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성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사무총장
종교절벽시대가
도래했다

취재. 장지해 편집장

종교 전쟁이 치러지고 있는 땅에 발을 딛던 순간을 기억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 몸의 털이 바짝 서는 공포. 당장 죽는다 해도 이상할 게 없던 극한의 현장 상황…. 어린이 치료사업 진행을 위해 이라크에 들어가며 외교부에 ‘죽더라도 정부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등의 서약을 한 참이었다.
“10여 키로 이동을 하면서도 방탄조끼를 입고 탱크를 타야 했어요. 총알과 포탄이 언제 날아올지 모른다는 거죠.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길 위에 떨어진 폭탄 때문에 흔들리는 탱크 안에서 김태성 한국종교인평화회의(이하 KCRP) 사무총장(교무,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 사무부총장 겸)은 생각했다. ‘내가 왜 여기에 있을까.’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답이 명확해졌다. 어떻게 보면 원불교와는 관계없을 이슬람 수니파-시아파 그리고 가톨릭-이슬람의 분쟁. ‘종교 간 평화를 이뤄야 한다.’는 원불교에서의 이념은 그 현장에 들어선 그에게 ‘내 일을 하러 왔구나. 이 위험한 일들이 정말 내 일이구나. 내가 원불교인이기 때문에 이곳에 와 있는 것이구나.’라는 단단한 자부심을 갖게 했다.

● KCRP 사무총장직을 수행한 지 6개월에 접어들었습니다. “2000년에 KCRP 사무차장으로 업무를 시작했는데, 한 곳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봉직할 수 있었던 것은 교역자로서 대단히 큰 은혜라고 생각해요. 사무총장이 됐다고 해서 하던 일이 변한 건 아니기 때문에 큰 차이를 느끼진 못합니다. 하나 느끼는 것은, 차장일 때는 다양한 의견을 내고 결정된 바를 실현하는 업무를 했었다면, 사무총장은 결정을 하고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기에 부담이 있죠. 하지만 그동안 어떤 결정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지켜봐 온 경험이 있어 그 또한 축복이라고 여겨요.”

1986년에 설립된 KCRP. 설립 당시부터 적극적 지원을 마다치 않았던 원불교는 단연 KCRP 발전에 큰 기여를 해오고 있다. 사상으로서는 물론이고, 인력과 재정에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것. 외부조직인 이곳에 교역자를 19년간 파견해오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그건 교단에서 그만한 가치를 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 7개 종단이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조정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요. “이곳으로 발령을 받을 때, 당시 좌산 종법사님과 경산 교정원장님께서 똑같이 당부한 말씀이 있어요. ‘남의 일을 하는 게 아니라 교단 일을 하러 보내는 거다. 하지만 원불교를 위해 일하지 말고, 이웃종교를 위해서 일해라. 그게 교단을 위한 거다.’ 그 말씀이 뇌리를 떠나지 않아요. 예를 들어, 천주교를 위해서 일하거나 개신교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우리 교단을 위해 일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 거죠.”

종교 간 대화를 해나가는 데 있어 나를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김 총장. 나의 자존심, 나라는 의식을 키우기 시작하면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낮추면 낮출수록 대화와 협력은 더욱 강해짐을 체험한 그에게 ‘알아도, 나를 낮추는 일은 어렵지 않느냐.’고 물으니 돌아오는 답. “보통 팔은 안으로만 굽는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팔을 뒤쪽으로 펼쳐 보이며) 이렇게도 되더라고요. 밖으로도 굽혀져요. 하하.” 위트 있게 전하는 그 말에 깊은 울림이 담겼다.


● KCRP 사무총장으로서 바라본 원불교만의 특징이 있나요? “원불교에는 굉장한 특색이 있어요. 아마 제가 안에만 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지 모르죠. 원불교 사람들은 교무건 교도건, 어디, 어느 곳에 붙여놓아도 화합의 중심이 돼요. 그게 참 묘한데, 아마 교리로 배운 화합 정신이 그대로 실천에서 나타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정작, 그런 원불교만의 DNA와 가치를 우리 스스로는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종교 간 대화를 흔히 ‘자신을 비춰보는 거울’이라고도 한다. 기본적으로 이웃종교에 대한 배타성이 없고, 이웃종교를 신뢰하고, 나아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소통의 아이콘이 되는 원불교의 경우, 여러 종단이 모인 자리에서 그 가치를 더욱 발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 종교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산업이 발달하고 사람의 삶이 윤택해질수록 종교는 점점 멀어지는 게 원리예요. 앞으로의 우리 시대 종교 미래를 예측하려면 지금 서구 사회를 보면 돼요. 교회는 비고, 성직자는 나오지 않고, 신도는 없는, 그야말로 종교절벽의 시대로 가고 있거든요. 더군다나 한국 사회에서는 종교가 사회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사회가 종교를 걱정하고 있죠. 또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아이들의 생각이 종교와 멀어질 수밖에 없기도 해요. 시대를 타고 넘을 수 있는 인간은 없어요. 오감을 최대한 만족시켜주는 미디어가 점점 더 발달되는 상황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종교로 안내할 것인가에 대한 방편을 ‘진짜 깊이’ 고민해야 해요.”

