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불교학의 개벽을 위한 전제 (2)
- 변산시대 교리형성과 그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

글. 박윤철

잘 알려져 있듯이, 영산시대 소태산은 전남 영광 길룡리의 ‘좁은’ 공간을 중심으로, 그리고 사상적 기반 또한 동학과 증산교 등 근대한국에서 자생한 개벽종교로부터 ‘개벽’ 사상을 수용한 가운데 새 종교공동체 운동을 시작하여 일정한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소태산을 둘러싼 시대상황과 주변 환경은 영산 중심의, 또한 ‘개벽’ 사상 중심의 종교운동에 일대 전환을 요구하고 있었다. 바로 그런 시대적 요구를 담은 역사적 대사건이 바로 1919년의 3.1독립운동이다. 따라서, 1919년 늦은 가을, 곧 원기 4년 10월(음력)에 단행된 소태산의 부안 봉래산 입산은 원불교 교리 형성사에서, 다시 말해 ‘개벽종교’ 원불교의 교학 수립과정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결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소태산이 영산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친 바는 대체로 동학과 증산교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내용이 중심되었다.(<성계명시독>, <법의대전> 외 각종 한글가사 참조) 이 같은 가르침은 제자들의 신심과 단결심을 고취하여 원불교 초기 종교공동체 형성에 크게 이바지한 바 있었다. 그러나 개벽회상 원불교의 기본 교리로 내세우기 위해서는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많았으니,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개벽종교 교리가 지닌 주술적 요소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문제였다. 영산시대에 활용했던 다양한 ‘방편교서’를 불사르게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소태산은 봉래산 입산 이후에 내소사 주지 송만허 스님, 월명암 주지 백학명 스님 등 근대 한국불교 개혁운동을 선두에서 이끄는 승려들과 교류를 통해 불교의 교리와 제도를 깊이 연구하는 한편, 그 같은 연구 성과에 기반하여 새 회상 원불교의 기본 가르침인 ‘교강’을 1920년 5월에 선포하기에 이른다. 거기에 더해 <수양연구요론>과 <조선불교혁신론> 등 초기교서를 초안하는 작업에도 박차를 가했다.
변산시대 교리형성 과정과 그 역사적 의의를 <불법연구회창건사>(1937~
1938)에 기술된 내용에 주목해 보기로 하자.  

(원기 5년, 1920-주) 4월에 대종사께서 처음으로 본회 교강을 발표하시니, 가로대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와 공부의 요도 삼강령팔조목인 바, 사은은 천지 부모 동포 법률의 피은 보은 배은을 말씀한 것이요, 사요는 남녀권리동일 지우차별 무자녀자자녀교양 공도헌신자이부사지를 말씀한 것이니 이는 곧 인생의 마땅히 행할 도로써 세상을 구원할 요법이 되고, 삼강령은 부처님이 말씀하신 계정혜를 단련하기 위하여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를 말씀한 것이니, 이는 곧 공부인의 마땅히 밟을 도로써 생령을 제도하는 요법이 되며, 팔조목은 신분의성 4조로써 진행력을 삼고 불신탐욕나우로써 사연건을 하나니, 이는 곧 삼강령 공부를 운동하는 요법이 되는 바, 그 강령이 심히 간명하고 교의가 심히 원만하여 일반신자로 하여금 조금도 미혹과 편벽에 끌리지 아니하고 바로 대도에 들게 하는 본회의 원정 교법이시라.
 
여기서 인생의 요도인 ‘사은사요(四恩四要)’의 가르침은 ‘개벽종교’ 원불교가 추구하는  새 시대 신앙의 핵심 강령이다. 이것은 과거종교들의 미신 신앙을 사실 신앙으로, 부분 신앙을 전체 신앙으로, 한 편에 치우친 편벽된 신앙을 원만한 신앙으로, 등상불 신앙을 불성 일원상(후일, 법신불 일원상으로 고침 -주) 신앙으로 혁신한 것으로써 종래의 낡은 신앙 혁신의 의미를 떠나 과거종교, 특히 재래불교를 일대 혁신하는 불교개혁론을 강하게 지향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할 점은 소태산의 불교개혁론이 단순히 “불교혁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교혁신을 통한 종교 전반의 혁신까지 지향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융산 송천은 종사의 견해 참조) 요컨대, 사은사요를 포함한 교강 선포는 바로 과거의 불합리한 신앙을 전면적으로 혁신하여 진리적이고 사실적이며 합리적인 신앙, 나아가 과학시대에 적합한 신앙을 하도록 혁신한 것이다.

