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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노을, 거친 하루가 지나다 2018년12월호

노을, 거친 하루가 지나다
취재. 노태형 편집인

통통배 한 척 급하게 항구로 돌아갑니다.
하루 종일 검푸른 파도를 건너뛰며 기우뚱기우뚱 신음소리를 쏟다가, 비로소 신이 난 듯 긴 물꼬리를 흔들며 집으로 갑니다. 바다를 떠돌며 건져 올린 물고기 몇 마리 파닥파닥 심장에 부딪힙니다.
“엄마, 오늘도 바다로 나가야 돼요?”
걱정 가득한 아이의 눈빛이 노을이 되어 마음으로 번집니다.
‘고기를 잡아야 돈을 벌지. 그래야 너희들 먹여 살리고….’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은 가슴에 멍으로 남죠. 다행히 오늘도 거친 하루가 잘 지나갔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게 제일 좋은 거라고 하죠. 이제 다시, 노을을 돛대 삼아 오손도손 가족을 만나러 가는 겁니다. 그래서 저녁은 매일매일 설렙니다.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

산비탈에서 호미질을 하던 할머니의 손길이 멈춥니다.
“서쪽 하늘 참 아름답다.”
“할머니, 하늘이 왜 저렇게 활활 타올라요?”
“우리 손자 잠 잘 자라고 하늘이 군불을 때주는 거지.”
“해지면 금방 추워지는데.”
“저렇게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듯해진단다.”
‘서쪽 하늘, 서쪽 하늘’ 하던 할머니의 말씀에는 늘 자식 걱정이 먼저였습니다. ‘이제 나야 훌쩍 떠나면 그만이지만 남은 아이들이 세상을 잘 헤쳐 갈지….’ 아마 그런 어른들의 걱정이 사무쳐 노을로 활활 타오르나 봅니다. 마지막 가는 길마저도 남아 있는 것들의 앞길을 환히 비춰주고 싶은 애틋함 말이죠. ‘이제 걱정 마세요. 그만 편히 쉬세요.’

낮과 밤의 다리를 건너야 할 시간입니다.
하얀 억새가 검게 흔들리고, 대숲에서는 산새들이 퍼드덕 둥지를 트고, 산비탈 긴 이랑에는 고요가 내려앉습니다. 졸졸졸 냇물 소리마저 강물처럼 침묵하듯 숨을 죽이고, 마을에는 신발 끄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지겠죠. 간혹 기침 소리…. 
미련 금지.
이제 오늘 것들은 오늘에 묻어버리고, 거칠었던 숨소리도 툴툴 털어버리고, 하루를 혼란에 빠트린 모든 번뇌들 노을에 태워버리게요. 버릴 걸 버릴 줄 아는 지혜라야 삶의 무게가 가벼워진다네요. 그러기에 모든 걸 태워버리고 침묵으로 잠기는 노을이 아름다운가 봅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라.’

또 한 해가 저물어옵니다.
무거운 짐 지고 건너오시느라 참 수고 많으셨습니다. 누군들 무거운 짐 지지 않은 생명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하물며 갓난아기도 삶의 무게를 못 이겨 울며 보채는 걸요. 이제 서쪽 하늘 노을을 바라보며 그 짐 잠시 내려놓고 쉬시게요.
‘행복도 불행도 모두 내 삶의 짐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