 : 교단이 더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나?

김도공 : 자녀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면 교육이 비뚤어지듯, 교단 구성원들의 교단에 대한 과도한 사랑이 교단을 잘 못 가게 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 교단만 옳다, 우리 교단만을 위해야 한다, 우리의 교리와 교법은 무조건 옳다는 등의 ‘우리 교단 주의’가 우리를 더 힘들게 하고 있다. 교단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이성심 : 저는 출가제도가 많이 변화되었으면 좋겠다. 만약 출가제도가 없었다면, 오히려 재가공동체로서 이 사회에 더 융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물론 출가가 있어 교단을 이만큼 발전시켰다. 이젠 재가도 출가만큼 주인 될 수 있도록 키워내는 게 과제다. 
박인수 : 하나는 인사제도다. 순환근무에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교화 약화의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청년교화 담임교무님들은 그 인사제도의 영향을 더욱 많이 받다보니 교화연속성 부분에서 아쉬운 점이 많다. 다른 하나는 현재 ‘우리 교무님들이 현재 교화가 우선 될 수 있는 환경인가?’이다. 덩치가 커지면서 교화 말고도 수행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교화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노태형 : 인재양성도 교단을 새롭게 하는 중요한 축일 텐데.

김도공 : 교단에서 ‘인재’ 하면 우선적으로 교무를 말하는데, 그동안에는 교무를 ‘인력’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봤다(인재=교무=일하는 사람).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와 인생으로 바라봐주어 꽃을 잘 피울 수 있게끔 하는 구조로 가지 못했던 것이다. 아직도 그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관점의 전환을 이뤄야 새로운 인재도 들어오고, 이미 있는 구성원들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성심 : 출산율 저하로 청소년이 감소했다. 인재를 찾는 시야를 출가에만 국한하지 않아야 한다. 시대에 맞는 다양한 인재(출가제도)를 정립해야 한다. 교단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해줄 수 있는 NGO파트의 인재도 있을 것이고, 혹은 지역사회와 대외활동을 통해 친 원불교인으로 만드는 일도 원불교의 인재를 얻는 길이다.
박인수 : 재가 청년 인재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면, 현재 청년회장, 대학생 교우회장을 할 사람이 없어서 난리다. 인재여서 회장을 맡으면 그 임기가 길어지는 형편이다. 인재‘양성’만큼이나, 그 인재들을 잘 관리할 수 있는 물리적 제도도 필요하다. 신심과 공부심이 바탕 되어 회장이 되었으니 역량을 더 잘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장학이나 교육 혹은 훈련도 더 특별하게 제공해주면서 키워내야 한다. 또 출가 인재 양성은 학생교화와 청년교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길을 가던 사람이 갑자기 출가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학생회를 열심히 다니고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서원이 생긴다. 결국은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학생·청년교화에 굉장한 힘과 기운을 쏟아야 한다.

노태형 : 교단을 새롭게 하기 위해 ‘이건 꼭 하자.’는 게 있다면?

김도공 : 눈에 확 띄는 상징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꼽아보자면 여성교역자 결혼문제라든지, 원불교만의 장례문화 등과 같이 사회 의식을 끌고 갈 수 있는 변화의 축이 터져야 한다.
이성심 : 창의 학교인 출가교화단에서 의견 제출이 많이 되고 있다. 거기에는 우리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견들이 그대로 제안되고 있다. 그 의견 제출에 성의 있는 답변과 좋은 의견은 정책에 반영해 보면 좋겠다. 그것만 잘해도 교단은 변화될 수 있다고 본다.
박인수 : 청소년·청년교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나라에서도 저출산 문제, 청년 문제에 굉장한 관심을 갖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럼 우린 어떤 정책과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을까? 가정에서 소득이 줄고 사는 게 힘들어도 아이들 학원비는 못 줄인다. 말로만 ‘너희가 희망이다. 너희가 기반이다.’라고 하지 말고, 정말로 그 희망이 자라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줘야 한다.

노태형 : 4차 산업혁명시대라고도 일컬어지는 때에, 원불교의 시대적 소명은 무엇일까?

