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항 논골담길
골목길에서 추억을 담다
취재. 노태형 편집인

평탄한 삶도 가끔은 비탈진 골목길처럼 꼬일 때가 있습니다.
“가슴이 답답할 때면 바다로 가라.”는 대산 종사의 말씀을 이정표 삼아 동해 묵호항으로 가는 길에 날아온 비보. 가까운 벗의 죽음이 한순간 해일처럼 몰아쳐 사람을 멍하게 한다는 걸 처음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죠. 삶의 전체가 동강 난 듯 흐트러져버린 막막함….
그러기에 바닷가 언덕, 꼬불꼬불 잔뜩 꼬인 골목길은 더욱 쓸쓸한 것일까요. 사람 흔적이 드문 언덕길에서 문득 메아리가 울립니다. “아니, 몸도 불편하신 분이 왜 그리 빨리 내려가요. 다쳐요. 조심 좀 하세요.” 여든 살쯤의 할아버지를 걱정하며 혀를 끌끌 차는 동년배 할머니들의 음성에는 걱정이 가득하고요. “걱정 마소. 아직 건강해. 허허.” 이웃 간의 온정은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묵호항 인근 논골담길을 오르면서 습관처럼 카메라 셔터를 누릅니다. 죽음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영혼 없는 셔터 소리가 철컥철컥, 마치 울음처럼 골목길에 울려 퍼지네요. 아마 2,30년 전 이곳 사람들의 심정도 막막했겠죠. 언덕길에 오밀조밀 코딱지 같은 집을 지어놓고선, 멀리서 뱃고동이 울리는 새벽이면 황급히 일어나 항구로 향했을 겁니다. 지게며 빨간 고무 대야에 생선을 가득 담고서 이 가파른 골목길을 올랐다죠.
그렇게 생선 담은 바구니에서 바닷물이 철철 흘러넘쳐 언덕길이 늘 질퍽했다 하여 ‘논골’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신랑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 못 살고, 신부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 못 산다.’는 말이 더욱 애달프게 다가옵니다.

말은 그래도 신랑과 신부가 있었고, 그 좁은 골목길과 마당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이 있었기에 여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 젊은 청춘을 이곳에 묻을 수 있었겠죠.
어느 날, 도시화 바람이 불면서 젊은 사람들은 하나둘 이곳을 떠났습니다. 메마른 언덕에는 쇠잔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요. 어머니 아버지들이 늙듯, 이 언덕의 집들이며 골목도 늙기 시작한 거죠. 간혹 빨랫줄에 걸려 꼬들꼬들 익어가는 비린 생선 몇이 겨우 옛 시절을 기억해 낼 뿐입니다.
한 10여 년 전이었던가요?

이곳에 다시 사람들이 찾아들기 시작했습니다. 현대화의 바람에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풍경들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겠지만, 도시의 팍팍함에 가슴 쓰린 사람들이 옛 고향 같은 이곳을 찾기 시작한 거죠. 물론 마을 골목골목 담벼락에는 향수를 자아내는 옛 모습의 벽화들이 이들을 반기고요.
그래서 다시 이곳은, 아이들이 바람을 벗 삼아 뛰어놀던 동산은 바람의 언덕이 되고, 밤바다를 밝히던 등대는 지친 삶에 쉼을 주는 이정표가 되었으며, 고단한 삶이 가득 떠돌던 골목길은 정과 추억의 거리로 되살아났습니다. 

혼자 사는 삶이 어디 있던가요? 고향이 싫어 객지를 떠돌고 떠돌아도 결국 내가 쉴 곳은 고향으로의 회귀란 걸 사람들은 모진 세월을 지내야 압니다. 그래서 또 고향은 그 사람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늙어가는 것이겠죠. 부모님처럼요.
이제 고향의 풍경을 간직한 옛 고장은 삶에 지친 영혼들에게 의자를 내어줍니다. 쉬어가라고, 다시 힘내라고. 또 그 풍경은 다리가 되어줍니다. 슬픔과 불행을 넘어 행복으로 가는 다리,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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