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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城, 나를 지키고 나를 가두다 2018년10월호

성城,, 나를 지키고 나를 가두다
취재. 노태형 편집인

645년(고구려 보장왕 4년),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했다.
천혜의 요새라는 요동성과 백암성을 함락시킨 후 10만 대군으로 안시성을 공격했다. 고구려 중앙정부가 보낸 지원군이 당나라 군사와 맞붙었으나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항복하고 만다. 고립무원이 된 안시성은 격렬한 저항으로 성을 지켜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당시 안시성 성주였던 양만춘은 군사들을 독려하며 포거와 충거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무너진 성벽을 수리하며 확고한 자세로 방어에 임했다. 이에 보급의 위험을 느낀 당 태종은 성 바깥에 토산을 쌓아 이를 발판으로 공격하지만, 결국 토산이 무너지면서 안시성 군사에게 토산마저 빼앗기고 만다.
그렇게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지만 안시성을 함락하지 못한 당 태종은 날씨가 추워지고 군량미마저 떨어져 가자 결국 88일간의 포위를 풀고 철수하게 된다. 퇴각하면서 그는 비록 적장이지만 사력을 다해 성을 방어한 양만춘에게 비단 100필을 선물했다고 한다. 이처럼 성은 나를 지키는 방패가 된다.

5세기경, 스리랑카 마우리아 왕조의 두 번째 왕인 카사파는 200미터 높이의 바위 위에 궁전 요새를 만들었다.
평민 출신의 어머니와 다투세나 왕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이복동생이자 왕족 출신의 어머니를 둔 모갈란 왕자에게 왕위를 빼앗기지 않을까 늘 두려움에 떨었다. 결국 그는 부친인 다투세나 왕을 감금한 후 왕위를 찬탈하고 살해에 이른다. 이때, 위협을 느낀 이복동생 모갈란은 인도로 망명하게 된다.
카사파 왕은 다시 두려움에 떨게 되었다. 그의 이복동생이 언제 군사를 이끌고 쳐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동생의 보복을 두려워한 그는 7년에 걸쳐 축구장 두 배 크기의 바위산에 왕궁을 건설했다. 하지만 이도 잠시, 얼마 뒤 그는 동생이 이끌고 온 군대와의 치열한 전투에서 패해 스스로 자살을 하게 된다. 이후 사자산 왕궁은 불교 수도원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욕망과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라는 의미의 수도원. 이처럼 난공불락의 성은 자칫 자신을 가두는 감옥이 되기도 한다.

우리 마음속에도 몇 겹의 성(城)이 있다.
이 마음의 성은 너와 나라는 경계를 만들고, 선과 악이라는 생각의 감옥을 만들어 우리를 단단히 묶어 놓는다. 그러기에 누군가 나를 해하고, 내가 가진 것을 빼앗지 않을까 늘 걱정한다. 가진 것이 없으면 없어서 불안해하고, 가진 것이 많으면 혹 빼앗기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성벽을 더욱 튼튼히 한다. 어디 그뿐인가. 순간순간 모든 사람을 의심하며 초병 같은 경계의 눈초리로 대한다. 그 속에서 유유자적하지만, 그건 여유가 아니라 불안이고 고립이다.
안에 있는 자는 바깥을 보며 비웃고, 바깥에 있는 자는 안에 있는 자를 보며 손가락질한다. 서로 공간이 열려 있지 않기에 자기입장과 자기아집만 고집할 뿐이다. 그러기에 성벽은 자꾸 높아지고 두터워져 바람 한 점 지날 길이 없다. 우리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다.
성문이 사방으로 뚫린 것은, 바람길을 열듯 소통해야 행복해진다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