이성심 : 정신개벽을 사회에 일반화시키는 일이 시대적 소명이라고 생각한다. 교도뿐 아니라 일반사람들이 보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확산시켜가야 하는데, 우리는 그 부분을 선점하지 못했다. ‘정신개벽’의 정신을 각종 캠페인과 칼럼 속에서 계속 녹여야 한다. 개 교당 교무님들도 어떤 지역사회에 가면, 그 지역사회 신문에라도 칼럼을 써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다.
김도공 : 시대에도 맞고 사회에도 어울리는 그런 정신개벽이 되어야 한다.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물질문명에 정신문명의 조화를 추구하되, 자기점검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자는 것이다. 개벽은 완성형이 아닌 영원한 진행형의 과제이다.
박인수 : 얼마 전 서점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과거에는 자기계발서 코너에 ‘성공하는 열 가지 전략’ ‘남보다 먼저 이루는 법’ 같은 책들이 많았다. 지금은 ‘옆 사람과 대화 잘 하는 법’ ‘마음 잘 쓰는 법’ 같은 우리가 말하는 ‘취사하는 법’이 주를 이루더라. 요즘 사람들은 주변의 인연을 잘 대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잘 돌아보는 일이 잘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명상시스템을 기반으로 만든 애플리케이션도 굉장히 많다. 물질이 개벽됨으로써 생기는 괴로움과 번뇌를 해소하고 싶어 하는 세상의 욕구를 우리가 해결해줘야 하는데, 우리는 다가가지 않고 ‘너희가 여기로 와.’ 라고만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노태형 : 종교 위기 시대, 탈종교시대라고 하는데?

김도공 : 탈종교시대라는 말을 국내에서는 우리 선배 교수님이 가장 먼저 썼다. 1970년대에 내세웠던 용어인데, 정말 선지적 예언과도 같은 표현이다. 명상이 탈종교시대의 수행방법의 용어로 수렴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원불교도 탈종교시대를 염두에 두고 우리 교법을 현대화시키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핵심 내용만 가지고 탈 종교화, 탈 원불교화 시켜야 보편화가 가능하다.
이성심 : 2019년 트렌트 키워드에 ‘카멜레존’이라는 말이 있다. 카멜레온처럼 여러 가지 색깔로 변신하는 공간을 표현하는 말이다. 탈종교화시대에 원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저는 이 말에서 찾았다. 낮에는 식당이었던 곳이 저녁에는 카페가 된다. 그런데 우리는 법당 그 자체로 고정되어 있다. 우리 법당이 카멜레존이 될 순 없을까? 일원상을 가리기도 하고, 오픈시키기도 하고, 어느 때는 명상교실, 어느 때는 NGO교실, 어느 때는 봉공교실로 쓸 수도 있지 않을까?
박인수 : 요즘 세대들은 개인적 성향만큼이나 ‘공동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옛날에는 ‘세상 바꾸는 것을 내가 하겠다.’였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도록 하는 일에 내가 함께 한다.’는 데 의미를 둔다. 물질에 대한 가치관도 ‘내 것’에서 ‘함께’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돈을 벌어서 자전거를 사고 그것을 잘 아껴서 10년 동안 타는 걸 가치로 여겼다. 하지만 이제 돈의 가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걸 사먹거나 여행 가는데 쓰고, 자전거는 필요할 때 빌려서 사용하며, 사무실도 굳이 칸이 막힌 공간을 구하지 않고 공유오피스에 들어간다. 공유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 그런 세대라는 점을 생각하면 교당과 법당의 다변화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성심 : 기존의 숫자 세는 교화방법에서 탈피해야 한다. 교무가 일주일 동안 대외활동은 몇 번이나 했고, 어떤 동아리들과 모임을 했는가가 교화의 체크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노태형 : 나·교단·세상을 새롭게 하기 위해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이성심 :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있다. ‘깨어있는 나, 자각하는 나’가 많을 때 나 자신도, 교단도, 세상도 모두 새로워지지 않을까. ‘깨어있는 나’는 현실 경전을 많이 보는 사람이다. 현실 경전을 보면 변하지 않을 수 없다. 날마다 날마다 새롭고, 새로우면 ‘긍정의 나’가 된다.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하라는 법문을 마음에 새기고 경계를 대하려 한다.
김도공 : 개인의 자각에 의한 자발적인 수행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개인은 열심히 하지 말라고 해도 열심히 한다. 하지만 교단은, 개인이 열심히 하게 만들면 안 된다. 평균치에서 정책을 짜야 오래간다. 열심히 하는 사람을 위주로 정책을 짜면 금방 지친다. 교단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혈심혈성으로 열심히 사는 출가와 재가만을 원해서는 안 된다.
박인수 : 청년들의 공부 스타일은 그렇다. ‘나부터, 작은 것에서부터 수행인으로 살자.’ 작은 게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나도, 교단도, 세상도 새롭게 만드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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