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한 줄
글. 곽지운

학생 신분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된 요즈음,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때부터 항상 어디에 소속된 상태에 익숙하다가 대학 졸업을 마치니 처음으로 붕 뜬 느낌이다. 이제 다음 행선지는 어딜 지 막연한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또 다른 소속을 찾아 현재 위치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기. 이 시기는 비단 나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이 겪어본 예민할 상태일 것이다.

가끔은 스스로가 지나치게 예민하게 느껴질 정도로 날카로울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괜히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 감정이 고스란히 표출된다. 다들 괜한 불똥을 맞는 것이다. 그러다 이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 무엇이 좋을지 생각해봤다.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주변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스스로를 위해 하루에 몇 줄이라도 그 날을 기록하며 소소한 일상 속 감사를 담기로 했다.

일기 내용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소소하다. 가령, ‘어제는 매우 나쁨이었던 미세먼지 농도가 오늘은 보통으로 바뀌어서 좋다. 어제는 비가 세차게 내렸는데 그래서 그런지 더 화창한 오늘 날씨가 좋다. 점점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어 가는 계절에 느낄 수 있는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좋다. 환승 시간 지하철을 놓치지 않아 감사하다. 내 일상 속 나와 함께하며 내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음에 감사하다.’ 등이다.

이런 식으로 아침에 잠에서 깬 순간부터 하루 일과를 돌아보면 일상을 보내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하루 동안 내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순간이 얼마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순간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감사한 일, 기분 좋았던 아주 사소한 일까지 리스트에 적어 내려가다 보면 그것은 ‘내가 좋은 하루를 보냈다.’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이어진다.

불안정한 시기에 조급해지기 쉬운 요즘,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성과가 아닌 스스로의 소신대로 성취해가는 것’임을 마음속에 새기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렇게 중심을 잡고 감사일기를 차곡차곡 쓰다보니 비로소 스스로가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함에 사로잡혀 정신적으로 힘들 때, 하루하루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 집중하면서 이를 기록하는 것은 현재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된다. 앞으로도 스스로를 위해 꾸준히 나의 나날들을 기록해 나갈 생각이다.
오늘은 어떤 감사한 일이 생길까?
 

올해는 작년보다 더
글. 조현서

저는 원광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원불교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종교와는 그다지 관련이 없는 사람입니다. 17년간 살아오면서 종교와는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 이유는 가족이나 친척들이 무교이거나 종교 활동을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에 대한 의문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제가 원불교를 접하고 나서는 달라졌습니다. 우선 원불교는 소태산 대종사님께서 한국에서 직접 창시한 종교여서 믿음이 갔습니다. 게다가 대각전과 법당에 있는 대종사님의 사진은 제 믿음을 한층 굳게 했습니다. 이 믿음 덕분에, 저는 첫 번째 법회에 나갈 마음을 내게 되었습니다.

명상의 시간과, 대종사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은 학업, 대인관계 등에 지친 제 몸과 마음을 잠시나마 치유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게다가 법회가 끝나고는 간식까지 공양해주셨기 때문에, 저는 작년 한 해 동안 물심양면으로 유익한 법회시간을 하루도 빼먹지 않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법회에 참여함으로써 얻게 된 가장 큰 것은 제 일상생활의 변화입니다. 먼저 ‘일상수행의 요법’을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일상수행의 요법의 다섯 번째 항목이고, 우리 학교 수학과동 건물 측면에도 크게 써져있는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를 가장 마음에 깊이 새기며 실천하게 되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원망하는 마음, 화나는 마음이 생길 때마다 이 항목을 되뇌며 고요한 마음에 생긴 파동을 잠재웠습니다.

그 다음으로 얻은 소득은 원광고등학교 인성교육의 대표인 귀공자입니다. 매일아침 귀공자 시간에 유무념 조목을 체크하면서 어제 내가 잘 한 일을 생각하고, 또 약간 부족했던 점을 성찰하여 ‘오늘도 잘 하되, 이러한 부분을 보완하자.’라고 유념하게 되었다는 건 꽤 큰 소득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얻은 것은,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받은 원창학원의 다양한 학교의 아이들과 유대관계를 쌓게 된 것입니다. 저는 작년 11월 초에 있었던 ‘3개고 보은회 정기훈련’에 참여해서 원광정보예술고등학교, 원광여자고등학교의 연꽃송이들과 함께 친목을 다지고, 1년간 자신의 종교 활동에 대해서 돌아보며 부족한 점을 보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 거기에서 지금 제가 차고 있는 염주도 직접 만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 뜻 깊은 경험이었죠. 올해에도 꼭 가고 싶습니다.

제 바람이 있다면 올해는 작년보다 더 성실히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받는 학생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항상 유념하는 자세로 마음공부 해나가겠습니다.


잘하고 있어요
글. 이은영

“출근해야지! 6시 45분이야.”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아, 더 자고 싶다.’고 생각하며 시작되는 하루. 늘 똑같은 일상, 새로움이 없는 하루하루에 지쳐 모든 것에 의욕이 없고 무디게 살아가고 있는 나날들. 그러다 문득 ‘난 고등학생 때 뭐가 하고 싶었지? 대학생 때는? 난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싶었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선택한 이 일이 나에게 맞는 건가, 난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고민을 하며 출근길에 나선다.

