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가까워지는 곳, 게스트하우스
여행자의
마음으로 살다

취재. 이현경 기자 

전주 한옥마을에서 10여 분 걸음 떨어진 곳. 큰 간판 없는 게스트하우스.
문을 열면 따듯한 조명 아래 라운지가 펼쳐진다. 그러나 접수처는 보이지 않는다. 여행객과 주인을 가르는 벽이 없는 이곳. 침대마다 개인 책상과 개인 전등이 있는 이곳. 혹은 침대 사이에 있는 블라인드 커튼으로 각자의 시선도 조절할 수 있다. 사장 임용진 씨의 철학이 반영된 공간들이다.

“게스트하우스는 열린 생활이잖아요.” 24시간 열린 구조는 여행객을 수평적 관계로 만든다. 라운지에서 대화하며 하나가 되게 한다. 자신의 고민, 여행 정보, 서로의 호감까지…. 국적, 성별, 나이를 넘어선 소통이 이뤄진다. 이때 주인 임 씨가 여행객의 첫 방문 때 설명해준 규칙들은 타인을 배려하는 길라잡이가 된다.
그가 이들과 함께할 때면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는다. 전주가 고향인 임 씨는 여행객들의 질문에 모르는 것 없이 척척박사다. 전직 기자 출신의 관록도 발휘된다. 30여 년의 기자 생활이 대화의 깊이와 폭을 더하는 것. 투숙객 중 외국인의 비율이 30~40%가 될 정도로, 언어소통에도 문제가 없다. 이렇듯 밤이 깊어갈수록 서로의 거리는 가까워진다.

오전 7시 반. 그가 여행객들의 조식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실내에 불을 켜고, 음악을 튼다. 테이블에 여러 종류의 잼과 치즈, 버터를 일렬종대 시킨다. 다른 한쪽에는 빵과 접시를, 냉장고 안에는 우유와 주스까지 준비 완료. 곧이어 오늘 예약한 여행객들을 확인하는 일과다.
그때 젊은 여행객이 운동복차림으로 들어온다. “어디 갔다 와?” 임 사장이 어젯밤 함께 얼굴을 마주한 이에게 먼저 묻는다. 그러자 청년이 땀을 닦으며 웃는다. “런닝하고 왔습니다.” “어 잘했네. 어디 뛰었어?” 청년이 드문드문 길의 지점을 말하자, 임 씨가 그 길과 길 사이를 이으며 말을 덧붙인다. 여유로운 오전 풍경의 시작이다.

사실 오늘이 있기까지 임 씨에게는 3~4년의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누군가의 상사 또는 부하로서, 신문사라는 조직 사회 속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사람’을 목적으로, 젊은 여행객의 실수에는 넓은 아량으로 포용했다. 그러자 일이 즐거워졌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기분 좋은 변화였다. “여행자의 선한 마음을 매일 만나잖아요. 제가 오히려 돈을 줘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누구보다 여행객들을 굳게 믿는 그. 또한 여행객과의 대화도 최대한 절제하며, 자신을 필요로 할 때만 도움을 주는 것은 그만의 배려다.

어느덧 11시. 체크아웃 시간이 되면 주인 부부의 청소시간이다. 무엇보다 청결이 여행객을 대하는 기본자세라고 생각하는 부부.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는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16개 침대가 꽉 찰 때면, 청소만 3시간이 걸릴 때도 있다. 그 마음을 아는지, 첫 오픈 때부터 여행객들이 붐볐다. 별다른 홍보 없이도 온라인으로 좋은 후기가 퍼져 나갔다. 큰 규모의 숙박 예약 사이트에서도 매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개업한 지 5년 된 게스트하우스는 현재 순항 중인 셈이다.

그러나 이 공간의 이야기를 하자면,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게 본래는 아버지 병원이에요.” 라운지 한쪽에 마련된 장식장에 놓인, 병원 명패, 진찰권, 약사발, 소아과 의사였던 아버지의 사진까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비워져 있던 공간이 게스트하우스로 재탄생한 것이다.

그 과정도 뜻깊다. 삼 형제 중 건축과 교수인 셋째가 리모델링에 참여했다. 첫째인 임 사장이 앉아 있는 자리 옆에는 아버지의 흔적이 있다. 모두가 오가는 라운지 한쪽에 생생히 살아있는 그 역사 위에 다른 이들의 역사도 덧씌워진다. “이곳에서 만나 결혼한다고 다시 찾아온 사람도 두 쌍이나 있어요. 얼마나 큰 보람이에요!”
그의 기자 시절 아이디이자 이곳의 이름인 ‘니어리스트’. 그 뜻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가깝고, 가까워지고 싶은 장소가 되는 이곳. 세계 각국의 여행객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매일 새로운 역사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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