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거리에서
꿈속에서라도 밥을 먹고 싶어서 쌀 포대를 베고 누웠는지
모를 그를 보며 생각해본다.

글. 강명권

비가 오는 수요일, 오늘은 노숙인 급식이 있는 날이다.
급식 물품을 구입하고 주차를 하고 내려오니 길에서 두 노숙인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토론이 아닌 정치 토론이다. 나도 잘 모르는 내용들이었다. 서울역에서 열리는 태극기 집회에서 들은 내용인가? 그런데 태극기 집회에서 나올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였다. 조금 더 길을 내려오자 노숙자가 길바닥에서 얇은 박스를 베개 삼아 잠을 자고 있다. 상태가 어떤지 손을 만져보고 흔들어보니 의식은 있다. 부랴부랴 긴급응급구호 센터에 연락을 했다. 전화를 하고 나서 우산으로 일단 그 사람의 머리 쪽을 받쳐주었다. 그 노숙자가 베고 있는 박스는 20kg 쌀 포대였다. 꿈속에서라도 밥을 먹고 싶어서 쌀 포대를 베고 누웠는지 모를 그를 보며 생각해본다. 식사도 못하고 술에 몸을 맡기고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잠을 청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그러고 보니 주변 가게 밑에 두 세 사람이 더 누워 있다. 15분쯤 지나 응급구호
팀이 휠체어를 가지고 왔다. 상태를 확인하고 깨우며 구호방으로 가자고 하니 “나는
여기 있을 것이니까 그냥 가라.”고 한다. 구호팀의 말에도 막무가내다. 구호팀은 결국
 “인권 문제가 있어서 본인이 가지 않는다고 하면 데리고 갈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아저씨, 거기 가서 뭘 하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곳이 여기보다 더 따스하니까 그곳에 가서 주무세요.” 했다. 노숙인은 “그럴까?” 하고 대답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근처 가게 주인이 “저기 저분들도 데리고 가면 좋겠다.”고 부탁한다. 
사실 노숙인들은 비가 올 때는 서울역 실내에 들어갈 수가 없다. 그러니 비가 들이 치지 않는 곳에서 비를 피하거나, 아예 비를 맞으며 거리에 있는 것이다. 노숙인들의 삶의 마감은 거리, 쪽방, 고시원 등에서 한 달이나 지나 발견되지만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산 종사님께 한 신문기자가 “평생의 좌우명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대산 종사님은 “나는 남을 나로 알고 산다.”라고 하셨다. 남을 나로 알고 산다는 것은 남의 세정을 내 세정으로 알고 산다는 것인데, 과연 나는 얼마나 그 세정을 알고 살아가고 있을까? 물론 세상의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들에게 관심을 좀 더 가져준다면 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변하는 계기는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런 마음으로 현장에서 그들에게 조금씩 다가서서 챙겨보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 일은 의지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실행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실행의 힘은 재정적, 인적, 공간적 해결에 따라 가능하다. 이소성대의 정신으로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 가려곤 하지만 미안하게도, 그들에게 ‘노력조차 하지 않는’ 내가 되어 가고 있다.
비가 많이 온다고 한다. 노숙인들이 거리에서 비를 맞으며 잠들지 않기를 바라본다.  후원 | 우리은행 1005-202-256361 재단법인 원불교   문의 | 원봉공회 02)823-4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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