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꿈보다 더 좋은 꿈
글. 윤은찬

사실 나는 꿈에 대해 그렇게 믿는 편은 아니었다. 해몽으로 심리상태를 나타낸다는 것은 그럴 듯 하지만 예지몽에 대해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물며 꿈에 돼지가 나오면 운수가 좋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내가 어찌 믿을 수 있었겠는가? 그런 내가 해몽을 믿게 된 계기가 하나 있었다.

나에게는 3살 터울의 형이 있다. 형이 수능을 보러 가기 전날 밤, 나는 온 동네가 거대한 화재로 번지는 꿈을 꾸었다. 그 큰 불길 한가운데에서 형은 오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기억이 명확하지 않았지만 나는 ‘필시 이는 길몽 중의 길몽’이라 생각하고 어린 마음에 냉큼 형에게 꿈을 팔았다. 그런데 형이 집을 나선 직후, 꿈속의 내가 모든 불을 호스로 끄고 오물을 뒤집어쓴 형을 깨끗이 씻어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날 시험을 마친 형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들어와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이후 나는 ‘꿈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원광여고에서 원코칭 동아리를 진행하면서 또 한 번 바뀌게 되었다.
동아리 활동은 12월 10일로 끝이 났다. 개인적으로는 아쉽기도, 시원하기도 하다. 3월 초에는 당당하게 의사가 될 거라고 경찰이 될 거라고 서울대에 갈 거라고 외치던 아이들이, 1년 만에 생기를 잃은 모습은 가엽다. 1학기 중간고사를 맞이하고부터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풀이 죽은 얼굴로 “선생님, 제 위치를 알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한지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학교 수업 듣느라 학원 가느라 숙제하느라 꿈은 커녕 지금을 살기도 벅차했다.

나도 학창시절엔 그랬다. 꿈을 꾸면 숙면을 취하지 못한 거라는 말 때문에 꿈이 썩 달갑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지금의 학생들도 그러지 않을까. 불이 나는 꿈이든 오물을 뒤집어쓰는 꿈이든 돼지가 무더기로 나오는 꿈이든, 잠을 잘 시간조차 없는 아이들에게는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런 꿈을 꿀 시간조차 없으니까.
드라마 ‘도깨비’ 중 한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어느 부부의 꿈에 찾아가 로또 번호를 알려주려 했으나, 정작 그 부부는 밤새도록 힘들게 일을 하는 탓에 꿈을 꿀 시간조차 없었다고. 과연 우리 학생들은 어떨까? 아이들의 꿈속으로 들어가려 했던 수많은 돼지 중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돼지들이 갈 길을 잃었을까? 나는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밤에 꾸는 꿈조차 그러는데 학생들의 꿈은 어떨까? 수업을 하면서 아이들이 가장 많이 하던 말은 “선생님, 저는 제 꿈이 뭔지 모르겠어요.” 였다. 그 말에 나는 그저 “같이 한번 생각해보자.”고 밖에 할 수 없었다.
잠은 뇌가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한다. 그런 시간에조차 꿈을 꾸며 뇌가 쉬는 시간을 뺏는 것은 너무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한 번 나는 ‘돼지꿈’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돼지꿈을 꾸는 것보다 아무런 꿈도 없이 푹 자는 것, 불확실한 행운보다 지금 푹 쉬고 미래의 꿈을 그리는 게 더 길몽 아닐까?


파이팅, 취업!
글. 유재상

2019년은 ‘기해년(己亥年)’이다. 10개의 천간 중 ‘기(己)’는 땅, 즉 황금빛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12지신 중 돼지를 뜻하는 ‘해(亥)’와 만났다. 쉽게 설명하자면 ‘황금돼지’ 해가 온 것이다. 풍요를 의미하는 황금과 돼지가 곱절로 만났으니 좋은 조합이 아닐 수가 없다. 또 황금돼지 해를 맞아 모두가 풍요롭고 경제적으로 만족스러운 한 해를 보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나는 이제 대학교를 졸업할 예정으로, 한참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2019년은 황금돼지의 해인만큼 꼭 올해 안에 취업을 해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초년생이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월급을 받아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해외 취업이 목표이며, 최근 교환학생으로 다녀온 미국에서의 생활이 너무 잘 맞아 직장생활 또한 그곳에서 할 계획이다.

