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멍에를 벗고 새로운 미래를 열다
글. 강금성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난 저는 3살 때 어머니가 중국으로 돈을 벌러 떠나신 이후 아버지와 살았습니다. 9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는 5년간 친척집을 떠돌며 지냈습니다. 2008년, 13살의 나이에 남한에 먼저 와 계셨던 어머님의 부름을 듣고 대한민국으로 넘어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와 만남의 기쁨은 잠시였습니다. 새아버지와의 불편한 감정과 공부에 대한 거리감으로 뭔지 모를 증오감이 생겨났습니다. 사춘기였던 저의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방황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2009년, 탈북자 특성화학교인 한겨레중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중학교 시절에도 저는 모든 일이 귀찮았고 공부라는 단어와 간섭하는 선생님들이 싫어 선생님들에게 대들기 일쑤였습니다.

그때 제 앞에 한 명의 선배가 나타났습니다. 선배는 방황하는 저를 바르게 이끌어주었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자원봉사동아리로 인도해주었습니다. 나의 작은 힘이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진리에 눈을 뜬 저는 대한민국에서의 생활에 차츰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침 운동 시간에 마을을 뛸 때면 어르신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십니다. 특히 우리들은 친절히 대해주시는 마을버스 기사 아저씨를 매우 좋아합니다.
 
봉사를 하다 보니 언젠가부터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웃는 얼굴이어야 많은 친구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은 맞는 말이었습니다. 늘 불안과 불만에 가득 차 짜증을 냈던 저에게도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사람들도 모두 좋은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 살아갈 방법 외에는 다른 것에 관심도 없었던 사회와 부모님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저는 남을 돌본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늘 이기적이던 제가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봉사’가 저의 이기적이고 소심했던 성격을 바꾸고 생각을 변화시켰습니다. 저는 동아리장으로 활동을 하면서 ‘자원봉사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자신감과 삶의 의지를 심어주는 유일한 활동’임을 깨달았으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정체성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정부 지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갑니다. 그런 생각으로는 나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대학에 가면 탈북자들의 봉사동아리를 만들겠다고 다짐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받은 은혜를 갚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 팀을 만들어 봉사활동을 하고 탈북자들의 생각을 바꿔보겠습니다. 또한 탈북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과 인식을 바꿔나가고 싶습니다. 받는 것보다 봉사를 하는 것,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저는 꾸준히 사랑을 실천해 나갈 것이고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뛰고 또 뛰겠습니다.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