예를 들면, 소태산이 봉래산에 계실 때 절에 불공을 하러 오던 노 부부에게 “죽은 부처에게 불공하지 말고 산 부처에게 불공하라.”고 한 가르침은 바로 새 시대의 진리적 신앙, 사실적 신앙, 합리적 신앙의 길을 제시해 주신 구체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정산종사법어> 경의편 4장에는 신앙의 세 차원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이 있다. 제일 낮은 단계가 형상(形相)을 믿는 신앙이요, 그 다음 단계가 명상(名相)에 대한 신앙이며,  가장 수준 높은 단계가 바로 진리 당체에 대한 신앙이라는 것이다. 원불교의 신앙, 아니 미래종교의 신앙은 어디를 지향하겠는가? 그것은 바로 진리 그 자체에 대한 열린 신앙, 곧 최근의 학계에서 강조하고 있는 ‘활동하는 무’, ‘없이 계신 하느님’ 신앙으로 나아갈 것이다. 

다음으로, 공부의 요도인 ‘삼강령팔조목(三綱領八條目)’의 가르침은 후천개벽이 되는 새 시대에 가장 적합한 원만하고 사실적이며 합리적인 수행법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소태산이 누누이 지적하고 있듯이, 과거 불교의 수행은 주로 출가한 승려들을 대상으로 계정혜 삼학 가운데 어느 한 방면으로만 집중하는 치우친 수행을 하도록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예를 들면, 한국불교에게서는 전통적으로 선승에게는 화두를 든 간화선 수행만을, 학승에게는 <화엄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 공부만을, 그리고 율승에게는 계율 실천만을 강조해 왔다. 소태산은 바로 그 같은 과거 불교(과거 종교)의 편벽된 수행을 원만한 수행으로, 그리고 출세간 즉 출가자 중심의 수행을 재가(在家) 신자와 출가 (出家) 승려 누구나 직업을 가진 가운데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수행법을 제시하였다. 즉 대종사께서는 신앙 혁신만이 아니라 전통적인 수행 방법 역시 전면적으로 혁신한 것이다.

공부의 요도와 관련하여 역시 <정산종사법어> 경의편 13장의 ‘과거(불교)의 삼학과 원불교의 삼학’ 법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종래의 삼학은 출가자(출세간), 정시(靜時) 중심, 삼학 중 한 과목에 집중하는 수행이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소태산이 선포한 공부의 요도는 재가자(세간), 동시(動時), 삼학병진의 수행법으로 일대 혁신을 단행하였으니, 그 혁신적 수행법은 바로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라는 원불교의 삼학 수행법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한 마디로 원불교의 공부의 요도, 원불교에서 추구하는 삼학은 ‘대승의 공부법이요, 대승의 수행법’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상으로, 변산시대 교리 형성 과정의 특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영산시대의 후천개벽사상이 변산시대로 넘어오면서 불교의 깨달음과 전면적으로 교섭, 융합함으로써 ‘개벽불교로서의 원불교’가 자연스럽게 탄생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변산시대의 소태산과 그 수제자 정산 등은 동학 등에서 유래한 개벽사상 위에 우주적 보편성을 지향하는 불교를 창조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새 회상 원불교로 하여금 마침내 ‘문명의 대전환’을 주도할 잠재력을 확보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끝으로 우리 시대 석학의 한 말씀을 인용하는 것으로써 변산시대 교리형성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자 한다.
  
벌써 1세기 반이나 넘는 이 땅의 자생적 후천개벽운동의 연장선에서 ‘불법을 주체로’ 출발한 원불교가 인류가 찾는 맥을 바로 짚어 앞서 나간 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백낙청, <문명의 대전환과 후천개벽>, 모시는 사람들, 2016, 지은이 후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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