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되어진’ 길
어떤 알 수 없는 큰 원(願)이 내 성질대로 저질러버리지 못하도록
미리 여러 보호막을 설치해 놓은 건 아닌가 싶다.
글. 강다정

고백하건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제가 왜 출가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출가가 ‘되어진’ 것 같습니다. 그저 모든 인연들이 제가 출가를 하지 않을 수 없도록 끈끈하게 엮여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기억이 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교무님’이 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 갖게 된 수많은 선택 사항들은 ‘여성교무로서 혼자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저와 원불교의 인연은 생후 6개월부터였습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저를 낳은 어머니는 사실 원불교라는 종교와 전혀 인연이 없으셨습니다. 결혼을 하고 저를 낳은 후 공무원인 아버지의 발령지를 따라 간 곳의 관사 바로 앞에 원불교가 있었고, 그곳은 낯선 이의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한 곳이었습니다. 원불교와의 인연은 그렇게 어린 아기엄마의 외로움(혹은 심심함)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원불교학과 1학년 때에는 (도반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럴듯한 출가동기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적어 냈던 저의 출가이유는,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대중에게 내보일만한’ 그럴듯한 출가동기를 소개하기 어렵습니다. 스스로 출가하기로 한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고, 그렇게 출가서원을 세우고 수학 기간을 거친 직후가 바로 지금입니다. 학교 다니며 배우기만 할 땐 마냥 즐겁고 재미있었는데, 현장에 나오고 학교에서보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야 할 건수가 많아지다 보니, 다른 도반들이 겪었던 ‘도가의 사춘기’를 저는 조금 늦게 맞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의 화두는 다시 ‘나는 왜 출가를 하였는가.’ 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경계를 당하여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곳에 있는 스스로를 돌아보면, 어떤 알 수 없는 큰 원(願)이 내 성질대로 저질러버리지 못하도록 미리 여러 보호막을 설치해 놓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저는 지금도 끊임없이 답을 구하며 방황중입니다. 이런 고민을 하면서도 여전히 이 길을 가고 있다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가끔 싫을 때도 있지만, 조금은 대견하기도 합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생각해보면 이 법 속에 살고 있는 것이 감사하고, 공부할 때는 재미있고, 스스로 반조하며 조금씩 성장해 가는 것을 보며 자존감을 얻습니다. 물론 반대로 반조하지 못하고 공부하지 않을 때는 좌절감과 우울 속에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전무출신을 서원하고 출가함으로써 맺어진 소중한 인연들과 제게 주어진 그 모든 것들이 방황 속의 저를 묶어주는 작은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는 왜 출가하였는가.’ 하는 화두는 평생 들고 다녀야 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화두는 전무출신의 삶을 살아가며 삶의 본질을 잊지 않게 해주는, 잃지 않게 도와주는 소중한 끈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봅니다.
제 스스로도 저의 출가 동기를 잘은 모르겠지만 어찌 되었건 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부모님과 스승님들께, 그리고 수없이 많은 여러 도반에게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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