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식 나전칠기 장인
오색영롱한 빛으로 태어나다

취재. 김아영 기자

영롱한 검은 바탕 위로 산과 소나무, 꽃송이가 화려하게 핀다. 그 사이를 누비는 사슴은 금방이라도 튀어 오를 듯 입체적이고 역동적이다. 진주와 소라, 전복 껍데기를 오리고 끊고, 잘게 꺾어 붙여 만든 나전칠기 벽걸이는 수묵화의 깊은 멋에 화려함이 더해진 느낌이다. 박인식 나전칠기 장인의 손이 바삐 움직일수록 옻칠과 자개의 영롱한 빛은 살아난다.

“가까이서 봐요. 동물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근육 별로 홍패와 진주패, 옥패를 사용해 색을 달리했지요. 만져보면 높낮이도 다르고요. 눈동자도 하나의 색이 아니에요.” 그의 말처럼 작품 속 동물은 물론 색색의 꽃과 새, 은은한 빛깔의 보름달까지, 어느 것 하나 평이하게 표현된 게 없다. 30여 년 동안 한길만 걸어온 그의 지난 시간이기도 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렇게 나전칠기에 몰두할지 몰랐지요. 공방을 운영하던 큰형님 댁에 갔다가 처음 나전칠기를 접하게 되었는데, 생전 보지 못했던 오색영롱한 빛깔이 신기했어요. 그런 매력에 빠졌어요.” 선배들은, 나전칠기에 빠져 새벽까지 작업에 몰두하는 그에게 기술적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해 주었다. 다른 이들보다 늦게 시작한 것이 오히려 나전칠기에 더욱 몰두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그를 북돋운 것이다.

“어려움도 있었죠. 주거문화가 아파트 위주의 생활로 바뀌면서 나전칠기의 영역이 좁아졌고,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기 때문에 판로를 찾는 게 어려웠어요. 그래서 일찍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지요.” 일본에서 그의 작품이 인정받기까지 3년. 십장생 문양을 주로 쓰던 기존방식에서 탈피해 단풍 문양과 꽃송이 등을 넣었다. 화면 가득 자개를 채우던 디자인에서 자개로 포인트만 주는 현대적 감각의 세련된 디자인도 선보였다. 하지만 디자인이 심플해진만큼 나전칠기의 기술에서는 오히려 고난이도 기법을 선보였다.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나전이 칠 바닥과 높이가 똑같거나, 칠보다 낮게(나전이 음각으로 들어가게 표현) 표현하는 상감기법은 나전칠기 중 고난이도의 기술에 속한다.

“그렇게 일본에서 ‘자개테이블하면 박인식’이라고 장인으로 인정받게 되었지요. 일본에서 제가 작업하는 걸 사진 찍어 가게에 걸어 놓기도 해요.” 일본에서 유명해지자 역으로 한국의 거래처에서 먼저 그를 찾았다. 그가 주로 만드는 양면 가리개와 테이블, 벽걸이 등의 대작들이 국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은 것. 새로운 시도도 이어졌다. 그가 다리가 세 개인 삼각형 모양의 테이블을 가리키더니 “테이블 다리가 네 개란 법이 어디 있느냐?”며 웃어 보인다.
“그래도 가장 행복했을 때는 2010년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나전칠기 부문 금메달을 수상한 때예요. 모든 기법이 다 들어가야 하고, 공예품으로서의 아름다움도 있어야 했으니까요.” 5번 도전만에 따낸 금메달은 값진 땀의 결과물이었다. 기능대회에 나가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고 연구하면서 기능적으로도 실력이  늘었던 보람된 시간이기도 했다.

“이 일을 하며 보람될 때는, 고객이 만족할 때죠. 작품을 사가면서도 오히려 저에게 고맙다고 말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아무리 명품이라도 상품으로 인정 못 받거나 소비자와 공유할 수 없다면 소용없는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소비자와 소통·공유하며 나전칠기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그. 30년의 지난 세월을 후회한 적이 없느냐는 질문에 “후회하면 앞으로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며 “후회는 없다.”고 말한다. “‘나전칠기하면 박인식’이 떠오를 수 있도록 까지 더 열심히 해야지요.”
나전칠기 작품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설명하며 매만지는 손길에, 그의 미래가 담긴다.  태성옻칠공방 | 010-3766-3879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