몇 해 전부터 미국의 비자 문제가 더욱 힘들어져 전문직종이 아닌 이상 외국인 신분으로 일을 하며 생활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현실이 되었다. 미국으로 공부하러 가는 사람들은 많이 있어도 워킹홀리데이를 가는 걸 보기 힘든 것도 그 이유다.
일반 고등학교에서 문과를 나와 그저 ‘미래에 취업 준비를 더 잘하고 싶다.’는 이유로 경영학과를 선택했다. 그런데, 그것이 마침내 빛을 발휘하고 있다. 미국에서 취업하는 외국인들의 비율 중에서 IT 직종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비자 취득 확률을 보여주는 것이 ‘회계사’인 것이다. 몇 달 전만 해도 마케팅 과목에서는 항상 수석을 차지하였고 회계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아 ‘회계는 내 적성이 아닌가….’ 했었는데, 회계 분야가 나의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지금은 악착같이 미국 공인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사람 일은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을 되뇌며 부지런히 노력하는 중이다. 4학년 마지막 학기에는 정말로 하고 싶은 일과 나를 선택해 주는 곳으로의 취업 사이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다. 원서 또한 여러 군데에 넣었다.
하지만 결국 하고 싶은 일도, 나를 선택해 주는 곳도 아닌,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였다. 다행히도 4년간 배운 공부를 사용할 수 있는 직종을 선택했고 급여 또한 높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빠르게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 것 같다.
황금돼지의 해인 만큼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취업에 꼭 성공하는 것이 2019년의 다짐이자 바람이다.

바보 같은 천재 K
글. 조민규

복학한 후 학과공부에 너무 얽매였던지라, 나도 모르게 학점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인생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수업을 함께 듣는 같은 학과 학생들과 술을 먹을 때면 과제와 교수님에 대한 이야기만 있을 뿐 별다른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 지루하기만 했던 내 대학 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교양과목을 듣는 과정에서 연극하는 동생들의 추천으로 연극 워크숍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중 K라는 동생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극작과 전공인 이 친구는 글로써 연극의 개연성을 높이는 역할을 담당했다. 포근한 미소와 털털한 성격 때문인지, 글을 쓰는 학생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던 K는 매일 밤마다 술을 먹자고 징징대는 귀여운 동생이었다.

하루는 이 친구가 대학 주변에 귀신이 출몰한다고 소문나 있던 곳을 직접 가보자기에, 나도 모르게 그러자고 했다. 겁이 많던 K는 ‘혹여나 정말 귀신이 나오지 않을까.’ 하며 점차 학교에 나무 막대기, 각종 부적들을 챙겨오기 시작했다. 웃겼던 것은 당시 내 나이는 29살, K는 27살이었다는 것. 누군가는 우리를 두 명의 한심한 얼간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마치 초등학생 때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K가 내게 말했다. “형. 귀신 찾으러 가자.” 나는 “야, 요즘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냐?” 하고 짤막하게 대답했지만,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이기에 어쩔 수 없이 쫓아갔다. 귀신을 찾아다니는 동안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특히 K는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스토리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하면 좀 더 차별화된 연출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사실 나는 실내건축과 출신이다. 연극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던 나에게, 왜 K는 그렇게 많은 질문을 했던 것일까?
나도 몰랐던 사실이지만, 함께 연극을 하는 팀원끼리는 서로 말없이도 통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들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아이는 나와 연극을 함께하는 팀원으로서 충분히 신뢰를 쌓고 공유할 추억을 남기고자 했던 것 같다. 그냥 카페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것도 좋았지만, 귀신을 찾아다니면서 이야기했던 그 시간이 내 기억 속에 의미 깊게 남아있다. 좋은 꿈 같이 느껴지던 그런 일들이 올해에도 일어날 것 같다. 이 친구들이 내 곁에 있기에 더더욱 예감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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