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짓는 실과 디자인의 역사, 뜨개 공방

실을 풀어
마음 모양을 짓다
취재. 이현경 기자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코끼리상가는 도심 속 재래시장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골목처럼 직선이 아닌 길이 나 있고, 가게들은 오밀조밀 붙어있다. 그중에서도 홍경희 씨의 뜨개 공방은 알록달록 눈에 띈다. 찬 바람 불고 낙엽 지는 스산한 날과 관계없이 환하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를 하기엔 너무나 가까워 보이는 수강생들. 이들은 가볍게 문을 넘어 공방 안으로 들어온다. 그러면서 잠시 어디 갔다 온 것 마냥 말을 잇는다. “선생님, 내가 있잖아요….”로 시작되는 말과 함께 한 할머니 수강생은 자신이 만들고 있는 물건을 내놓는가 하면, 누군가는 자신의 뜨개질을 조용히 이어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주위를 둘러보며 다음 작품을 생각한다. 그러다 “어머, 선생님 이거 너무 예쁘다.” 한 수강생이 리본이 달린 퍼 조끼를 보며 감탄한다.

사실 한 수강생이 그 한 마디를 꺼내기 전에, 이전 수강생이 말을 꺼냈었고, 그 이전에 또 다른 수강생이 했던 말이다. 홍 씨가 “올겨울에는 이런 퍼가 유행이에요.”라고 말하면서, 관심을 보이는 수강생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의 17년 내공에 대화는 해답처럼 술술 풀린다. 그러고 보니 공방에 있는 물건들은 저마다 존재감을 뽐낸다. 마네킹에 두른 사각 숄은 삼각 숄과 다른 독특함을 자랑하고, 뜨개질로 만든 인형에는 이름까지 붙여진 참이다. 여러 벌 나란히 걸린 아기 옷은 작은 포인트로 개성을 더하며  단추 하나에까지 정성을 품고 있으니, 알수록 볼수록 더욱더 예쁘다.

뜨개질에 있어서는 홍 씨도 수강생들과 마찬가지다. 홍 씨가 “게이지 냈다. 신난다!”라고 말하며, 일정한 면적 안에 들어가는 코와 단의 수를 계산하고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자, 한 수강생이 “그렇게 뜨고도 새로운 거 하면 재밌어요?”라고 묻는다. 홍 씨는 “재밌지~.”라며 웃는다.

“선생님은 정말 진정한 뜨개인이에요.”라는 수강생의 말 너머로, 홍 씨가 완성된 게이지에 애정의 눈길을 보낸다. 하기야 중학교 때부터 책 대신 실을 살 정도로 뜨개질을 좋아했으니 그에게 있어서 이 일은 그녀가 직접 만들어 입은 옷처럼 안성맞춤인 셈. 이전에는 성악 전공을 살려 20여 년 동안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다가 마흔다섯 살을 기점으로 이 일을 직업 삼았다. 그의 뜨개 실력에 대한 칭찬으로 시작한 일에, 이제는 많은 디자인, 많은 실의 종류 등 몰랐던 것을 아는 즐거움까지 더해진 것.

한편 수강생들의 물건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모양을 채워간다. 마침내 “완성됐다!”라는 외침과 함께 할머니가 빨간 조끼를 내려놓는다. 그러자 순식간에 주변 분위기가 달라진다. 알 수 없이 좋은 기운이 풍기고, 정말 좋아서 할머니 얼굴에 웃음이 지어진다. “이런 맛에 하는 거죠.” 어느 수강생이 손을 놓고 바라보면, 할머니는 “양띠인 손녀를 생각하며 양 모양을 지어 넣었다.”고 말한다. 홍 씨가 정성스러운 손길을 더한 후 옷을 옷걸이에 건다.
홍 씨도 개인 작업을 이어간다. 그녀는 10개가 넘는 뜨개 작품을 동시에 만든다. 이 중엔 자신의 아들 것도 있다. 이제는 성인이 되었지만, 학생 시절에 교복 안에 입는 조끼를 직접 떠주었던 추억도 떠오른다. 엄마의 정성을 아는 아들이 옷이 뜯기지 않도록 책상 나무 거스러미들 위에 비닐을 감싸놓은 모습을 우연히 보았던 어떤 날의 풍경은 아직도 마음을 찡하게 한다.

공방 한쪽에 놓인 커피 머신은 ‘뜨개 카페’라는 이름처럼 코끝에 좋은 향을 풍기고, 저녁 거리에 하나둘 켜지는 불빛 같은 눈빛의 저녁반 수강생들이 등장한다. 홍 씨의 표정도 밝아진다. 주문한 실을 받아본 수강생이 목소리를 높이며 설레하고, 서로 얼굴을 볼 수 있어 기뻐한다. 이들에게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모두 자긍심 높다.’는 일본수예보급협회 보그 과정을 강의하는 홍 씨. 수강생은 홍 씨와 눈을 마주치고, 그의 손을 따라 실을 풀어낸다. 각자의 손에 무언가를 쥐고 배움에 대한 순수한 열정을 밝히는 풍경이 마치 잘 떠진 스웨터처럼 포근하다.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