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근아! 일어나라~ 설교 준비해야지~
글. 박성근

잔뜩 물먹은 솜처럼 온몸이 천근만근이다. 11월의 끝자락에 연이틀 교당 김장으로 온몸을 불태웠더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엄습해왔다. 결국 금요일 오후가 되자 내 몸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혼자 김장을 다 한 것 마냥 벗어놓은 내 옷가지들은 양념으로 범벅이 된 채 방구석에 널브러져 있었다. ‘아~ 일어나야 되는데… 일어나야 되는데….’를 수없이 반복하면서도 나는 쉽사리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참을 끙끙대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스프링처럼 벌떡 튀어 일어났다. 바로 지난주 청년법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날의 법회는 근래의 법회 출석률에 비해 상당히 많은 청년이 참석했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온 첫날, 법회를 보고 싶다며 교당을 찾아준 도천이도 오랜만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걸음에 달려온 다은이도 있었다.

간만에 법당은 청년들로 가득 찼다. 법회를 마치고 함께한 저녁 메뉴는 우리들의 입맛을 단번에 사로잡았으며, 식사 분위기는 그야말로 즐거움 한가득이었다. 그러나 법회는 최악이었다. 왜냐하면 내 스스로가 설교에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말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설교가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내가 이런저런 불필요한 말들을 붙이기 시작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였다. 앞뒤 문맥이 매끄럽지 않았고, 끝맺음 또한 흐지부지하기 일쑤였다. 한 청년은 지루한지 계속해서 내 얼굴과 시계를 번갈아 보았다.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고, 청년이 시계를 볼 때마다 괜히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주에 초상이 나서 정신이 없었고, 법회 당일 교당 청소에 가정독경까지 가는 바람에 그랬다고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그러나 결국 이때보다 더 바쁠 때도 틈틈이 설교안을 쓰고 수정을 반복했던 걸 보면 역시나 명백한 변명이 맞다. 연마가 부족했고, 또 연습이 부족했음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깨끗이 인정한다. 다음날 어린이법회, 학생법회, 그리고 천도재가 기다리고 있었기에, 일정을 생각해서 일찍 자리에 누웠지만 쉽게 잠이 오질 않았다.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에 이 후회가 내내 불편했다.

암실기심 신목여전(暗室欺心 神目如電). 어두운 방에서 마음을 속여도 귀신이 보는 것은 번개와 같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진실은 속일 수 없다는 뜻이다. 내 마음 상태가 바로 이러했었다. 그날 밤 난 쉽사리 잠자리에 들지 못했었다. 다신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그러다 오늘, 순간 그때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설교안을 클릭해 열었다. 그리고 작성된 설교안을 소리 내어 한 문장, 한 문장씩 세세하게 읽었다. 부자연스러운 문장이 여럿 보였고, 피곤함도 잊은 채 퇴고의 시간은 길어지고 있었다. 부디 내일 법회는 후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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