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로힝야 난민촌①
난민촌으로 가기 위해 심사를 받는 곳에는 잠을 이기지 못한
어린아이와 혹시나 부모가 떠나갈까 봐 손을 놓지 않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글. 강명권

작년(2017년 10월 초)에 인터넷으로 로힝야 사람들의 학살과 인권 유린 소식을 접했다. 뿐만 아니라 난민들이 총상당한 사진을 비롯해, 국경을 탈출하다가 배가 전복된 사진들도 보게 되었다. 특히 그 사망 사진에는 어린아이들의 시신들이 많았다. 그 사진을 보고나니 로힝야 난민의 현황들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함께 나누고 싶었고 작은 위로라도 전하고자 난민촌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른 아침부터 방글라데시 국경을 넘어오는 난민들 중에는 어린 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다양했다. 그들은 방글라데시에 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면서도 살림살이와 남은 식량들을 메고 국경을 넘어 오고 있었다. 난민촌으로 가기 위해 심사를 받는 곳에는 잠을 이기지 못한 어린아이와 혹시나 부모가 떠나갈까 봐 손을 놓지 않고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찾아간 난민촌에는 생존하기 위해 주어진 공간에서 한정된 천막으로 삶을 이어 가고 있는 그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처한 현실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로힝야 난민을 위한 모금을 하였다. 많은 교무님과 교도님 그리고 교구 봉공회에서 도와주신 덕분에 약 2,200만 원이 모아졌다. 그러나 막상 지원 사업을 하려고 하니, 그동안 교단적으로 난민에 대한 관심도 부족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단체나 인재가 없었다. 그래서 그전부터 알고 있던 사단법인 아디(ADI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와 함께 사업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아디(ADI)는 아시아 인권 회복을 위해 노력하는 법인으로, 우리와 사업을 하기 이전부터 미얀마와 방글라데시에서 난민 현황과 난민 인권 보호를 위해 난민촌에 여러 차례 방문하여 현지 인력 지원과 현황, 방안들을 고민하고 있었다.

사실 로힝야 난민은 일반적인 난민 상황과 다르게 종교적, 경제적, 국제적인 여러가지 관계들로 얽혀서 국제구호단체들과 종교적으로 참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 관계로 우리 교단은 물론 이웃 종교들도 참여를 하지 못해왔고, 그러다 보니 처한 현실이 갈수록 힘들어졌던 것이다. 90만 명의 난민들이 국경을 넘어 올 때까지도 유엔에서는 중재 역할을 크게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디(ADI)와 함께 진행하는 이번 사업은 심리치료지원 프로그램으로, 일반인들과 아이들을 위한 음악프로그램이다. 지난 4월부터 아디는 현장에서 준비를 하고 있었고, 우리들은 이 사업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를 모니터링 하고자 지난 6월 2일부터 8일까지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 있는 하킴바라 캠프와 꾸뚜팔롱 캠프를 방문하였다. 

현장 모니터링 지원단을 꾸릴 때 심리상담사를 비롯해 앞으로의 인재 양성을 위해 원불교 교학과와 대학원대학교 예비교무, 그리고 일반대학생들과 청년들 중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최우선적으로 선발하고자 했다. 하지만 예비교무들은 방학 기간이 아닌 관계로 동행하지 못하였고, 일반 대학생과 대학원생 2인과 심리상담사 1인 그리고 세계봉공재단 실무자, 은혜심기운동본부 실무자들과 함께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후원 | 우리은행 1005-202-256361 재단법인 원불교   문의 | 원봉공회 02)823-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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