우리 스스로 ‘우리는 안 돼. 할 수 없어.’라며 휩싸여있는 패배의식과 절망의식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도 강조하는 김 총장이다.


● 종교절벽시대,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비 신앙인 중에도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이 많아요. 더 놀라운 것은, 그런 사람들이 종교를 바라보는 눈이 굉장히 정확하다는 거죠. 앞으로는 더 이상 단순히 교리의 내용만 가지고 교화할 수 없어요. 원불교의 잠재적 호감도가 높은 이유는 원불교 사람을 직간접적으로 접한 사람들을 통해서예요. 실제로 ‘우리 직장에 원불교 사람이 있는데 참 성실하고, 생각도 바르더라.’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거든요. 결국 사람을 통해서 ‘원불교 참 괜찮더라.’는 메시지가 전달되는 것 같아요. 다시 말하면, 원불교 교리를 실제 몸으로 제대로 실천하는 것이 교화의 핵심 요체가 된다는 거죠. 말씀에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실천하는 개인이 많이 나와야 희망이 있어요.”


● 평소 마음에 새기는 법문 말씀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제가 마음에 가장 새기는 말씀은 대산 종사님의 ‘세계평화 삼대제언(심전계발 훈련, 공동시장 개척, 종교연합기구 창설)’이에요. 제가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죠. 삼대제언은 대산 종사님께서 ‘인류 사회에서 우리 원불교가 이런 일을 하겠다.’는 실천강령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신 거거든요.”

그의 학생 시절 기억 어느 편엔가 남아있는 이야기 하나. 왕궁에 가면 대산 종사는 늘 학생들을 모아놓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자.’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김 총장은 ‘왕궁 이 시골에서, 게다가 힘도 없는 작은 종교가 세계평화를 기도한다고 뭐가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가지곤 했다. 그런데 웬걸, 지난 19년 동안 여러 종교 분쟁 현장에 들어설 때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원불교다.’라는 확신이 절로 섰다. ‘내 삶 속에서 이뤄지는 행동들은 그때 그 기도의 걸음’이라고 규정하는 그. 세계평화를 위해 기도하자던 성자의 말이 후진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 종교연합(UR) 운동이 좀 더 확장되어야 할 텐데요. “우리는 아직 UR이 가진 가치를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요. 일원주의와 삼동윤리를 현실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이 UR이에요. 단순한 운동이 아니고, 우리 교리의 전반이자 원불교가 왜 이 땅에 나왔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와 근거죠.”


● 미래를 이끌어 갈 후배들을 위해 한 말씀 전해주세요. “우리 역사가 이제 100년을 갓 넘겼는데, 긴 것 같아도 큰 종단들에 비하면 굉장히 짧은 세월이에요. 걸음마를 막 뗐다고 볼 수 있죠. 그러다보니 좋은 점이 있어요. 우리 앞에 펼쳐지는 모든 게 ‘새로운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거죠. 후배들이 ‘내가 하는 일이 교단의 새로운 길이자 교단의 새로운 이정표다.’ 그런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런 일을 찾아서 했으면 좋겠어요. 기성세대가 닦아놓은 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이라도 내 길을 가야 일에 대한 사명감, 자부심, 감사함이 생겨요. ‘좀 어렵더라도 힘든 길을 가라. 그리고 새로운 길을 가라. 그런 패기로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


● 앞으로의 각오를 전해 주신다면요? “사무총장이 되면서 마음가짐을 다진 게 있어요. ‘더욱 겸손하고 낮추자. 그리고 군림하는 조직으로서의 KCRP가 아니라, 정말 봉사하면서 종단들을 위한 조직으로서 가치를 갖자.’고요. 무엇보다, 소통하면서 모든 종단이 소외감 없이 균등하고 균형 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야죠. 그런 KCRP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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