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번 짧은 만남, 택배
이웃의 정을 가득 싣고
취재. 이현경 기자 

좁은 골목에 1톤 탑차 들어서는 소리가 꽤 컸는지 미리 나와 있는 두 할머니를 언뜻 지나친 듯싶었다. 이때 운전을 하던 김형진 택배기사가 두 할머니를 놓치지 않고 인사한다.
“잘 있었어요?” 오래 못 본 사이도 아니건만 살갑다. “고맙네. 아는 체 하고.” 김 씨가 차를 세우고 내려, 되려 묻는다. “뭐요? 고맙다고요?”

할머니 앞에선 괜히 말이 더 커진다. 혹여 잘 알아듣지 못하실까, 차 소리에 목소리가 묻힐까 싶어 더 크고 또박또박하게 묻고 또 묻는다. 그러고선 더 좁은 골목으로 걸어가자니, 집 앞마당에 놓인 여러 택배 상자들이 눈에 띈다. 할머니의 힘으로 꽉꽉 눌러 포장하기란 무리였는지, 김장김치며 곡식들이 그대로 모습을 보인다. 김 씨가 케이블타이며, 테이프를 들고, 점퍼에 매직과 펜을 꽂고 다니는 이유다. “이건 왜 이렇게 무겁지?”라고 나지막이 말하며 비닐들을 꽉 묶고, 상자마다 테이프를 잘 붙인 후 일일이 운송장을 확인한다.

김장김치의 경우 최대무게가 29kg을 넘지 않아야 하기에 김 씨는 스스로 저울이라도 된 듯 들어보며 무게를 가늠한다. “전화번호랑 다 여기 있는가 확인해 보셔요~.” 마무리 작업을 하는가 싶은데, 그 와중에 또 어디선가 이웃들이 나타난다. 한바탕 구경이라도 난 듯 햇볕 잘 드는 곳에서 두 할머니가 그를 바라본다. “착실한 게 잘해라우. 참 착해.” 그를 두고 나누는 얘기다.

그의 집배송 구역은 영광군 백수읍. 물건을 배송하면서도 가는 길목마다 동시에 물건을 수거하는 집화도 이뤄진다. 시골에서 타지로 보내는 택배의 대다수는 김장김치와 쌀을 비롯한 농산물들. 대부분 자녀, 친척, 사돈에게까지 보내는 시골의 정이 듬뿍 담긴 건넴들이다. 11년 경력의 김 씨가 이 지역에서 일한 지도 벌써 8년여. 고향이 백수읍인 그에겐 이곳이 제일 마음 편한 곳이다. “8년 내내 거래한 분들만도 40여 명이 넘는걸요.”라는 그의 말에서처럼, 이웃들의 집안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자녀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몇 명 낳았는지까지 다 아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잘 갖다 주쇼잉~.”이라며 건네는 할머니의 인사에 그는 “일편단심 해야 된다고잉~.”이라고 답하며 다음 만남을 기약한다. 그러나 말은 시원시원해도 그의 일이란 ‘으차!’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만큼 만만치 않다. 어느새 물건을 배송하면서 비었던 공간들은 집화한 물건들로 채워진다. 한 상자, 한 상자 옮길 때마다 얼마나 많은 기합이 들어갔는지 누가 알 수 있을까. 물건들이 가지런하게 정돈되고, 어느새 달리는 차의 무게가 제법 묵직하게 느껴진다. 아마 자녀에게 보내는 부모의 사랑이 짐의 무게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오전 7시 반부터 시작된 일이 7시간을 넘길 즈음. 김 씨가 차 안에 있는 음료 하나를 마신다. 이웃들이 오며가며 그에게 쥐여 준 것들이다. 오전에 영산선학대학교 학생복지관에 들렀을 때 “밥이라도 먹고 가라, 차라도 마시고 가라.”던 유현성 덕무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그런 그를 ‘어머니 같은 분’이라 칭하는 김 씨. 하기야 아직 미혼인 그의 혼사까지 신경 써주고 있으니, 이미 가족과 다름없는 셈이다. 이렇듯 휴식은 그가 운전하는 시간 속에서 이뤄진다. 도시엔 차도 많고 신호등도 많다지만, 이곳은 이웃의 정이 많아 워낙 밝은 성격의 그에겐 다양하게 이뤄지는 만남이 더없이 즐겁다.

그가 오늘 들른 곳만 해도, 가정집, 우체국, 유치원, 양계장 등 다양하다. 혹여 택배를 기다리는 고객들의 급한 전화도 있었지만, 틈이 날 때마다 차에 싣고 다니는 <원불교교전>을 읽으며 마음의 여유를 챙긴다. 어느덧 하루의 배송이 마무리되면 그가 제일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그가 다시 영업소로 향한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한 덕분에 지는 해가 아쉽지 않다. 내일도 또 다른 인연과 만남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언젠간 자신의 영업소를 내서 더 많은 만남이 이뤄질 미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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