경리직으로 일을 하다가 세무사 사무실로 직장을 옮겼다. 이쪽 일을 배우고 싶었다. 처음에는 배워보고 싶은 일을 하게 되어서 그런지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언 2년 차가 되어가면서 재미있던 일은 부담감으로, 어느새 걱정을 안겨주는 인형이 되어 있었다.
일하면서도 ‘난 잘하고 있는 건가, 거래처의 문의 사항에 제대로 된 답을 해주고 있는 건가, 잘못 알고 말한 것은 아닐까, 내가 알고 있는 게 뭐지, 난 정말 일을 못 하는구나, 이 일이 나에게 맞는 걸까.’ 등등의 생각이 계속 들었다. 때론 잘하는 게 하나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경력은 쌓여 가는데 나에게 남는 게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똑같은 고민은 반복된다. ‘몇 년 후의 시간이 지나도 나는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그냥 지금과 같은 이 상태로 머물러 있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 그 연차가 되어서 이런 것도 못하냐는 욕을 들을까 봐 드는 불안감….

그러던 어느 날, 회사 과장님과 갖게 된 술자리에서 평소 고민을 털어놓게 되었다. 그리고 과장님이 해주신 한마디. “은영아, 너 잘하고 있어. 너 잘하고 있는 거야.”
어쩌면 그저 내 고민에 형식적으로 해준 말일 수도 있는 그 말은 내 마음을 파고들어 울컥하게 만들었다. 그게 너무 고마웠다. 과장님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말을 되새겨 보니 내가 나 스스로에게도 해준 적이 없는 말이었다. 언제나 ‘넌 왜 이렇게 일을 못 하냐.’라는 질타만 했을 뿐, 칭찬을 해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난 나 스스로에게 너무 각박하게 굴며 절벽 끝으로 몰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이 험난한 세상에서 나 자신만큼은 스스로에게 너무 각박하게 굴지 말자고. 여유를 갖고 칭찬해주자고.

오늘도 변함없는 하루를 시작한다. 하지만 하루를 시작하는 발걸음은 여느 때와 다르다. 만약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말해주고 싶다.
“걱정하지 말아요, 너무 우울해지지 말아요, 그저 당신이 당신의 모습을 보지 못해서 알 수 없었을 뿐 당신은 잘하고 있어요.”


공부할 기회가 은혜
글. 정하윤

대학 졸업 후 20여 년간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몸 건강 차원에서 시작한 요가가 어느덧 6년이 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잘 모르고 시작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요가는 몸 건강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정신과 육신을 같이 공부하는 수행이었다. 요가를 학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요가는 본래 인도인들의 수행방법이었다는 것을 더 절실히 알게 된다. 몸 공부로 시작해서 정신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야 하는 수행이었음을 알게 된다. 요가를 시작 하고 나서부터 내가 나를 보기에도 많이 바뀌었다. 겉으로 보이는 몸도 많이 바뀌었고, 식성도 바뀌었고, 나아가 내 마음과 생각까지 많이 바뀌었다.   

요가를 통해서 배운 공부로 교당에서 하는 마음공부와 새벽기도를 해보니, 공부의 진척이 훨씬 높아지는 것 같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순경과 역경의 의미도 잘 모른 채 역경이 오면 힘들어 하고, 순경이 오면 그저 즐겁게 지내기만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순경이 역경보다 더 큰 마구니인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역경은 마음을 단단히 잡고 가게 하지만, 순경은 스르르 마음을 풀어지게 해서 공부심이 사라져 버리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전에는 새벽 좌선시간에 사각사각 옷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계속 반응했었다. ‘좌선하러 올 때는 아웃도어 소재처럼 소리 나는 옷은 피하면 좋으련만, 왜 저분은 저 옷을 입고 와서 부스럭댈까?’라는 생각들. 그러나 이제는 ‘아! 좌선은 고요하고 정한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시선 무처선이라고 했는데, 고요할 때만 좌선을 추구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교당에서 천배를 했다. 평소 같이 기도하는 언니가 처음 천배 얘기를 꺼낼 때 “한번 해보죠.”라며 쉽게 대답했던 것이 씨앗이 되어 천배를 하게 됐다. 하지만 막상 천배를 하려니 여러 핑계가 생긴다. 막내 원빈이 공부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부터, ‘힘들면 중간에 그냥 나와야지.’ 라는 생각, ‘천배를 해서 뭘 얻겠다고 하는 것이지?’ 라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올라온다.

“그만 해라!” “그만 할까?” 이전에는 그런 생각에 끌려 마구니에게 굴복하듯이 도중에 그만두었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는 ‘아! 내 마음은 언제든지 시시때때로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고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나를 담금질하는구나.’ 라며 내 마음을 바라보게 된다. 천배를 마치고 나니 너무 편안해진다. 몸에 기운이 가득 찬 느낌이 든다. 피곤할 거라는 생각은 쓸모없는 걱정이었다. 몸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늘따라 새삼스레 ‘은혜’라는 그 단어가 마음에 와서 살포시 자리를 잡는다.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