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는 없다
글. 노태형 편집인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격언이 있다.
혹은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있다.’고도 한다. 여하튼 공짜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을 일컬어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하는데…. 이 말들에는 ‘공짜만큼 비싼 것도 없다.’는 일깨움이 가득하다. 그러기에 무언가 공짜로 준다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을 뺏어가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우스갯소리로 ‘경찰과 기자와 성직자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면 누가 비용을 지불하겠냐?’고 묻고는, 그 답으로 식당 주인이라거나, 마지막까지 버티는 이는성직자라는 유머가 떠돌기도 했다. 다른 말로 하면 성직자는 그만큼 공짜에 많이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으레 무상으로 받는 걸 당연시하고, 그 당연함은 가끔 덫이 되어 사회적 지탄에 휩싸인다.

복은 결코 요행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우연히 굴러들어온 복일지라도 알고 보면 그 원인이 있고, 지혜의 불을 밝혀 살펴보면 시·공간을 넘어선 그 어느 때 내가 지어놓은 정성과 노력의 산물임을 우리는 배워 알고 있다. 인과적 입장에서 보더라도 받는 것에 대해서는 필히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물질적이든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기에 오늘의 공짜는 후일 몇 곱절의 이자가 붙어 필히 갚아야 할 빚일 뿐이다.
우리 교단에는 ‘희사’라는 빚이 늘 따라 다닌다. 빈 마음으로 희사하는 이야 복을 장만하는 원천이 되겠지만, 희사 받는 이는 또 다른 빚을 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걸 내가 가진 정신·육신·물질을 이용해 잘 나누고 보은하면 복의 장터가 되겠지만, 받기만 하다보면 자칫 화의 용광로에 떨어지기도 쉽다. 이유 없이 주는 것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짜는 정말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 일이다.
‘도를 닦는 사람은 음식을 먹을 때에 독약을 먹는 것 같이 하고, 시주를 받을 때에는 화살을 받는 것과 같이 하라.’(선가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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