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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낌없이 건네는 푸짐한 한 끼, 장터국밥집 2018년10월호



아낌없이 건네는 푸짐한 한 끼, 장터국밥집
찬 바람 부는 날 마음을 데우다
취재. 이현경 기자 

경북 청도의 풍각 오일장.
장날(1·6일)의 풍경은 청도역에서 차로 20여 분 달려야 만날 수 있다. 제비 떼가 하늘을 수놓는 아래, 사람들이 저마다 장바구니를 들고 모인다. 흥겨운 목소리, 다양한 볼거리 속 상인들의 움직임이 바쁘다. 이때 시장 안 국밥집에서 “오이소~.”라는 인사가 정겹게 울린다. 강용달·김소쌍분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 앞에는 소머릿고기와 다른 부속 고기들이 한 더미 쌓여있다.

“밥 말아예? 따로 드릴까?” 간단한 물음에 주문은 일사천리. 빈 그릇에 밥이 담기더니, 김 씨가 두툼한 고기를 듬뿍 올린다. 여기에 큰며느리가 뜨거운 육수로 토렴한다. 그 위에 파, 후추, 직접 만든 다진 양념 한 숟갈이면 국밥 한 그릇이 뚝딱 완성. 그 사이 상 위에는 고추, 양파, 집에서 담근 깍두기에 된장까지 반찬이 더해진다. 소박하지만 70년 역사가 오롯이 담긴 것들이다.

“야야, 이거 똑바로 보고 배워라. 나 아니면 못한데이.” 시어머니는 스무 살에 시집온 김 씨에게 단단한 가르침을 전해주었다. 덕분에 김 씨는 어른들에게서 육수를 뜨는 법부터, 고기를 썰어내는 것까지 그대로 배워나갔다. 그 긴 세월이 벌써 45년. 산에 가서 나무를 해와야 불을 땔 수 있었던 시절, 시댁 식구들을 모시랴, 아이들을 키우랴, 고기를 이고 지며 옮기는 것 등 여러 일을 해내며 많은 눈물도 흘렸다. 여기에 남편 강 씨는 십 대 때부터 어머니를 도왔으니, 두 부부의 역사가 한 세기를 넘는 셈이다.

그렇게 맞이하는 오늘의 장날. 특히 점심시간은 많은 손님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손님들의 목소리도 더욱 다양하게 섞인다. “아지메~. 밥그릇 큰 거 없나? 넘치겠다.” 이곳을 처음 찾아온 손님들부터, 이미 속을 든든히 채웠는데도 “따뜻한 국물 좀 더 드릴까요? 밥을 더 드릴까요?”라는 질문을 받는 손님들까지. 마음이 담긴 한 그릇 국밥은 그 양도 푸짐하게 넘쳐서, 더 달라던 손님들은 “그만, 그만, 그만!”을 외치며 오히려 주인을 말리는 손짓을 종종 보인다. 그럼에도 기어코 한 움큼 덤을 건네는 이유는 간단하다. “맛있다카이.” 맛있으니 더 많이 드시라는 말이다. 두툼한 고기에 깔끔한 국물로 인심을 베푸는 일은 이들에게 늘 익숙하다.

“맛있으니까 찾아오죠.”라고 말하는 40년 경력의 단골손님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인심 좋은 아주머니 최고다!”라며 흥을 돋운다. 어느 땐가 한 일본인 손님은 처음 맛본 이 집 국밥에 반해, 근처에서 5일을 투숙하며 이곳을 찾아왔단다. 이처럼 장터국밥집은 누군가 이 지역을 일부러 오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스쳐 지나가면서 찾게 되는 곳이기도 한 것. 그 사연들은 다양해도 애정은 모두 한마음으로 같다는 게 인상 깊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인근 상인들이 국밥을 찾기 시작하면, 부부에게도 잠깐의 휴식이 찾아온다. 개방형 가게에 앉아있으니 사방의 풍경이 저절로 펼쳐진다. “아이고 할매, 시장봤는 겨.” 장을 보고 돌아가는 이들에게 인사를 건네도 본다. 건물은 현대화되었지만, 비포장 길에 천막을 펼치고 걷으며 올곧이 일궈온 이곳에서의 역사는 가게 울타리를 넘어 시장 전체로 퍼진다. 어느새 슬그머니 강아지 한마리가 가게 앞에 와 앉는다. 한두 덩어리의 고기를 얻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부부에겐 장날마다 함께해주는 큰며느리가 있어 더욱 든든하다. 큰 며느리가 가게 일을 도운 지도 벌써 10년. 큰아들도 이곳을 찾아 일손을 거든다고 하니, 김 씨의 마음 한쪽에는 자연스레 3대를 이어가는 꿈이 그려진다는데….

이처럼 더없이 한가로울 때, 조용한 단골손님 한 명이 길가에 펼쳐진 자리에 앉는다. “왔심니까. 후추만 얹어서 드려라.” 김 씨가 큰 며느리의 손길에 방향을 잡아준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강 씨. 새벽 12시부터 먼저 나와 대 여섯 시간 동안 고기를 삶고, 육수를 우려낸 그는 달콤한 피곤함에 젖어 가게에 펼쳐지는 여러 풍경을 지켜보는 중이다. 그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기니 맛이 더욱 깊을 수밖에! 가족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점점 어둑해져 오는 시간에 웃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